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연쇄 복수극에 얽히다?

<고질라>·<아마겟돈>·<고질라 파이널 워즈>, 꼬리를 물며 치고받다

ⓒ Columbia

할리우드 영화에서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이나 괴물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미국하고도 뉴욕으로 몰려간다. 일본 괴수영화의 간판스타 고질라를 스카우트해서 만든 블록버스터 <고질라>(1998)에서도 뉴욕은 방사능으로 거대화된 이구아나 발 아래 짓밟힐 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뉴욕 시장 선거 기간인데, 재선을 노리는 시장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다. 엄지손가락 두 개를 치켜든 모습에 설마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아예 이름이 에버트 시장이다. <시카고 선 타임스>에 40년간 영화평을 올리며 할리우드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바로 그 로저 에버트다.

@BRI@지금은 고인이 된 시스켈과 함께 전국에 방영되는 영화 리뷰 프로그램인 '시스켈과 에버트'를 진행하면서 영화를 리뷰한 뒤 둘이 엄지를 올리거나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둘이 동시에 엄지를 올리기라도 하면 제작자들은 "Two Thumbs Up!"이라는 문구를 큼지막하게 달아 광고할 정도로 과거에 별 다섯 개를 대체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우리나라 영화 잡지에서도 심심찮게 '엄지 두 개' 표현을 쓰는 기자들이 있을 정도.

<고질라>에 등장하는 에버트 시장님은 아예 엄지손가락이 그려진 피켓에 "Thumbs Up for New York"을 써가지고 다닌다. 옆에 따라 다니는 보좌관 역시 누가 봐도 시스켈.

그런데 이 에버트 시장님, 출연 비중은 높은데 시종일관 인간 말종으로 그려진다. 시민을 보호하기보다는 도망 다니기 급급하고, 연신 간식만 찾는 비만에다 고질라 퇴치를 재선에 써먹을까 궁리하다가 끝내 시스켈에게 엄지내리기를 당하고 만다.

 위쪽은 영화에 나온 에버트 시장, 아래쪽은 <시카고 선 타임스>에서 운영하고 있는 로저 에버트 사이트.
ⓒ Chicago Sun-Times외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었기에 작심하고 에버트 죽이기에 골몰했을까? 대박은 났지만 비평에선 찬밥이었던 전작 <인디펜던스 데이>(1996)에 대해 에버트가 까칠하게 평을 했기 때문이라고 일단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주머닛돈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스튜디오의 사활을 걸고 만드는 블록버스터에 개인적인 복수, 그것도 비평계 실력자를 상대로 그렇게 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뭔가 경영진의 공모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들도 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불러 오듯이 <고질라>도 멀리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험한 꼴을 당한다.

같은 해 개봉했던 블록버스터 <아마겟돈>(1998)은 노점에서 잘 팔고 있던 고질라 인형들을 산책하던 개 한 마리가 이유 없이 물어뜯는 장면을 연출하며 신경전을 펼친다. 이 정도론 모자랐는지 고질라 인형 팔던 양반을 아예 운석에 맞아 죽는 첫 번째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개는 살아남는다.

 <아마겟돈>(1998)
ⓒ Touchstone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고 <고질라>와 <아마겟돈>의 맞대결로 예상되었던 1998년 블록버스터 전투의 승리자는 비슷한 아이템이라면 한 발 앞서 개봉하는 것으로 승부를 걸었던 <딥 임팩트>(1998)였다. 아무래도 사적인 감정 해소나 경쟁자를 이죽거리는 데 필름을 낭비하는 영화라면 그만큼 집중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원래 일본 영화 <고질라>는 미국이 비키니 섬에서 진행한 핵실험으로 고질라가 생겨났다는 설정이었다. 이것이 할리우드로 넘어오면서 뜬금없이 프랑스 핵실험으로 고질라가 생겨난 것으로 각색되었고 원래 공룡을 모티브로 했던 고질라는 이구아나로 바꿨다.

그 당시 프랑스에선 핵 실험을 하긴 했지만 엄하게 뒤집어썼다고 볼멘소리가 나왔고, 일본 괴수영화 팬들은 뭘 모르는 할리우드 감독이 고질라를 망쳐 놨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할리우드 <고질라>(1998), 일본 <고질라 2000>(2000), <고질라 파이널 워즈>(2004)에 나온 이구아돈.
ⓒ Columbia/Toho

고질라 탄생 50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고질라 파이널 워즈>(2004)에서는 할리우드 고질라에 대한 복수가 시작된다.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들이 세계 각국에 괴수를 보내는데 호주 시드니에 나타난 괴수는 누가 봐도 할리우드 고질라를 닮았고 이름도 아예 '이구아돈'이다.

남극에서 잠자다 다시 깨어난 고질라가 고른 첫 상대도 바로 할리우드 고질라를 닮은 이구아돈인데, 간단하게 꼬리로 제압한 뒤 입에서 불을 뿜어 통구이로 만들어 버리며 원조의 힘을 과시한다.

괴수들을 조종하던 외계인 악당이 "참치나 먹으니 저 꼴이지"하는 마무리 대사를 얹어줌으로써 할리우드 고질라에 대한 복수였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고질라 파이널 워즈>(2004)
ⓒ Toho

덧붙이는 글 <고질라 파이널 워즈>(2004)에는 국제연합 최초의 일본인 사무총장이 등장합니다. 영화가 만들어지던 때만 해도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 상임이사국 진출이나 일본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얘기가 나오던 시절이라 그 분위기를 탔나 봅니다. 현실에선 잘 아시듯이 상임이사국 진출은 흐지부지되었고 사무총장 자리엔 한국인이 앉아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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