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벨트보다 더 반짝이는 행복

[리뷰] 영화 <행복을 찾아서>, 여러분의 'Happyness'는 무엇입니까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한 장면
ⓒ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분명히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흔해 빠진 성공담으로 보였다. 맥이 빠졌다.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동 실화'라고 강조된 줄거리를 훑어본 게 잘못이었다. 굴지의 투자회사 '가드너 리치 앤드 컴퍼니' 회장인 크리스 가드너가 노숙자에서 월스트리트의 주식중개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줄거리가 닳고 닳은 내게 감동을 주기에는 2% 부족했다. 우리가 이미 MBC <성공시대> 같은 TV 프로그램을 통해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명제에 익숙해진 탓이리라. 사실 줄거리보다 팸플릿이 더 흥미로웠다. <맨 인 블랙> 등 영화에서 깔끔한 모습만 보여줬던 윌 스미스가 곱슬머리와 수염으로 추리하게 돌아온 것이 그러했고, <행복을 찾아서>의 원제인 < The Pursuit Of Happyness >의 철자가 예사롭지 않았다. 'Happiness'가 아닌 'Happyness'는 무엇일까. 어긋난 크리스와 린다의 시선 @BRI@1981년 크리스(윌 스미스)는 가난하다. 철가방처럼 보이는 의료기계를 팔러 다니지만 벌이가 시원치않아 집세는 몇 개월씩 밀려 있고 세금을 낸 지도 오래다. 부인 린다(탠디 뉴튼)도 야간 근무를 마다 않고 안간힘을 쓰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 크리스토퍼(제이든 스미스)는 TV 앞에 방치되는 싸구려 놀이방에 다닐 수밖에 없다. 영화는 빈털터리 크리스가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마치 록키가 수도 없이 계단을 뛰어올라갔듯이 그는 쉴 새 없이 병원을 찾아다니며 세일즈를 한다. 그래도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다.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지난 대선 때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선 권영길 의원이 탄생시킨 유행어처럼 우리의 행복에서 살림살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먹고 살 만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살림을 하는 여자가 이 문제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린다는 지쳤다. "모든 게 곧 괜찮아질 거야"라고 다독이는 크리스를 향해 "그 말은 임신했을 때도 했잖아. 이제 당신이 무얼하든 신경 안 써"라고 쏘아댄다. 삶에 찌든 그로부터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실제로 '선물 주고받기', 스킨십', '함께 시간 보내기' 등과 같이 사람마다 사랑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언어'가 다르듯 행복을 느끼는 요소도 다르다. <1번가의 기적>의 여성복서 명란(하지원)은 챔피언이 되는 것을 꿈꾸었고, <복면달호>의 봉달호(차태현)은 록앤롤 스타로 폼 좀 잡아보고 싶었다. 또 <공공의 적>의 조규환(이성재)은 대박을 터뜨리길 바랐고, <하얀거탑>의 장준혁은 최고의 의사로 우뚝 서고자 했다. 어딘가 닮아 있는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의 끈을 어루만지며 행복이 자신의 곁에 있음을 확인한다. 린다는 살림살이가 나아지길 원했지만, 크리스는 주식중개인이 되겠다며, 돈도 한 푼 받지 못하는 인턴으로 한 회사에 들어간다. 현실에 고정된 린다의 시선과 비전을 바라보는 크리스의 시선은 어긋나 있었다. "난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아, 더 이상은…." "린다, 가서 행복해져 봐, 크리스토퍼는 나랑 살꺼야" "행복하니? 난 행복해"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한 장면
ⓒ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그러니까 크리스에게는 크리스토퍼가 있었던 것이다. 빈민가의 건달로 늙어가던 록키에게 아드리안이 희망이 됐듯, 크리스에게는 크리스토퍼가 힘이 됐다. 의료기계 찾기 질주와 정신없는 인턴십으로 녹초가 되어도 집에서 쫓겨나 모텔과 노숙인 쉼터를 전전해도 끄떡없다.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들의 손을 잡고 보육원에 가고, 책을 읽어주고, 농구를 하며 행복을 느낀다. "행복하니? 난 행복해, 네가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면 좋은 거야." 크리스와 크리스토가 유별난가?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방글라데시나 부탄 같은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보다 더 높다. 물질적 풍요도 중요하지만 자연환경이나 가족이 개인의 행복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에 미국으로 입양된 지 26년 만에 친아버지를 만난 토리노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토비 도슨. 그도 마찬가지다. 부족한 것 없는 그가 서툰 한국말로 "아버지, 오래 기다렸다"며 눈물 흘리는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친아버지 옆에 딱 붙어서 "이제는 정말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미소 짓는 그가 눈에 선하다. 손에 잡히는 물질로만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행복은 어림없다. 최신형 자동차와 명품으로 행복을 과시하는 어른들부터 세뱃돈의 액수로 행복의 크기를 저울질하는 아이들까지 사람들은 대부분 물질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10여 년 전 중얼거렸던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이런 것들 과연 우리의 행복있을까"라는 신해철의 랩은 머릿속 리듬일 뿐 누구도 부르려 하지 않는다. <행복을 찾아서>는 이 같은 옛 노래를 다시 떠올려준다. 현실을 뛰어넘는 크리스의 열정이, 가족을 향한 사랑이 솟아나온다. 챔피언 벨트보다 더 반짝거리는 행복
ⓒ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행복을 찾아서>의 원제 속 'Happyness'는 크리스토퍼가 다니는 보육원 바깥벽에서 발견된다. 철자가 틀렸다고 몇 번씩 말해보지만 중국인은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한다. 행복은 이런 게 아닐까. 세상이 말하는 행복이 아닌 자신만의 느낌, 남들이 틀렸다고 해도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감정이다. 미국의 일간지 <뉴욕포스트>가 이 영화를 "서류가방을 든 록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세상의 눈은 월 스트리트의 신화 크리스 가드너의 성공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크리스가 크리스토퍼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모습이 '챔피언' 벨트보다 더 반짝거린다. 그것이 바로 'Happyness'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누군가는 진실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