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아드보카트와 한국 축구를 비판한다

월드컵이 끝났다. 8강이 한창이고, 아직 열흘이나 더 남았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에게는 끝났다는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서울 광장은 붉지 않다. 한동안 울려 퍼졌던 붉은 함성도 없다. 회색 빌딩을 멋들어지게 장식했던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라는 펼침막이 외롭게 걸려 있다. 이제 우리는 광장에 모이지 않는다. 대신 엑스캔버스 앞에서 드라마 보기에 여념이 없다. 주몽과 해모수의 화려한 액션은 다른 나라 축구 경기보다 훨씬 재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서울 광장은 황량하게 느껴진다.

투혼, 이데올로기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이상헌, 2002년 김태영 그리고 2006년 최진철. 이 세 선수는 한국 축구의 현 주소를 너무나도 잘 말해준다. 그들의 붕대 투혼은 붉게 흘린 피 만큼이나 우리의 심장을 붉게 물들인다. 피를 흘리며 적의 공격을 봉쇄하는 이들의 희생정신은 한국의 투혼이 되고, 이는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투혼은 한국 축구의 대명사요, 이데올로기가 됐다. 2006년 투혼은 우리를 하나로 묶었다.

박정희, 공을 차다

흔히 12번 째 선수를 서포터들이라 한다. 서포터들의 응원이 승부의 중요한 변수가 됨을 의미한다. 한국에는 13번 째 선수가 있다. 바로 박정희다. 축구와 박정희라니? 얼핏 보면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하나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는 장기적인 플랜이 없다는 점인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월드컵을 앞두고 유능한 감독을 비싼 돈으로 잘 모셔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히딩크가 그랬고, 아드보카트 감독이 그랬다. 단기간에 보여준 이들의 카리스마는 한국 고유의 특성, 투혼과 맞물려 멋진 결과를 낳았다. 히딩크는 4강, ‘작은 장군’ 아드보카트는 월드컵 원정 첫 승! 반대로 코엘류 감독이나 본프레레는 한국과는 맞지 않는 감독이었다. 그들의 능력을 떠나 카리스마 없는 듯한 그들의 지도력은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중도에 그만둬야 했다. ‘단기 실적’이 안 좋으니 보따리 쌀 수밖에!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긴 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스포츠가 자본과 상업주의의 노예가 되어 애국심보다는 개인의 부와 명예의 수단으로 전락한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프랑스나 영국,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의 축구 강국은 국가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 축구를 하고, 그래서 때로는 열심히 안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몸을 사리기가 일쑤고, 국제 경기보다는 클럽 경기를 더 중시한다는 비판도 있다. 국가의 부름을 받는 순간 이 한 몸 불사를 각오를 하는 태극전사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감독의 카리스마는 오히려 유럽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국처럼, 투혼 빼면 아무것도 없는 선수들에게 한 번도 아니고, 매번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선정하려고 골머리를 앓는 이유가 뭔가. 오히려 카리스마 있는 감독 한 명에게만 의존하는 한국 축구가 아니라, 선수 개개인뿐만 아니라 축구 협회, 그리고 이들을 응원하는 12번 째 선수인 서포터들이 하나가 되어 한국 축구를 만들어가는 그런 장기적인 계획은 세울 수 없는 것일까.

이제는 왜 한국 축구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지를 말해야 할 차례다. 이미 글에서도 밝혔듯이 한국 축구는 ‘카리스마’와 ‘투혼’빼면 아무것도 없다. 투혼은 우리의 것! 카리스마는 서양의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가 그리고 민주주의가 단 기간에 순전히 국민의 열정 하나로 이뤄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국의 축구가 아주 짧은 시간에 유럽의 수준으로 올라가길 바란다. 축구에서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통한 ‘압축 성장’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카리스마 지도자를 갈망한다. 그 안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즐기는’ 축구는 없다. ‘절차상’의 4강의 역사를 쓰게 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히딩크와 아드보가 있을 뿐이다.

새벽 4시 꼭두새벽에 이슬비를 맞아가며 붉은 피를 토한 악마들 중에 한국의 프로팀이 몇 개나 되는지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프로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이는 또 얼마나 될까. 한국에는 박지성과 이영표, 조재진 등으로 대표되는 태극전사 23명 외에도 수많은 축구선수들이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축구화 끈을 동여 메고 지금도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4년 전 4강 신화를 달성한 후 카드 섹션으로 화려하게 보여줬던 ‘CU@K-리그’는 화려하지 않게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프로축구를 찾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었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절차상의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하듯, 축구도 마찬가지다. 몇 몇의 유능한 지도자를 통한 위에서부터의 축구 발전이 아니라, 축구 성장의 시작은 아래로부터여야 한다. 프로 경기장을 찾는 시민이 많아져야 하고, 대표팀뿐만 아니라 클럽 팀에게도 붉은 피를 토할 수 있어야 한다. 카리스마 있는 비싼 지도자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깨어있는 민중이다. 8년 동안 두 명의 카리스마 지도자에게 여론이 놀아나고, 상업주의가 그들을 영웅으로 부추기는 동안에 정작 중요한 축구의 발전은 없었다.

냉철하게 판단해 보자. 4년 전보다 나아진 게 뭐 있는지. 한국 축구는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한국 축구의 색깔이 돼 버린 압박과 스피드는 4년 전에 완성된 것이다. 스위스에 2대 0으로 패한 후, 아까운 16강 좌절이지만 세계 축구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자신감 운운하며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한국은 그것에 위안을 삼은 듯했다. 아니 억지로라도 애써 그렇게 생각하고자 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돈으로 사온 자신감치고는 어딘지 모르게 너무 허무하다.

한국 축구는 과장됐다고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성적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래서 16강 좌절은 좌절이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축구를 제대로 발전시키고, 세계 정상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이 아닌 진짜 ‘축구’를 사랑하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 4년이 아닌 일주일마다 붉은 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

축구협회의 직무유기

핌 페르베이크 코치가 새로운 태극호의 선장이 됐다. 한국 축구를 그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조금은 이른 감이 있지만, 그의 감독 선정은 문제가 있다. 너무나 빨리 짐을 싸고 러시아로 떠난 아드보카트의 공백을 메우고 8월부터 있을 아시안컵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핌 베어백의 감독 결정은 지나치게 빨랐다. 더구나 그는 한국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데이터 상의 화려한 경력도 ‘카리스마’도 없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축구 협회의 직무유기다. 4년마다 즐기는 한 번의 ‘쇼’가 끝났으니, 이제는 당분간 조용히 안정적으로 한국 축구를 이어가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무엇일까. 지금의 전력으로 한국 축구를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핌 베어백 감독도 2010년 목표는 8강이라고 다부진 각오를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 의지 또한 확고하다.

문제는 그는 ‘희생양’이라는 점이다. 그간의 축구 협회의 결정이 이를 말해준다. 1년 후 교체될 것이고, 또다른 카리스마의 지도자가 비싼 값에 들어올 것이다. 9개월 혹은 12개월의 단기간 학습, 그리고 투혼으로 무장된 한국 축구 선수들과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중무장한 대한민국은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월드컵을 준비할 것이다. 그 때의 화려한 축제를 위해 축구 협회는 핌 페르베이크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기술 축구 보강에 힘써야

8강에 오른 국가들을 보자. 독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잉글랜드,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포르투갈, 그리고 프랑스. 모두 기술을 갖춘 나라다. 투혼과 열정이 없을 리 없지만 기술력이 더 앞선 나라들이다. 한국이 스위스에 패하고, 홍명보 코치가 말했던 ‘앞으로는 기술 축구다’라는 말이 그래서 중요하다. 투혼의 달콤함과 짜릿함은 2002년 4강으로 만족을 하자. 이제는 홍명보 코치의 말대로 기술을 보강해야 한다. 그래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나 투혼으로 무장시키려는 이데올로기 조장이 아닌 축구 협회의 장기적인 계획이 중요하다.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2002년 이후에 준비했어야 옳다. 그러나 한국은 4강이라는 달콤한 승부에 도취되어 투혼만 있으면 되는 줄로 착각했다.

2010년이 아니어도 좋다. 그 다음 월드컵을 위해서라도 축구 협회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한국 축구를 발전시키려는 고민을 해야 한다. 붉은 심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더디게 가더라도 정말 축구다운 축구를 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축구가 있는 광장, 카리스마의 지도자보다는 선수 한 명 한 명의 자율적인 능력이 중시되고 그 것을 마음껏 뽐 낼 수 있는 환경, 단기간의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길게 보고 준비하는 축구 협회의 안목,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100년을 내다보는 교육정도는 아니어도 10년만 하고 그만 둘 게 아니라면, 적어도 몇 십 년은 앞을 보고 축구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축구 협회뿐만 아니라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이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2006-07-01 09:5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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