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와 피아자는 정말 원수지간?

피아자 샌디에이고 이적으로 8년 만에 동료료 만나

▲ 마이크 피아자의 샌디에이고 입단소식을 전하는 MLB 공식사이트
ⓒ MLB.com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던 공격형 포수 마이크 피아자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여러 팀으로의 이적설이 나돌던 그는 샌디에이고에 최종 안착함으로써 1998년 LA 다저스에서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 된 지 8년 만에 정든 캘리포니아로 돌아오게 되었다. 떠날 때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잘 나가는 포수였지만, 이제 선수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에게 많은 팬들은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피아자가 워낙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인기스타이기 때문에 그의 샌디에이고 이적은 미국 내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졌고, 한국에서도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렇게 피아자의 거취가 관심을 모으는 것은 샌디에이고가 박찬호의 소속팀이며, 과거 다저스에서 피아자와 박찬호가 서로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

더군다나 피아자와 박찬호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고, 박찬호가 피아자 때문에 손해본 것이 많다는 기사로 인해 사람들은 둘의 관계를 '악연'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생각처럼 과연 피아자와 박찬호는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이일까?

피아자의 도루 저지 능력, 박찬호에게 영향 있었나?

피아자는 공격력만큼은 최고였지만, 수비에서는 언제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92년부터 포수로 메이저리그에서 뛴 피아자의 통산 도루 저지율은 23.9%로 낮은 편이며 2005년에는 95회의 도루 시도 중 13회를 저지하는데 그쳐 13.7%라는 부끄러운 저지율을 기록했다. 이런 피아자의 낮은 도루 저지 능력이 박찬호가 투구하는데 부담을 준다는 것.

하지만 박찬호와 피아자의 기록을 살펴보면 재밌는 점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1997년 피아자는 포수로 뛰면서 155번의 도루 시도 중 43회를 저지해 27.7%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했다. 1996년이 18.0%, 1998년이 24.0%였던 것과 비교하면 도루 저지가 그래도 괜찮았던 시즌.

한편 박찬호는 1997년 32경기(29경기 선발, 3경기 구원)에 출장해 총 192이닝을 던졌는데 그가 허용한 도루는 총 6개였고 도루 저지는 10개였다. 그와 같이 선발투수로 활약했던 이스마엘 발데스가 16회 허용 6회 저지, 페드로 아스타시오가 8회 허용 4회 저지한 것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우수한 기록.

이 해에 박찬호는 선발로는 27경기, 구원으로 2경기 피아자와 호흡을 맞췄는데 여기서 박찬호와 피아자 배터리는 총 9회의 도루 저지를 기록했으며 저지율은 60%로 피아자의 시즌 기록의 3배에 가까웠다. 셋 포지션 동작이 간결하고 주자 견제가 뛰어난 박찬호의 기량이 피아자의 낮은 도루저지 능력에 상관없이 주자를 묶는데 기여한 것.

심리적으로 투구에 집중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출루한 주자에 대한 견제는 투수의 몫인 부분도 있음에 비춰본다면 피아자의 평균 이하 수비가 박찬호에게 영향을 줬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피아자는 변화구를 싫어해!

박찬호와 피아자가 배터리를 이루며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바로 볼배합 문제였다. 직구 위주의 볼배합을 요구하는 피아자 때문에 커브와 체인지업 구사를 늘리고 싶어했던 박찬호는 피아자에게 껄끄러움을 느껴왔다. 박찬호가 좋지 않은 투구내용을 보이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피아자가 리드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터져나오곤 했다. 물론 피아자가 수비에 부담을 느껴 직구 위주의 볼배합을 요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97년 박찬호를 생각해보면 무조건 피아자만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이 사실.

풀타임 선발 첫 해였던 1997년 박찬호의 강력한 무기는 빠른볼이었다. 'Cy Young Stuff'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그의 빠른볼 위력은 엄청났다. 반면 전체적인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능력은 빠른볼에 비하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박찬호가 변화구로 재미를 본 것은 체인지업과 슬러브가 완성단계에 들어선 2000년 이후였고, 그 이전에는 변화구가 빠른볼의 보조수단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박찬호의 특성상 피아자는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빠른볼을 많이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가장 타자를 제압할 만한 구질은 빠른볼이며 다른 것은 다소 불안하다고 생각했기에 피아자는 고집스럽게도 빠른볼을 박찬호에게 던지게 했고 이것이 구질의 다양화를 원한 박찬호와 갈등을 일으킨 원인이다.

단순히 피아자가 자신이 편하게 경기를 하기 위한 볼배합을 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잘못된 볼배합으로 계속 투수가 실점을 하면 포수도 수비를 오래 해야하니 힘들지 않은가? 당시 박찬호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피아자의 선택은 옳았을지도 모른다. 1997년 박찬호가 기록한 14승 8패 평균자책점 3.38의 기록을 보면 마냥 피아자를 비난할 수도 없을 듯싶다.

결국 피아자와 박찬호의 사이가 안 좋게 비춰진 것은 1996년 있었던 '양복 사건'과 1997년 있었던 '다국적 선수구성이 팀을 망친다'는 발언 때문이었고, 실제 경기에서 두 사람이 큰 갈등을 빚었던 적은 없었다. 자극적인 언론보도로 인해 마치 피아자가 박찬호를 미워하는 것처럼 비춰졌던 탓에 두 선수가 '악연 아닌 악연'이 된 셈.

어쨌든 전성기를 지난 두 사람은 새로운 팀에서 8년 만에 조우하게 되었다. 두 명 모두 주전자리도 보장받기 힘든 불안한 위치에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쨌든 서로 대립각을 세웠던 두 사람이 이제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서로를 어떻게 대할지 주목된다.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끝은 아름답게 두 사람이 야구선수로서의 인연을 마무리하길 기대해 본다.

박찬호 '양복 사건'과 피아자 '다국적 팀 관련 발언'

메이저리그에서는 신인 선수들에 대해 '신고식' 을 치르는 게 관행이다. 신인 선수에게 여장을 하게 하는 등의 짓궂은 장난을 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1996년 6월 19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첫승을 기록한 박찬호에게 팀 동료들은 라커룸에 있는 박찬호의 양복을 가위로 갈기갈기 찢어 그걸 박찬호가 입고 돌아다니게 했다.

하지만 신고식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박찬호는 소중하게 여기던 양복이 망가졌다며 라커룸 집기를 집어던지는 등 심하게 화를 냈고 미국 언론은 이를 기사화하며 박찬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 사건을 지켜본 피아자는 이듬해 '다국적 선수들로 팀이 구성되다보니 문화적 차이가 팀워크에 지장을 끼친다. 기초적인 메이저리그 문화마저 이해를 못하는 선수가 있다'는 발언을 했고 이에 중남미 선수들이 반발해 1997시즌 다저스는 심한 내홍을 겪기도 했다. 이로 인해 박찬호와 피아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소원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 조지환
2006-01-31 10:2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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