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 대한 편견을 생각하다

이와이 슌지 <4월 이야기>

▲ 영화포스터
ⓒ 씨네서울
<러브레터>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1998년작 <4월 이야기>를 보았다. 극적인 사건도, 멋있는 대사도, 인물들간의 갈등도 없는 심심하고 담백한 영화였다. 67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만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약간 당혹스럽기도 하였다.

보고 난 뒤 영화에 대한 리뷰를 인터넷에서 찾아 읽어보았다. 실망과 감탄이 비슷한 비율로 존재했다. 실망하는 사람들은 영화가 아닌 긴 뮤직비디오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한없이 가벼운 영화라 평했고 감탄하는 사람들은 비평의 잣대로 감독의 뛰어난 감수성을 재단하지 말라는 글도 보였다.

알려져 있다 시피 <4월 이야기>의 줄거리는 무척 간단하다.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니레노 우즈키가 훗카이도에서 도쿄의 명문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우즈키의 진학은 놀라운 것. 그녀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즈키가 입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를 그녀의 입을 통해 마지막 장면에서 말해준다. 관객들은 이제야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감독은 관객들의 기대를 배신한다. 영화는 사랑의 시작에서 멈추어 버린다. 대개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결말과 어긋난 것이었다.

스토리와 드라마가 빈약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이 영화는 대신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들의 배열과 일상에서 부딪히는 사람들의 소소한 배려들을 세심하게 배치하면서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품어내고 있었다. 그 매력의 본질은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행하는 작은 친절들. 그것이었다.

영화의 첫 장면 우즈키가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어 훗카이도를 떠나게 되었다는 가족들의 말에 역무원 아저씨 역시 마치 가족처럼 배웅을 해준다. 이웃들간의 정이 도타운 작은 마을에서만 가능한 풍경일 것이다.

우즈키의 자취집으로 이삿짐을 가지고 오는 이삿짐 센터의 총각 직원들. 그들이 집을 찾지 못해 택시 기사에게 길을 물어본다. 그는 벚꽃이 눈처럼 쏟아지는 아름다운 골목길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친절하게 길을 알려 준다.

▲ 벚꽃이 지던 골목길
ⓒ 씨네서울
택시 기사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손님들이 집을 나서자 좀더 편안하게 택시를 탈 수 있도록 이삿짐 트럭에게 잠시 길을 비켜달라고 한다. 길을 물어봤던 총각들은 황급히 트럭을 뒤로 빼고 리무진 택시로 기모노를 입은 일본여인들이 올라탄다. 그녀들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는 총각들. 그들의 표정이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이삿짐 센터의 총각들은 혼자 있는 우즈키에게 한번쯤 치근덕거릴 것도 같으련만 이삿짐을 꼼꼼하게 내리고 이사에 익숙지 못한 그녀에게 이런 저런 충고를 해주며 일에만 충실한다. 그렇게 이삿짐 배달을 마무리짓고 환한 얼굴로 떠나가는 그들.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내는 우즈키의 옷에서는 꽃잎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길을 잘못 알려 주었다고 황급히 뛰쳐나와 우스키의 자전거를 쫓아가는 가게 아줌마라던가, 그녀가 던지는 릴낚시의 모습을 말없이 교정해 주고 가는 중년의 남자. 알지도 못하는 우즈키에게 우산을 선뜻 빌려준 다음 헤어질 땐 살짝 인사를 해주고 가는 백발의 교수 등 이렇듯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행하는 세심한 친절들이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특히 우즈키의 배려를 거절했다는 것에 가책을 느껴 밤늦게 카레를 먹으러 오는 이웃집 여자의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이 사소한 친절과 배려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조용하게 속삭이는 듯 했다. 그것이 바로 개인들의 외로움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밀어이기도 할 것이다.

▲ 우즈키는 처음 남자 선배와 눈을 마주친다.
ⓒ 씨네서울
하루를 보내면서 마주치는 소소한 사건들이 모여 일상을 만들고 결국 우리의 삶을 이룰 터. 대개의 영화들은 우리 삶 속에 감추어진 환상의 존재를 환기시켜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악센트를 부여하여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이 각박한 현실을 잊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4월 이야기>는 우리가 꿈꿀 수 있는 환상을 환기시켜주기보다 우리네 일상의 소소한 따듯함과 섬세한 감정의 결을 확인시켜주는 영화였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묻어있는 평화로움과 사람들에 대한 배려들이 영화의 곳곳에서 모나지 않게 드러나 있었다. 그것을 찾아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또한 주인공 역을 맡은 마츠 다카코가 직접 연주했다는 피아노 반주의 영화 음악들은 봄볕의 화사한 영상과 어울려 풍부한 감성을 자아냈다.

덧붙이자면 영화 문법상 화면에 보이는 사건들은 대게 결말과 연관이 되어있다거나 드라마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장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4월 이야기>에서는 영화의 결말과 드라마에 별 연관 없어 보이는 해프닝들이 이어진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즈키가 좋아하는 남자선배에 대한 감정으로 인해 영화의 짜임새는 결코 허술해 보이지 않았다. 뻔한 주제이면서도 색다른 멋이 느껴졌다.

▲ 영화 마지막 장면 중에서
ⓒ 씨네서울
2003-09-19 15:0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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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아직 내가 누구인지 명확히 설명할 만한 언어를 찾지 못하고 계속 고민중이다. 무엇을 이루기 보다 무엇은 안하고 살면 안되나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종종 아프다. 돈보다는 명예를 명예보다는 행복을 찾고 싶다. 그 행복은 사람들과의 교감을 나눌 수 있을 때 가능 그 교감은 또한 문화적 감수성이 맞을때. 그 문화적 감수성을 위한 글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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