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의 수를 따지는 전략은 없어야

월드컵, 16강으로 가는 길 - 2

조 편성이 끝나자 한국이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포르투갈에는 지더라도 미국은 반드시 잡고 폴란드와는 최소한 비겨야 한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이 역시 많이 들어보던 레퍼토리이다.

지난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네덜란드에는 지더라도 멕시코를 잡고 벨기에와는 비겨야 한다고 했으며, 94 미국 월드컵에서도 독일에는 지더라도 스페인과는 비기고 볼리비아를 잡아야 한다고 했었다.

실제로 경우의 수를 한번 따져보자. 한국이 1승 1무 1패를 하더라도 폴란드가 미국에 이기고 포르투갈에 진다면 우리와 골득실을 따져야 한다. 폴란드가 미국에 이기고 포르투갈과 비긴다면 우리는 당연 탈락한다.

즉 1승1무1패로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포르투갈이 전승을 해주고 폴란드와 미국은 서로 비겨줘야 한다. 여기에서 조금만이라도 빗나가면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아주 낮아져 버린다. 다시 말하면 1승1무1패 전략은 말도 안되는 전략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 국가가 32개국으로 늘어나면서 조 3위가 16강에 진출했던 시절은 이미 끝났는데도 왜 이러한 전략들을 말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월드컵 본선 진출국들의 전력이 엇비슷하기 때문에 승점 4점으로 16강에 진출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는 실력과 행운을 겸비해야 되는 경우다.

행운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수립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전략이다.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2승을 거두어야 한다. 따라서 폴란드와 미국의 경기에서 2연승을 거둘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또한 폴란드와 미국 경기에서 2연승을 못 거두었을 때를 대비해 포르투갈을 이길 수 있는 비책도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1승1무1패 전략이 가지는 또 다른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를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전력이 떨어지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비기거나 최소한 적은 실점을 하면서 지는 것을 염두에 두는 전략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위축시킨다. 전력이 떨어지는 팀이 위축된 플레이를 한다면 이는 경기 시작전부터 패배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94년 미국 월드컵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 전을 앞두고 한국은 2무로서 독일과의 경기에서 이기면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고 비기더라도 16강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 대표팀은 독일에 이기는 전략이 전혀 없었다. 그저 전반에 수비에 치중하면서 실점을 최소화하면서 후반 역습을 통해 어떻게 한번 해보자는, 전략도 아닌 막연한 생각만 있었을 뿐이다.

그 결과 전반전 한국 선수들은 허수아비처럼 그라운드에 서 있는 듯이 경기를 해 3골이나 허용했으며 16강은 물건너 갔다고 판단된 후반전에서는 부담없이 자기 실력 이상을 발휘했다. 후반전만 놓고 본다면 월드컵 사상 최고의 경기였다.

홍명보 선수가 "더 이상 경우의 수를 따져가면서 월드컵 경기를 하기는 싫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는 경우의 수라는 함정에 빠져 최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없었다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역대 월드컵 개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최초의 개최국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대할 3팀 모두를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만 한다. 그러기 이해서는 앞서 주장한 바와 같이 상대 팀에 대한 정확하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부분이 다시 한번 중요해진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다소 무모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전승 전략을 수립하고 각각의 팀을 이길 수 있는 전술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2001-12-04 20:1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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