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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삼성증권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금까지 프로야구 22년 역사에서 3번(82년, 83년, 93년)밖에 없었던 한국시리즈 무승부가 2004 한국시리즈에서는 3번이나 나오고 있는 것.
보스톤 레드삭스가 연장 승부 끝에 극적인 승리를 차지한 미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이하 ALCS) 4, 5차전을 기억할 것이다. 만약 메이저리그에 국내 프로야구와 같은 '4시간 제한, 12회 이닝 제한 무승부'가 있었다면, 이같은 극적 승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나라는 그들처럼 극적인 승부를 즐길 수 없는 '무승부 제도'가 존재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2002년 4월 21일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10시 30분 이후 야구금지에 대해'라는 제목으로 무승부 제도의 병폐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 있다.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는 2003년 1년 동안 12이닝 횟수 제한만 있고, 시간 제한이 없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했으나 경기 시간을 촉진시키고, 선수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2004년부터 다시 기존 제도보다 더욱 강력한 4시간 제한이라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로써 일반적으로 6시 30분에 시작하는 야간경기는 10시 30분을 넘기지 못했으며, 낮 경기의 시간마저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시간제한 제도는 이미 많은 야구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고, 언젠가 문제가 될 것을 예상해 왔다. KBO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다. 어쨌든 지금 현재 각종 언론과 팬들로부터 이 제도가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수정 혹은 포스트 시즌에서만이라도 규정의 수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시간 제한 제도에 대한 스포츠 일간지, 스포츠 투데이(이하 스투)의 보도 태도이다. 스투는 8대8 무승부가 나온 지난 22일, 한국시리즈 2차전부터 3번째 무승부가 나온 7차전까지 무승부에 대한 옹호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다른 일간지를 비롯한 언론들은 "3번째 무승부 동네 야구야?" "코미디 무승부 시리즈 언제까지 할 건가" "무승부제 팬들이 떠난다" 등의 제목으로 4시간 제한 제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스투는 달랐다. 비난의 목소리는커녕 옹호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럼 지난 23부터 30일까지의 스투의 무승부 관련 기사 내용을 자세히 보자.
첫 무승부가 있었던 다음날인 23일자 신문에서 스투는 무승부에 대한 단순 보도만 내보냈다. "어색한 경기 제도가 치열한 승부의 김을 빼버린 격이 됐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있었지만, 무승부 제도에 대한 분석 기사는 없었다. 같은 날 "4시간 지나면 경기 끝 허탈한 야구팬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문화일보>에 비하면 대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5일 4차전에서 배영수 선수의 노히트 노런이 무색한 0대0 무승부가 나왔을 때는 보도 태도가 무승부 옹호로 바뀌었다. 26일자 1면에 나온 기사의 일부분을 보겠다.
현대 용병 브룸바가 한국시리즈 2차전을 9이닝 시간제한 무승부로 끝낸 뒤 "도대체 이게 무슨 한국시리즈냐"고 투덜거렸다. 드디어 그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입 닥쳐. 이게 바로 한국시리즈야"라고. (중략) 비록 승리와 패배를 나눠 갖는 데는 실패했지만, 삼성과 현대가 3시간 49분 동안 만들어낸 연장 12회 혈투는 한국시리즈 1승보다 더욱 영롱한 보석이었다. 한국의 모든 스포츠팬을 매료시킨 2004한국시리즈는 사상 최초로 무승부 2경기를 탄생시키며 현대와 삼성이 1승2무1패로 맞서게 됐다.
도대체 '모든 스포츠팬'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을까. 배영수 선수와 피어리의 투수 싸움도 볼 만했고, 좋은 수비도 나와 경기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무승부 제도는 보는 이들을 허망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스투 기자들은 그런 허망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버에는 3번째 무승부가 나온 7차전 이후 30일자 스투 1면 기사의 일부분을 살펴보자.
또 비겼다고 탄식할 필요가 없다. 덕분에 일찌감치 끝났어야 할 이 신명나는 놀이판이 11월 2일 10차전까지 펼쳐지게 생겼다. 역시 놀이판은 신바람이 나야 한다. 제 아무리 멋진 예술이라도 관객들의 흥이 살지 않으면 말짱 허사다. 펼쳐진 놀이판이 야구장이라면, 흥을 돋우는 데는 타격전이 최고였다. 투수들의 진양조로 축축 늘어지던 한국시리즈가 모처럼 타자들의 자진모리장단으로 바뀌었다.
3번의 무승부를 지켜보며 스투는 오히려 무승부가 잘됐다는 기사를 쓰고 있다. '무승부 예찬론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이것이 과연 필자만의 생각일까?
또 다른 스투의 이상한 보도 형태는 삼성라이온즈의 김응룡 감독 관련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투에 따르면 김 감독은 25일 경기 후 기자들에게 "더 이상 질문 없지. 그렇지, 당신들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지. 팬들을 위해 15회가 아니라 새벽까지 경기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안 해. 우리도 선진 야구인 메이저리그를 따라가야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을 만한 발언이다. 지난해 감독자 회의에서 8개 구단 감독들이 모두 찬성한 내용이라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말이지만, 김 감독의 발언에는 팬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스투는 "책임전가 김응룡 감독 궤변 끝은" "앞뒤 안 맞는 김응룡 연장 궤변" 등의 기사로 김 감독 깎아내리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김 감독이 왜 이러한 내용의 이야기를 했는지, 팬들은 이번 무승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분석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야구라는 스포츠에는 무승부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의 체력 문제나 경기 시간 소요 문제는 야구의 일부분일 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새벽까지 펼쳐지는 경기들을 보면서 누가 비난을 하겠는가? 그들은 야구에는 무승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무승부를 원하지 않는다. 특히, 큰 경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만약, 정규시즌에서 무승부를 없애기가 어렵다면, 포스트 시즌만이라도 무승부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현재 KBO 홈페이지를 보면 무승부에 대한 팬들의 반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자유게시판은 아예 무승부의 불만을 성토하는 장이 됐다. 야구팬들의 이러한 여론은 무시한 채, 무승부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 스투. 이는 분명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 하는 보도 형태이다.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요즘 무가지 스포츠 신문의 탄생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스포츠 신문 업계가 더 어려워졌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러한 때일수록 스포츠 일간지가 전통 스포츠 언론으로서의 모습을 되찾아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올 시즌은 국내 프로야구에게 있어 어려운 한 해였다. 야구팬들의 관심 저하는 관중감소로 이어졌고, 병역비리 사건까지 터지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나마 포스트 시즌이 시작하면서 팬들이 관중석으로 돌아와 '그래도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코리안 시리즈 3번의 무승부를 보여주면서 다시 한번 야구장에서 팬들을 몰아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KBO와 구단, 선수를 비롯한 야구계와 스포츠 언론 모두의 각성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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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0-30 1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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