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잘 우러난 <녹차의 맛>

[영화평] 같은 풍경, 다른 이야기

 우리 가족이 평범해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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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일본의 시골 풍경, 그 안에 있는 아름답고 소박한 집. 그곳엔 마루에 앉아 호로록 소리를 내며 녹차를 마시는 가족이 있다.

무슨 가족 이야기를 할 것 같지만 영화 <녹차의 맛>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할아버지, 아빠, 엄마, 그리고 남매. 평범한 것 같지만 독특한 가족 구성원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그려낸다.

@BRI@재미있는 몸동작으로 애니메이터인 며느리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할아버지, 가장다운 무거움과 그만큼의 고독을 지닌 아빠, 뒤늦게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한 엄마, 사랑에 빠진 오빠 하지메, 자신을 바라보는 커다란 내가 대체 언제쯤 사라질지 고민하는 사치코, 그리고 조카에게 웃음을 자아내는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진지하게 전하는 삼촌까지.

"나만의 세계야, 세상은 잘 모르는 것 투성이야"라고 딸에게 말하는 엄마와, 나를 바라보는 '커다란 나'를 없애기 위해 철봉돌기를 열심히 하는 사치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찾거나 만들어 가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저마다의 이야기는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볼 것이라는 기대에서 확장된, 환상적이거나 과장된 장면들로 때론 익살스럽고 때론 간지러울 만큼 섬세하게 그려졌다. 가족 구성원, 그리고 이와 함께 얽힌 사람들이 펼치는 많은 에피소드들과 장면들이 나오지만 마치 잘 짠 목도리처럼 저마다의 연결고리로 영화를 구성한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짝사랑과 함께 하지메 머릿속의 그녀도 기차를 타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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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언제쯤 커다란 내가 사라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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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지막으로 가면서 퍼즐 맞추기처럼 조화되는 감동을 준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나머지 가족들은 허전함을 안고 다 같이 마루에 앉아 녹차를 마신다. 지금껏 제각각의 모습으로 앉아 녹차를 마셨던 그들이 이날만큼은 같은 모양으로 앉아 호로록 녹차를 마신다. 그러다 동시에 시선을 돌린 그곳엔 할아버지의 방이 있다.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던 할아버지 방에 처음 들어가게 된 이들은 할아버지가 남긴 놀랍고도 감동적인 선물을 발견한다. 할아버지가 남기신, 가족 하나하나를 그린 그림은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할아버지는 가족을 한 명 한 명 지켜보고 계셨나 보다.

해가 지는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나는 이 영화를 보면, 우리가 각자 다른 삶을 살지만 같은 배경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스케치북 한 장 한 장의 장면이 모여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할아버지의 그림처럼 나 그리고 너의 삶은 가족이라는, 지구라는, 우주라는 같은 풍경 속에서 조화롭다.

<녹차의 맛>, 물처럼 심심하지 않고 커피처럼 진하지도 않은 녹차처럼 평범하지만 잘 우러난 깊은 맛을 지닌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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