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그리섬 반장님의 과거를 아시나요?

20년 전 <맨헌터>에서 FBI 심리수사관으로 활약

최근 한국 법조계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 '공판중심주의'라면 한동안 미국 법조계를 괴롭혔던 것이 이른바 'CSI 증후군'이었다. 배심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검사건 변호사건 배심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데, 무작위로 뽑히는 배심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다름 아닌 TV에서 본 CSI 시리즈였다는 얘기다. 원래 과학수사라는 것이 지문 감식 하나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리고, 유전자나 유골 복원 같은 걸로 가면 몇 달이 넘어가지만 TV에서는 늘 1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한다. 배심원들은 과학수사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정밀한 과학적 증거를 자판기 커피 뽑듯 당장 내놓으라고 요구해서 특히 검사들이 애를 먹는다고 한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 CSI 과학수사대 >. 그 중심에는 윌리엄 피터슨이 연기하는 길 그리섬 반장이 있다.
ⓒ CBS

<더 록> <진주만>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선보였던 < CSI 과학수사대 >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본 편인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해서 자매편인 마이애미와 뉴욕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미제사건을 다루는 <콜드케이스>, 실종사건을 다루는 < FBI 실종수사대 >, 프로파일링(범행 현장에 남겨진 흔적들을 모아 범인의 성격, 콤플렉스, 취향, 연령대, 성별 등을 추정하는 범죄 심리 분석 기법)을 다룬 <크리미널 마인드>, 성범죄를 다루는 < SVU >, 수학으로 범인을 잡는 <넘버스> 등 새로운 수사물 시대를 이끌었다. < CSI 과학수사대 >의 간판이라 할 길 그리섬 반장이 이직(?)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길 그리섬 반장 역을 맡고 있는 윌리엄 피터슨이 현재 출연하고 있는 시즌 7을 끝으로 더 이상 < CSI 과학수사대 >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큰 성공을 가져다줬다지만 CSI 생활도 7년차에 접어드니 물릴 때도 되었다. 윌리엄 피터슨은 데뷔 직후 얻었던 몇몇 성공을 빼놓으면 내내 잘 풀리지 않았던 배우다. 윌리엄 피터슨은 우리나라에서 좀 독특한 경로로 알려졌는데, 1980~1990년대에 번성했던 한국 비디오 대여점이 바로 그 무대였다. 콘텐츠에 대한 수요를 채우기 위해 많은 양의 영화가 수입되다 보니 이런 영화가 다 들어오나 싶을 영화들도 여럿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스크린 수가 그리 많지 않던 극장 사정과 맞물려 동네 비디오 대여점은 지역 문화의 최전선이었다. 1992년으로 기억하는데, 비디오 대여점 사장님들이 단골들에게 권하던 영화 중에 <맨헌터>가 있었다. 1986년작인 이 영화를 권해 재고 정리인가 의심했지만 당시 큰 화제를 모았던 개봉작 <양들의 침묵>의 전편이라는 소개를 받으면 눈들이 번쩍 뜨이곤 했다. <맨헌터>는 <양들의 침묵>의 원작자인 리처드 해리스의 <레드 드래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 소설은 2002년에 <레드 드래곤>이라는 영화로 다시 만들어졌다.
 20년 전 <맨헌터>에서 FBI 심리수사관으로 활약하던 '젊은 오빠' 윌리엄 피터슨. <맨헌터>는 그리 좋은 흥행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열광적인 팬들이 있어 최근 미국에서 한정판 DVD가 발매되었다.
ⓒ DEG

<맨헌터>에 등장하는 FBI 심리수사관 역을 맡은 이가 바로 오늘의 그리섬 반장님, 윌리엄 피터슨이다. 2002년 <레드 드래곤>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맡았던 바로 그 역을 앞서 맡은 것인데, 예리한 심리 수사로 범인을 쫒는 모습을 보자면 14년 뒤에 과학수사대를 이끌 소질을 엿볼 수 있다. <맨헌터>에선 젊은 혈기가 느껴지는 날렵한 이미지라면 < CSI 과학수사대 >에서는 중후한 카리스마가 빛난다는 점이 좀 다르긴 하지만, 그 눈매와 까칠한 수염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맨헌터>는 <히트> <마이애미 바이스>를 만든 마이클 만 감독의 작품이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제작 당시에는 화제를 모았는데 실제 흥행에서는 그리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마이클 만 감독은 <히트>에 출연할 것을 권했지만 윌리엄 피터슨은 거절했다. 어떤 배역을 권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만약 <히트>에 출연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참고로 윌리엄 피터슨은 <플래툰> <좋은 친구들> 같은 대박 영화들을 거절한 전력이 있다.
 <양들의 침묵>에서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렉터 박사와 비교당하는 처지지만 <맨헌터>에서 브라이언 콕스가 연기한 렉터 박사가 소설에 가깝다. 브라이언 콕스는 악당 역을 꾸준히 맡아왔고 최근에는 <엑스맨 2>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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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헌터>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극과 극인데, 특히 브라이언 콕스가 연기한 렉터 박사에 대한 평가에서 갈리고 있다. <양들의 침묵>에서 안소니 홉킨스가 선보였던 렉터 박사는 선악을 뛰어 넘는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인물이라면, <맨헌터>의 렉터 박사는 그보다는 악당의 얼굴을 하고 있다. 어두운 지하에 도사리고 있는 <양들의 침묵>의 렉터 박사에 비한다면, 하얀색 감방에서 때론 침대에 누워 이죽거리는 모습까지 선보이는 <맨헌터>의 렉터 박사는 더 범죄적이긴 한데 영화적이지는 않다. <맨헌터>에서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하는 톰 누난 역시 카리스마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지만, 브라이언 콕스의 렉터 박사와 함께 원작 소설에 가까운 이미지라 평가받고 있다. 톰 누난은 2002년 < CSI 과학수사대 > 시즌 3에서 마술을 이용해서 살인을 시도하는 악역으로 등장해, 이제는 그리섬 반장님이 된 윌리엄 피터슨과 재회했다. 둘이 <맨헌터> 시절을 돌이키며 회포를 풀었는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에 탈출을 암시하는, 나름대로 신비한 캐릭터로 그려진 것은 일종의 '전관예우'였을까?
 <맨헌터>에서 연쇄살인범 역을 맡은 톰 누난은 <맨헌터> 감독이었던 마이클 만의 <히트>에 출연했다. 윌리엄 피터슨도 <히트> 출연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만약 출연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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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배우 자신으로 살기도 하고 캐릭터로 살기도 한다. 잘 짜인 배우와 캐릭터를 나누는 것은 관객은 물론 배우 자신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배우가 어떤 캐릭터로 각인되는 것은 복이 되기도 하고 족쇄가 되기도 한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천사 역으로 등장했던 피터 포크도 무게 있는 연기를 펼칠 때 "형사 콜롬보잖아?"하던 반응을 감당해야 했다.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좀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 CSI 과학수사대 >가 누리는 인기, 산업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그 중에 그리섬 반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시카고로 가서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는 윌리엄 피터슨의 바람이 무난히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그리섬 반장님을 더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윌리엄 피터슨이 배우로서 자기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든다. 그런데 길 그리섬과 윌리엄 피터슨은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맨헌터> 이후 16년. 윌리엄 피터슨과 톰 누난은 < CSI 과학수사대>에서 다시 만난다. 윌리엄 피터슨은 그리섬 반장 역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7년차로 접어드는 과학수사대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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