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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인공 하지원과 신인 최우제 |
| ⓒ 토일렛 픽쳐스 |
목에 걸고 다닐 정도로 친숙해진 핸드폰에서 귀가 찢어질 듯한 괴성이 들려온다면, 무서움에 벌벌 떨게 될까? 아마 대부분은 당장 01X에 전화를 걸어 통화품질을 놓고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번호를 썼던 사람들이 모두 ‘저세상 사람’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스라치게 놀라 핸드폰을 집어 던져버릴까? 아니면 그 사람들이 왜 죽었는지 탐문을 하게 될까? 평소 호러 마니아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탐정이 돼보고 싶을 것이다.
안병기 감독의 차기작 〈폰〉은 현대인의 가장 대중적인 소유물인 핸드폰을 공포의 소재로 삼는다. 9988-6644란 번호의 핸드폰 소유자는 모두 이상한 전화를 받고 죽게 된다. 그리고 그 번호는 지원(하지원)에게 넘겨진다. 하지만 우연찮게 괴성의 전화를 친구의 딸인 영주(은서우)가 받게 되고, 지원의 고통은 영주에게로 넘어간다. 대신 그는 탐정을 자처하고 나선다.
안병기 감독은 지난 부천영화제 Q&A 시간에서 “아직까지는 공포영화의 장르를 교과서적으로 따라한 것일 뿐이고, 다음 작품에서는 나름의 스타일을 보여줄 것”이라고 겸손하게 코멘트했다. 더불어 〈폰〉의 시놉시스는 이만희 감독의 호러물과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밝혔다.
밤마다 고양이가 울어대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 시체가 집 안 어딘가에 있었다는 게 〈검은 고양이〉의 플롯. 그리고 동양 공포영화의 주된 모토인 ‘한의 정서’를 담았다는 것까지도.
감독의 말대로 〈폰〉은 기존 호러 영화에서 여러 요소를 가져왔다.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기댄 한의 정서,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 삼아 이어가는 긴장감,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클라이막스를 향해 의연한 자세로 돌진하는 주인공, 거기에 여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괴담 등의 에피소드를 섞었다. 그리고 감독은‘염두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나카다 히데오의 〈링〉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몇몇 신도 있다.
〈폰〉은 갈등의 구조나 원한의 근거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때문에 호러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인, 관람 후 설왕설래할 거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심플하다. 또 지나칠 정도로 원한의 모티브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핸드폰의 첫 임자가 죽음을 맞게 되는 개별 시퀀스만으로도 하나의 드라마를 엮을 수 있을 만큼 과도한 친절이다.
전체적으로 지원에게 너무 많은 비중을 실어준 느낌이다.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사건의 실마리부터 결말까지 혼자서 헤쳐나가는 양이 영락없는 셜록 홈즈를 연상시킨다. 또한 괴전화를 받은 사람은 예외 없이 죽거나 고통을 받는 데 반해, 그녀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호러영화로 가다가 후반부에서 갑자기 ‘이 부부가 이혼해야 할까요?’를 묻는 가정 문제 드라마처럼 변질되는 ‘장르 이동(?)’도 긴장의 끈을 놓게 한다.
부천영화제 폐막 상영에서 〈폰〉은 호(好), 불호(不好)의 반응이 분명하게 엇갈렸다. 100분 정도의 러닝타임동안 옆사람을 붙잡고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섬뜩한 장면이 최소한 대여섯 번은 된다는 관객은 한국 호러영화치고는 ‘꽤 무섭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그 섬뜩한 쇼트조차도 전후 관계에 어긋나는 느닷없는 깜짝쇼에 지나지 않아, 놀랄 준비도 못하는 사이 지나가버렸다는 의견도 PiFan의 게시판을 채우고 있다. 어쨌든 전작인 〈가위〉와 비교해 볼 때 안병기 감독의 솜씨는 다채롭고, 하지원의 연기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전작과 비교했을 때만 그렇다.
가장 아쉬운 점은 ‘듣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는 무시무시한 핸드폰 음성을 단 한번도 풀버전으로 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링〉 1편에서 우물을 통해 나온 귀신이 브라운관 밖으로 기어나올 때의 섬짓함에서 관객은 고개가 뒤로 젖혀질 수밖에 없었다. 그 장면이 〈링〉이라는 영화 그 자체이니까. 마찬가지로 〈폰〉이라는 영화의 키포인트는 바로 문제의 핸드폰 음성이다.
그러나 100분 동안 내내 기다려도, 간단한 쇳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 소리만 본때나게 들려줬어도, 오늘밤 울리는 핸드폰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