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프로야구 팬이라고 자부하는 필자도 가끔 프로야구 경기를 보다보면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다. 호쾌하고, 시원시원한 야구가 아닌 오직 승리를 위한 '속 좁은' 야구가 펼쳐질 때면, 경기 자체가 보기 싫어질 때도 있다. 좋게 말하면, 짜임새 있는 야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잦은 작전과 성적지상주의적 경기진행이 과연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지를 두고두고 생각해 봐야할 문제일 듯 싶다.
4월 30일 정규시즌 1위팀 삼성라이온즈와 현대유니콘스간의 더블헤더 2차전 경기가 이렇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팬들은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야구를 원하지만, 구단이나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은 재미있는 경기보다는 이기는 경기를 추구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정규시즌 1, 2위 팀간의 경기여서 팬들의 관심을 끌기는 충분하였지만, 승부에 너무 치중한 경기는 여느 경기보다도 재미없게 치러졌다.
4월 30일 대구시민구장에서 벌어진 홈팀 라이온즈와 유니콘스간의 더블헤더 2차전은 유니콘스가 1차전을 이미 3대1 승리를 거둔 후에 치러졌다. 이날 경기는 김재박 감독의 특유의 이기기 위한 작전, 김수경의 호투, 그리고, '헤라클라스' 심정수의 활약에 힘입어 더블헤더를 독식하는 동시에 시즌 11연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단독 1위 자리에 처음 올라섰다.
확실한 선발과 그저 그런 선발
올 시즌 유니콘스가 11연승을 거둔 주된 이유 중에 하나가 선발투수들의 맹활약이다. 4승 무패의 기록을 자랑하는 정민태 선수, 이날 더블헤더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4승째를 챙긴 바워스, 그리고, 이날 경기 전까지 4경기 출전 2승 2패 2.20의 방어율을 자랑하는 김수경 선수까지 원, 투, 쓰리 펀치까지 갖춘 유니콘스 선발진이다.
이날 선발로 나선 김수경 선수는 6 2/3이닝 동안 110개가 넘는 볼을 던지기는 했지만, 안타 6개 볼넷 2개 무실점의 뛰어난 피칭을 보여주며 1승을 챙겼다. 특히, 1회(1사 1,2루), 2회(1사 2루), 4회(무사 3루), 6회(1사 1,2루)에 모두 위기를 자초했지만, 슬기롭게 삼진, 병살 등으로 위기를 막아내며 무실점 호투를 하였다. 사실 김 선수의 단점이라면, 볼이 높고, 볼의 종속이 초속, 중속에 비해 느려 자칫 가벼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각도 큰 변화구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날 투구에서는 그가 변화구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역이용 변화구보다는 직구위주의 투구를 가져가며 변화구로 결정구를 잡아가는 뛰어난 피칭을 보여주었다. 변화구에 대비를 하고 있던 라이온즈 타자들의 베팅 타이밍을 완전히 뺏는 투구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날 주전 김동수 선수 대신 마스크를 쓴 이택근 선수의 투수리드에 대하여도 칭찬을 해주고싶다.
반면, 더블헤더 2차전 라이온즈 선발투수로 나선 강영식 선수는 1.42의 낮은 방어율을 가지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중간계투로만 출전해 선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의 선발 출장이었다. 체중을 실어서 던지는 강 선수의 볼 끝은 아주 좋아 보였지만, 경험 탓인지 하위타선에서 점수를 주었고, 집요한 김재박 감독의 작전에 말려들기 일쑤였다. 물론, 김응룡 감독은 4회 정도까지만 잘 막아주길 바랐기는 했겠지만, 결국 1회부터 4회까지 매회 찬스를 내주며 결국 4회 2아웃 이후 강판 당하였다. 요즘 라이온즈를 보면, 에이스 엘비라가 1승 1패 방어율6.89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 후 임창용, 김진웅 선수로 근근히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선발진의 흔들림이 잘나가던 라이온즈가 결국 유니콘스에게 선두자리를 빼앗기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내가 슬럼프라고?
이날 경기 MVP를 뽑으라면, 심정수, 김수경 선수도 아닌 유격수 박진만 선수를 뽑고 싶다. 박 선수의 수비에 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요즘 그는 타격 슬럼프에 빠진 듯 보인다. 이날 경기 전까지 .190의 낮은 타율을 보였고, 삼진도 플랭클린에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많다. 하지만, 이날 그는 아주 좋은 타력을 보여주었다. 4타수 2안타 2득점 1타점. 2회초 공격에서는 우익수 키를 넘는 2루타를 쳐내 득점에 성공하였고, 4회초에서는 좌익선상의 2루타를 쳐내며 다시 득점에 성공하였다. 경기 초반 분위기를 유니콘스 페이스로 이끌어 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박 선수가 해낸 것이었다.
지기는 했지만, 라이온즈의 이승엽 선수도 오랜만에 좋은 타력을 보여주었다. 이승엽은 사실 16개의 타점과 6개의 홈런을 쳐내기는 했지만, 타율이 .186으로 아주 저조하다. '칠 때는 쳐주는 선수'이기는 하지만, 국민타자로써 타율이 너무 낮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달랐다. 4타수 4안타를 기록했고, 4안타 중 3안타가 모두 2루타 였을만큼 장타력을 자랑했다. 물론, 후속타 불발로 1득점밖에 얻지 못했지만, 자칫 슬럼프라고 볼 수 있는 이승엽 선수에게는 타격감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경기였다고 보여진다.
심정수, 마해영, 그리고 홈런경쟁
지금현재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홈런 레이스에 뛰어든 선수는 모두 5명이다. 전날까지 두산베어스의 쿨바를 비롯 유니콘스의 플랭클린, 심정수, 라이온즈의 이승엽, 마해영 등 모두가 홈런 6개로 공동 선두에 나서고 있었다.
이날은 심정수 선수와 마해영 선수가 각각 홈런 1개씩을 쳐내며 공동선두로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먼저 유니콘스의 심정수 선수는 7회초 공격에서 좌측 담장을 넘기는 큼직한 시즌 7호 홈런을 쳐냈고, 8회말 라이온즈의 공격에서는 마해영 선수가 중견수 키를 넘기는 홈런을 쳐내며, 그도 역시 시즌 7호 홈런을 쳐냈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는 의미에서 심정수 선수의 홈런이 큰 의미를 보여주었지만, 0대6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따라갈 수 있는 막판 뒷심을 보여준 의미에서 마해영 선수의 홈런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잔루와의 전쟁
이번 경기는 유니콘스, 라이온즈 두 팀 모두 다에게 잔루가 너무 많았다. 라이온즈는 7개의 잔루를 남기며 패배의 원인을 제공하였고, 유니콘스는 무려 10개의 잔루를 남겼다. 더블헤더 1차전과 합친다면, 유니콘스는 무려 18개의 잔루를 하루에 남긴 것이었다. 그만큼 라이온즈와 유니콘스 모두 좋은 찬스를 여러 차례 무산시켰다는 의미가 부여된다. 물론, 유니콘스가 정규시즌 1위에 올라서긴 했지만, 잔류 갯수에서도 단연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렇기에 유니콘스 타선의 집중력은 단점으로 꼽힐 듯 보인다. 앞으로 지속적인 성적을 이번 시즌 거두기 위해서는 잔루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날 경기의 분수령도 잔루였다는 것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4회말 라이온즈 공격. 0대2로 뒤지고 있었지만, 라이온즈의 타선이라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선수 타자 이승엽 선수가 우익선상 2루타를 치고 나간 시점에서 마해영 타석에서 와일드피치가 나와 무사 3루의 찬스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타격 5위의 마해영 선수는 삼진을 당해버렸고, 이어 나온 브리또 선수도 삼진을 당해 버리며 순식간에 2사 3루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6번 양준혁 선수까지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적어도 1점을 따라갈 수 있는 찬스를 팀의 중심타선 때문에 놓치고 말았다.
결국, "위기 뒤에 찬스, 찬스 뒤에 위기"라는 말이 있듯, 5회초 유니콘스는 무사만루의 찬스를 만들었고, 야수선택과 와일드 피치를 통해 2점을 얻어내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결국, 라이온즈 중심타선의 빈약한 활약이 패배를 자초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기기 위한 야구, 재미없는 경기
경기 후반 홈런 포들이 터지며 재미있는 경기가 펼쳐지기는 했지만, 이번 경기는 정말 김재박 감독 작전의 경기였다. 경기 초반이라고 볼 수 있는 2회와 3회 번트작전이 무려 3번이나 나왔다. 물론, 번트작전으로 인해 유니콘스는 기선제압용 2점을 얻긴 했지만, 그만큼 팬들이 경기에서 흥미를 잃을 수 있는 결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김 감독은 이날 더블헤더 1차전에서도 3개의 보내기번트를 시도했었다. 이것은 김 감독이 철저하게 이기기 위한 야구를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대목이다. 물론, 이기는 것은 중요하다. 당연히 이기면, 팬들이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는 것이 가장 큰 주목적이 되면 안 된다. 그것이 주목적이 되면 경기의 승부만 중요시되어 경기자체의 재미는 잃게 될 수밖에 없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보다 팬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프로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팬들이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프로스포츠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김재박 감독이 취임한 이후 유니콘스는 매년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올해도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김재박 감독과 유니콘스의 야구가 과연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가는 한번 생각해 봐야할 부분일 것이다.
경기 당 평균관중이 2000명~3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은 현대유니콘스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
| 2003-05-01 12:59 |
ⓒ 2007 OhmyNews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