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차대전 영화를 베트남 전쟁영화 속편으로 만들었던 <햄버거 힐 2>나 대작 SF영화 속편을 자처하면서 소규모 공포영화로 내달렸던 <스타쉽 트루퍼스 2>는 할리우드 마케팅 꼼수의 한 예. |
| ⓒ Columbia | 관련사진보기 |
이해는 가지만 어딘가 궁색한 영화 마케팅들이 있다. 주로 비디오 대여점에서 언제 개봉했는지 알 수 없는 영화가 '극장 개봉작' 딱지를 붙이고 나오는 경우엔 서류상으로만 개봉작인 경우도 있고, 심하면 속된 말로 '구라'인 경우도 있다. 영화 내용과 관계없는 멋지거나 야한 사진들로 표지를 장식하는 것도 알면서도 넘어가는 마케팅 기법(?) 중 하나다.
무지막지한 제작비를 쏟아 붓고 세계 영화를 휘어잡는 할리우드에선 이런 구차한 마케팅을 안 하는가 하면, 사람 사는 사정은 다 비슷하다고 할까? 규모에 관계없이 제작비는 늘 부족하게 마련이고 수익은 항상 목을 죄어온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쪽이 아무래도 마케팅 기법이랄까 꼼수도 발달하게 마련이어서 대한민국 동네 비디오 대여점과 그리 다를 바 없는 일들이 할리우드에서도 펼쳐진다.
제일 대표적인 것이 성공한 본편에 묻어가는 속편들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관계없는 영화를 자체적으로 속편을 만드는 유행이 있었지만, 할리우드 본가에서도 조금 싹수가 보이면 과감하게 형제의 인연을 맺어 주기도 한다.
<스타쉽 트루퍼스 2>는 거창한 포스터와 다르게 본편에서 등장했던 벌레들과 싸우는 화려한 전투는 앞부분 맛보기로 살짝 등장하고, 나머지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포영화로 채워 버린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 When Trumpets Fade >는 그나마 더 알려졌다고 여겨지는 베트남 전쟁영화 <햄거버 힐>의 속편이 되어 세계 곳곳에서 팔려나갔다.
|
| ▲ 북한 핵 실험이라는 호재(?)를 놓칠세라 DVD로 긴급 출시된 <에너미 라인스 2>는 본편과 합본 판매라는 '묻어가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
| ⓒ 20C Fox | 관련사진보기 |
20세기 폭스사가 지난 10월 18일 미국에서 전격적으로 DVD 출시한 <에너미 라인스 2> 역시 본편에 묻어가기 초식을 선보이고 있다. <에너미 라인스>(2001)는 진 해크만과 오웬 웰슨 주연으로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적지에 추락한 조종사를 구출하는 대작 영화였다. 북한 미사일을 저지하기 위해 침투한 네이비씰 대원들이 등장하는 <에너미 라인스 2>는 전편과 딱히 연결되는 것도 없지만 당당하게 <에너미 라인스 2>로 시장에 선보였다.
미군이 당면한 주요 분쟁에서 적진에 떨어진 병사들 얘기라고 둘러댄다면 대략 넘어갈지도 모르겠지만, DVD로 바로 나온 것이 보여주듯 한 번에 많아야 스무 명 이상 나오지 않을 그런 규모의 영화를, 그래도 비행기 날아다니고 나름 특수효과 바른 대작 영화와 묶는 것은 아무래도 궁색한 일이다. 게다가 예고 없이 급하게 DVD 출시된 것 역시 누가 봐도 북한 핵실험이라는 시류에 묻어가려는 속 보이는 발상이다.
|
| ▲ <에너미 라인스 2>에서는 북한군에 포로가 된 네이비씰 대원을 한국군 특수부대가 구출해 준다. 할리우드에선 아직 한미동맹이 유효한가? |
| ⓒ 20C Fox | 관련사진보기 |
20세기 폭스사는 <에너미 라인스 2> 이미 2005년부터 제작에 들어갔고 정상 스케줄에 따라 개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긴 이런 규모의 영화까지 북한이 언제 핵실험을 할 것인지 미리 알고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흥행에 조금이라도 써먹을 소재가 있다면 놓치지 않는 할리우드 근성과 순발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할까? 세상 다른 장사가 그렇듯이 염치 따지고 뭐 따지고 하면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마이너리그 액션영화에 속할 <에너미 라인스 2>를 보면서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감독인 제임스 도슨은 "이 영화를 맡으면서 한국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는 앞부분에 한국전쟁부터 영변 핵실험을 언급하는 장황한 자료 화면을 소개하면서 북한을 공격하면 남한에서 몇 명이 죽고 등 북한 핵과 관련된 주요 흐름을 깔끔하게 압축하고 있다.
북핵 관련 주요 당사자라 할 우리 자신은 사실 북한 핵실험을 미국 압력에 대응하여 북한 돌출된 사건으로 보는 경향이 많지만, 마이너리그 액션영화도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전쟁 이후 지속하여온 미국과 북한의 대립을 배경으로 깔고, 영변 핵시설 논란과 NPT 탈퇴를 이번 핵실험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올해 초 미국과 일본 언론들이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할 때 한 귀로 흘려버린 대한민국이 이번 북한 핵실험에서 제일 세게 뒤통수를 맞은 것도 그렇고 말이다.
|
| ▲ <스텔스>(2005)는 한국 개봉을 위해 북한이 등장한다는 점을 얼버무렸다. 최근 북한을 적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
| ⓒ Columbia | 관련사진보기 |
<에너미 라인스 2>를 한국에서 볼 수 있을까? 북한을 다뤘던 <007 어나더 데이>나 한국 네티즌들에게 뭇매를 맞았고 역시 북한이 등장했던 <스텔스>가 한국 정서를 고려해서 북한임을 얼버무리고 극장에 걸렸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굳이 서둘러서 <에너미 라인스 2>를 한국에 선보일 이유는 없어 보인다.
북한은 어떨까? 탈북자 증언에 따르면 할리우드 전쟁영화나 액션영화들도 분석 대상이 된다고 하니 DVD 하나 사서 보는 거야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 <에너미 라인스 2>를 직접 보게 된다면 아무래도 소문난 영화광인 만큼 북한을 적대시하는 설정보다는 어설픈 내러티브(이야기 전개)에 더 분노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랍권을 악당으로 다뤘던 영화들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북한이 배경으로 등장하거나 악당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점은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당장 <에너미 라인스 2>만 해도 기획 당시 부제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는데, 긴급 출시된 제목은 '악의 축'이 되었다.
|
| ▲ <에너미 라인스 2> 앞부분에는 자료 화면을 이용해서 한국전쟁부터 이어진 미국과 북한의 악연, 영변 핵시설로 가시화된 북한 핵개발과 북한 공습이 한국에 끼칠 피해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어지간한 한국 사람보다 많이 알고 있다. |
| ⓒ 20C Fox | 관련사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