펜타곤이 밀어주는 <트랜스포머>?

[할리우드 잡학노트 시즌2] 펜타곤의 영화제작 지원 기준은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를 찍는 감독이나 제작자라면 '펜타곤'(미 국방부)에 잘 보이고 싶어 하기 마련입니다. 액션영화에 군대를 등장시키는 것은 영화의 때깔을 '확' 살아나게 만들어 주면서 동시에 제작비를 절약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굳이 의상비나 소품비를 들일 것 없이 실물 장비를 걸친 군인들이 단체로 뛰어 다니고 최신예 전투기라도 몇 대 날아다녀주면 정말 좋겠죠.

펜타곤에 할리우드 담당관이 있을 정도로 미 국방부가 영화 산업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하지만 펜타곤의 할리우드 담당 부서는 영화를 돕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하게 그들의 임무는 미군에 도움이 될 영화는 돕고, 미군을 괴롭힐 영화는 훼방 놓는 것입니다.

▲  흔히 ‘펜타곤’으로 불리는 미 국방부는 알고 보면 할리우드의 큰 손입니다. 매년 200편 이상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펜타곤에 지원을 요청하고 그중 30% 정도가 지원 허가를 받습니다.
ⓒ DreamWorks

관련사진보기


기껏 지원해 주었더니 전쟁의 염증을 드러내는 영화라면 곤란합니다. 미군 장교나 장군이 악당이라도 되면 큰일이죠. 조금이라도 꺼림칙한 영화는 갖은 핑계를 대서 지원을 회피하고, 밀어주면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을 영화들에는 사정없이 편애를 베푸는 것이 할리우드를 대하는 (또는 다루는) 펜타곤의 방법입니다. 누구는 군부대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면서 누구는 펜타곤이든 항공모함이든 마음껏 카메라를 돌리게 합니다.

소신이 있는 영화들은 굳이 펜타곤 눈치를 보기 보다는 자주 노선을 걷기도 합니다. 핵전쟁을 다룬 영화 <그날 이후>(1983)는 소련이 먼저 핵미사일을 쏘는 조건으로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누가 먼저 쐈는지를 모호하게 처리하며 품위를 지킵니다. 코미디긴 하지만 온갖 비리를 밥 먹듯 하는 군인이 주인공인 <말뚝상사 빌코>(1996)는 아예 영화 크레딧에 '우리 영화는 국방부 지원을 절대 받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새겨 놓는 근성을 발휘하죠.

▲  펜타곤의 지원을 거부하는 '소신파'(?) 영화들도 있습니다만 액션이 적게 나오거나 원래 내용 자체가 군에 비판적이어서 지원받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할리우드에서 액션이나 전쟁을 하려면 펜타곤의 낙점은 필수입니다.
ⓒ MGM外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펜타곤 지원을 당당하게 사양하는 영화들은 대개 액션장면이 많지 않기에 체면을 세울 수 있습니다. 액션규모가 크고 특히 배경이 전쟁이라면 펜타곤의 지원은 꼭 필요합니다. 펜타곤의 할리우드 담당관들은 영화를 보는 안목이나 노하우가 나름 쌓였기 때문에 제출용 시나리오를 달리해서 속이는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가끔 거장의 이름으로 펜타곤 뒤통수를 때리는 경우도 있지만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당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할리우드를 관리하면서 펜타곤이 얻은 노하우는 일단 시나리오에서 조금이라도 군대가 찜찜하게 나오는 영화는 피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군대 자체를 다루거나 군인들이 구체적인 캐릭터로 나오는 영화는 위험합니다. 반면 군대가 적에 맞서는 막연한 영웅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안전합니다. 여기에 주인공은 영웅인데 군 경력이 단지 배경이라면 좀 더 낮습니다.

▲  <크림슨 타이드>(1995)같은 영화들조차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할리우드를 대하는 펜타곤의 기준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미 국방부는 지원을 무기로 할리우드를 길들이고 있고 영화 제작비가 갈수록 늘어나는 할리우드 입장에서는 알아서 맞추는 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 Buena Vista

관련사진보기


실패를 줄이기 위한 펜타곤의 또 다른 비결은 사람을 가린다는 것입니다. 시나리오 내용의 표현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밀어줘야 할 사람과 절대 상종하면 알 될 사람을 나누는 것이 성공률이 높다는 경험인 거죠. 예를 들어 아무리 시나리오에 미군이 멋지게 나온다 해도 감독이 올리버 스톤이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고 마틴 스코시즈라면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안전한 감독들은 누구일까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우선 내용이 심각한 영화보다는 단순한 권선징악을 추구하는 감독이 좋습니다. 둘째 감각적인 영상 연출을 하는 감독일수록 미군을 멋지게 그려줍니다. 셋째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한 번 거래(?)해서 결과가 좋았던 감독입니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더 록>(1996), <진주만>(2001)의 마이클 베이나 <인디펜던스 데이>(1996), <고질라>(1998)의 롤랜드 에머리히가 있습니다.

펜타곤의 총애를 받는 마이클 베이가 감독을 맡고 역시 믿을 수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을 맡은 <트랜스포머>(2007)에 펜타곤의 전폭적인 지원이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전히 극비로 분류된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가 날아다니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줍니다. 다른 영화에도 스텔스 전투기가 나오고 어차피 서로 CG로 그리는 것은 같은 사정이라도 실물을 소스로 삼을 수 있는가 아닌가는 그 차원이 달라집니다.

▲  펜타곤이 총애하는 감독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 포머>는 당연히 전폭적인 지원을 받습니다. 실전 배치도 되지 않은 극비 스텔스 전투기를 코앞에서 촬영하고 배우들은 네이비 씰 부대에서 현역 특수부대원들에게서 과외지도를 받았습니다.
ⓒ DreamWorks/HBO

관련사진보기


마이클 베이 감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군인들을 낯간지러울 정도로 띄워줬던 전통을 잊지 않고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외계 로봇에 맞서 미국과 세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미군들을 멋지고도 멋진 인간들로 그려 줍니다.

미군들이 멋지게 나오는 것 못지않게 펜타곤을 흐뭇하게 만든 것은 영화 초반 미국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을 놓고 북한과 이란을 용의자로 지목하는 대목일 것입니다.

뭐 할리우드 영화 한 편에 나라 이름 몇 개 나온 거 가지고 뭐가 난리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흥겹게 지나가는 로봇 액션 사이로 북한이 우리 미국을 괴롭히는구나 하는 잔상만 남아도 이 영화와 다른 영화들이 남긴 잔상들이 모이고 모이면 미국의 여론이 되고 세계의 상식이 될지도 모릅니다.

너희들한테는 그저 영화 속 농담이었지만 북한과 함께 사는 우리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어쩌면 할리우드는 농담이었지만 펜타곤 입장에선 농담 속에 뼈를 묻어 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특이한 경우긴 합니다만 전쟁영화도 아니고 펜타곤의 지원도 없었지만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2002)에 나오는 일종의 노예 캐릭터인 집 요정 도비가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던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모델로 삼은 것처럼 할리우드가 알아서 백악관 감정에 동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WB

관련사진보기


펜타곤 할리우드 마이클 베이 트랜스 포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