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보> 영화가 위로해준 일상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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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처음 일본만화를 보았다. 그때 본 만화 중에서 아직까지도 가장 인상적인 만화는 <드레곤 볼>이나 <북두의 권>이나 <시티 헌터>가 아닌 <비디오걸-전영소녀> 라는 만화였다.

정확한 일본어 제목을 알지 못하지만 당시 학교 앞에서 500원이면 사서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조잡한 일본 번역만화 중에서 유독 <비디오걸-전영소녀>에 눈이 갔던 것은 아마도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관음증이라던가 이성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그 만화가 매우 잘 포착해서 흥미를 자아내는 구성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화 포스터
만화의 주된 줄거리는 사춘기 남학생이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 왔는데 그 비디오의 여자 주인공이 실제 현실로 나와서 그 남자주인공과 아슬아슬한 심리적 교감을 나눈다는 것이었다.

사춘기 남학생의 중요한 관심사인 이성교제에 대한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을 결코 유치하지 않은 수준에서 풀어냈던 그 만화는 우렁 각시의 모티브와 유사했었다. 일본 특유의 수직적 남녀관계를 교묘하게 숨겨놓은 그 만화는 남자를 위해 순종하는 예쁜 여자라는 남성들의 환상을 그대로 재현해낸 만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로울 때마다 나타나는 어여쁜 소녀. 말벗도 되어주고 따뜻한 체온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인쇄된 만화에만 만족하지 못했던 나는 일본애니메이션에 정통했던 친구를 졸라 기어이 원판 애니메이션을 구해서 보았다. 그 비디오를 보면서 혹시나 비디오 속에서 저 여자주인공이 나오진 않을까 당치 않은 기대감에 부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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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는 비디오의 화면이 욕망의 은밀한 소통도구였다면 지금은 단연코 인터넷이다. 조금의 열의만 있다면(?) 남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시청각적인 부분에 있어서 성적인 환타지의 모든 것을 체험해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자신의 신용카드번호만 있다면 할렘의 왕처럼 모니터 안에 있는 여자들의 위에서 군림하고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채울 수 있다. 물론 모니터를 끄고 난 뒤 주변에 널려 있는 휴지를 보면서 느끼는 자괴감, 혹은 모멸감에 대해서 둔감하다면.

지금도 인터넷을 접하고 있는 어둠 속의 남자들은 절반 이상 자신의 성적인 욕망에 이끌려 각종 성인 사이트를 전전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혐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단지 남자들이란 성욕을 이겨내지 못하는 짐승들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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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장점 중에 하나가 성인영화를 은밀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방에서 이어폰을 끼고 불을 꺼 놓은 채 성인영화를 몰래 볼 수 있다는 것. 주변의 남자들과 서로 이견이 없었다.

새벽 2시. 밤낮이 바뀐 생활리듬을 정상적으로 회복하기가 어렵다. 일찍 잠을 잤지만 어김없이 새벽1시에 눈이 떠졌다. 앉아서 책을 읽자니 정신집중이 안되고 누구에게 전화를 걸자니 늦은 시각이다. 혼자 술을 마시자니 처량하고 결국 다시 인터넷에 접속한다. 딱히 할 것도 없으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한다. 그동안 뜸했던 게시판에 글을 남길까?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낼까?

하지만 결국 습관처럼 성인사이트를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그다지 재미가 없어졌다. 시신경은 쉽게 피곤해지고 더군다나 한 번 본 것은 거짓말처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아니 그런걸 보려하는 스스로의 욕망이 짜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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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영화 사이트에 간만에 접속을 했다. 만화를 볼까, 생각 없이 액션영화를 볼까 하다가 <순애보> 라는 제목에 마우스를 클릭 한다.‘아 신문에서 보았던 영화구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영화인데’.‘재미없겠지. 2시간이나 되는군. 보다가 졸리면 자야겠다.’결국 영화 <순애보>는 나를 재워줄 수 있는 수면용 영화로 낙점 되었다.

처음 장면이 펼쳐진다. 잔잔한 음악에 제주도인지 외국의 어디인지 참으로 평화롭게 보이는 길을 카메라가 부드럽게 따라가고 있다. ‘10분 안에 잘 수 있겠구나.’감기는 눈꺼풀의 무게를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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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기 시작했던 영화 <순애보> 인터넷으로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던 영화였다. 특히 이정재의 그 의뭉스러운 표정과 일상에 푹 젖어든 연기는 단연코 일품이었다. 예컨대 한국 영화에서 술 먹은 다음의 괴로움을 그처럼 실감나게 연기하는 배우를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 연기를 위해 실제로 술을 먹고 토를 했다고 한다.

여주인공 이야역을 맡은 다치바나 마사토. 이야역은 참으로 연기하기가 까다로운 역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연스럽게 그 역할에 몰입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입에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주었다. 이 영화가 그녀의 첫 번째 영화라고 하니 앞으로의 연기가 더욱 기대되었다

배우의 연기가 장면마다 녹아있는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에서 수위를 차지한다. 그 만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스크린의 현실을 나의 현실과 대입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감독이 원하는 대로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 그런 힘의 근원은 단연 배우의 연기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영화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것은 현실과 유리되지 않은 채 창조된 인간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중 인물에 완전히 동화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 마치 저와 같은 인물이 실제의 현실에서도 존재하게끔 믿어 의심치 않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순애보>는 보여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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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하지만 장면 하나 하나의 섬세한 디테일과 서로 유기적인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단점을 커버한다. 그리고 감독이 곳곳에다가 자신만의 유머를 숨겨놓았다. 그 유머가 목청을 들어내도록 우습지는 않지만 입가를 살짝 올릴 수 있게는 해준다.

또한 이 영화는 사랑의 시작에 대한 영화이다. 그것이 제목처럼 순애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자체가 영화의 주를 형성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고 보면 자신의 지루함을 다소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순애라는 여자가 등장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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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가장 깊고도 은밀한 법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 주고받는 상처는 기실 가족 간에 주고받은 상처를 위장하기 위한 서로의 수단일 수 있다. 자기들끼리 사랑하는데 있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사에 있어 비틀어진 관계가 그 사랑을 방해하거나 억압하거나 머뭇거리게 한다. 이 영화에서도 가족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나온다.

멀쩡해 보이는 이야(다치바나 마사토)의 집안. 그러나 대화가 사라졌고 부부는 스와핑을 한다. 그 건조함과 위선적인 집안의 분위기가 싫어 이야는 자살을 기도하려 한다. 이것이 동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들의 축이다

남자 주인공 우인(이정재)은 삶에 대한 의욕이 절실해 보이지 않는 남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동사무소를 다니지만 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은 찾아볼 수 없다. 맘에 드는 여자가 있지만 그녀는 그의 마음을 알아줄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 만큼 삶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

 주인공 우인
부모를 잘 만난 덕에 굳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는 겉보기엔 참으로 속 편한 캐릭터이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의 의사소통에 장애를 느끼고 하나뿐인 누이는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우인은 인터넷을 통한 포르노 사이트를 섭렵하며 자신의 삶을 소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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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세세한 일상적 디테일과 그 물결에 순응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삶이란 화면에서 보여지는 일상처럼 소소하고 또 개인적일 것이다.

'나만 혼자서 이러고 사나. 남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남들은 회사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하고 화사한 연애를 즐기며 폼나게 사는데 나는 매일 밤 집안에 틀어박혀 비디오나 보고 할 일없이 성인사이트나 헤매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을 스스로는 아니라고 인식하고 살게끔 매스미디어에서 보여지는 화면들에 어느덧 나는 깊이 중독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영화 혹은 드라마가 주는 비현실적인 감각의 강요에서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도감을 느끼게 해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구나. 저 영화를 준비했던 사람들도 나의 현재와 비슷한 시간을 살았던 모양이구나.’ 그러면서 작중의 인물들에게 자신을 대입해보거나 혹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듯이 화면을 응시하게 된다. 그리고 별다른 의식의 저항 없이 편한 시선으로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이것은 분명 감독의 재능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속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끌어들이는 능력. 그런 면에서 이재용 감독의 능력은 탁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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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서두에 <비디오 걸-전영소녀>라는 일본애니메이션을 말했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 만화가 떠올려진 것은 아마도 여자주인공 이야의 빨간 구두 아사코가 바로 만화의 비디오 걸처럼 주인공 우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니터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위로해주는 이상형의 여자. 그 여자가 현실의 삶 속에서 재현된다면. 그것은 남성들이 바라는 최고의 환타지가 아닐까

감독은 그런 남자들의 마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남자들의 마음을 붙잡고 가기에는 화면의 영상이 너무 저자극적이다. 그 흔한 키스신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다. 나오긴 한다. 그러나 벗고 있는 것은 이정재의 탄탄한 상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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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독이 이미숙 이정재 주연의<정사>를 만든 감독이란 것을 보고 나서 알았다. <호모 티비쿠스>라는 단편영화로 일찍이 주목을 받았던 신예감독이라는 것도. 그러나 두 편 다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화들과 이 영화와의 연관성을 집어내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다른 평들을 읽어보니 이 영화는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다. 특히 정사의 주인공 우인과 여기서의 주인공 우인은 이름이 같다. 혹자는 우연과 인연에서 한 글자씩 따온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멋있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혼자서 보내는 개인의 시간, 그 일상의 시간은 주인공 우인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백수의 삶을 살면서 내심 불안에 떨고 있는 나에게 이 영화는 적잖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것은 주인공 우인처럼 관성적으로 인터넷 성인공간을 찾곤 하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그 이유가 단순히 말초적인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닌 내 안에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 혹은 어떤 사랑에 대한 부재의 자리가 그런 행동의 근원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변명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을 만나게 된 우인은 이후 모니터 속을 헤매며 자괴의 밤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감독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 사랑이 가져다 줄 우인의 변화를. 그 변화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들의 몫이었다.

영화가 비록 나의 삶을 바꾸어 놓지는 못할지라도 내 기분을 바꿔주기는 한다. 그 한순간의 변화가 쌓이다 보면 삶이 변하도록 영향을 줄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보았던 영화 <순애보>.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집에 틀어박혀 비루하고 지루한 일상을 영위하던 시절. 한순간이나마 작은 위로를 받았었다.

그와 같은 사람이 행여 나 외에도 있었기를. 그 사람이 혹시라도 밤늦은 시각 인터넷을 방황하다 이 글을 읽고 씨익 웃을 수 있다면 모니터의 화면이 차갑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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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아직 내가 누구인지 명확히 설명할 만한 언어를 찾지 못하고 계속 고민중이다. 무엇을 이루기 보다 무엇은 안하고 살면 안되나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종종 아프다. 돈보다는 명예를 명예보다는 행복을 찾고 싶다. 그 행복은 사람들과의 교감을 나눌 수 있을 때 가능 그 교감은 또한 문화적 감수성이 맞을때. 그 문화적 감수성을 위한 글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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