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권력'을 탐내는 독점기업들

[할리우드 잡학노트 시즌2] 죽지 않는 기술을 팔고 사는 시대가 온다면

어려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절절하게 느꼈을 때 과학기술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 살아서는 뭔가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말이죠. 하지만 불로장생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칫솔 이야기에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나일론모 칫솔을 발명한 것이 불과 30년쯤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전에는 돼지털로 만든 칫솔을 썼다고 하죠. 이런 기술발전 속도로 본다면 나 살아서 불로장생은 글렀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마다 양치질을 할 때면 입맛이 씁쓸한 것이 인생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과학기술 덕에 평균 수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수도와 항생제같이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은 그게 없던 시절에 비해 수많은 목숨들을 '죽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예전에는 '꼼짝 마라' 죽음을 기다려야 했던 질병들도 이제는 완치를 기대하거나 어느 정도 생명 연장을 바랄 수 있는 시대입니다.

▲ <로보캅>에 나오는 미래 TV에는 인공 심장을 고를 때는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광고가 나옵니다. 할리우드는 돈과 생명연장이 비례하는 미래를 상상하곤 합니다.
ⓒ Orion
만약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그건 많이, 아주 제대로 비싸겠죠. 지금도 병원비가 모자라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같은 병원에 같은 질병으로 실려 가도 지불 능력에 따라 다른 대접을 받는 세상인데 죽지 않게 해 주는 상품이라면 아무나 사지는 못할 것입니다. 가격도 턱없이 비싸겠지만 그 제조(?)와 유통에 국가권력이 개입하여 통제할 가능성이 큽니다.

'황우석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선 미셸 푸코가 제창했던 '생명권력'을 주목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제가 좀 거칠게 정리하자면 과거 권력자들은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리는 것으로 힘을 가졌지만, 요즘 권력들은 생명연장의 기회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로 통제력을 가진다는 얘깁니다. 푸코는 생명권력을 근대의 산물로 보았지만 시대를 따라 생명연장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들이 늘어날수록 생명권력은 더 힘을 얻겠죠.

할리우드가 상상하는 생명연장의 시대는 국가권력 보다는 독점기업들이 움켜쥐고 있습니다. 영화 <아일랜드>(2005)에는 부유층을 위한 맞춤형 장기 생산을 위해 복제인간들을 사육하는 기업이 등장하고 영화 <프리잭>(1991)에 등장하는 기업 총수는 죽기 직전의 사람을 미래로 잡아와 자신의 기억을 입력시켜 영생을 노립니다. 불로장생의 기술은 명품 중의 명품일 테고, 그 소비자 또한 소수 중의 소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할리우드의 친절한 설명입니다.

▲ <아일랜드>에는 부유층의 장기 이식을 위해 복제인간을 주문 생산하는 기업이 등장합니다.
ⓒ WB
어차피 재벌집 자식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니 불로장생은 포기한다 치고 그래도 생명연장 기술이 진열대에 오르는 시대라면 이런저런 질병에서 해방되는 떡고물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영화 <코드명 J>(1995)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서기 2021년에는 전자파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신종 질병이 기승을 떨치지만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은 치료약을 개발하고도 수지타산을 따지며 치료약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감추려 듭니다.

형광등 같은 경우 개발은 이미 했지만 기업 이익을 위해 일부러 시장에 내 놓지 않았다, 뭐 이런 거는 사실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인데도 약값 제대로 받겠다고 소송 걸고 제약회사 철수시켜 겁주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죠. 이런 일들이 굳이 할리우드 영화 속 미래로 가지 않더라도 이미 지구 곳곳에서 실존하는 일이라는 게 어지간한 공포영화보다 더 무섭습니다.

▲ SF소설 <불사판매 주식회사>가 원작인 <프리잭>에서는 과거의 인간을 잡아와 부유층의 기억을 입력하는 것으로 불로장생이 가능합니다.
ⓒ WB
알만한 대기업 이름이 큼지막하게 쓰인 아파트를 보며 사택이냐고 물을 정도로 한국 재벌에 관심이 많던 미국인 동료는 국내 굴지의 재벌들이 병원까지 운영한다는 것을 신기해했습니다. 그런 병원들에는 널찍한 병실에 홀로 누워 전담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며 럭셔리하게 죽을 수 있는 특실들이 있어 부유층에 인기라는 얘기는 차마 해 주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을 가진 재벌 총수님은 미국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시더군요. 자기네 상품 홍보 차원에서라도 계열 병원에 입원하실 법도 한데 말이죠. 계열사 몰아주기가 재벌의 상식이라도 자기 목숨에 관련된 상품을 고를 때는 냉정한 자본의 눈을 번득이는 걸까요? 뭐 보험 되는 6인실 기다리느라 수술 시기도 조절해야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몇 백 원 더 비싼 요구르트에 '생명연장의 꿈'을 실어 보는 걸로 만족하고 지냅니다만.

▲ ‘사이버 펑크’의 대가 윌리엄 깁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코드명 J >에서 <매트릭스>에서 완성되는 키아누 리브스 이미지의 원형을 만날 수 있습니다.
ⓒ Columbia

덧붙이는 글 | 장익준 시민기자는 토클(TOKL, 국어능력인증시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07-05-03 10:2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장익준 시민기자는 토클(TOKL, 국어능력인증시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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