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MVP시상식에 간 박한이 선수

10월 31일, MVP·신인왕 투표 및 각 부문별 시상식이 열린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 신인왕 투표 결과가 발표된 후부터 굳어지기 시작한 박한이 선수의 얼굴은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도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시상식에 참석한 선수 중 상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뿐이었기 때문이다. 붉게 달아 있는 얼굴. '오늘 내가 왜 여기 왔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신인왕 후보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 무슨 잘못인가? 오히려 잘못은 허술한 시상식을 준비한 사람들에게 있는데.

최고 선수와 최고 신인을 뽑기에는 엉성한 투표

이날 신인왕 후보에 오른 선수는 삼성의 박한이, 한화의 김태균, 롯데의 김주찬. 그리고 MVP후보는 이승엽, 우즈, 신윤호, 양준혁, 박석진 선수 등 5명.

KBO는 MVP·신인왕 투표에 앞서, '다득표자라 하더라도 투표인단 과반수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하며, 그렇지 못했을 경우 많은 표를 얻은 두 후보를 대상으로 재투표에 들어간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신인왕 투표 결과는 김태균 41표, 박한이 39표, 김주찬 2표. 사회자는 "현재 투표인단은 86명이지만, 지방사 4표가 기권표로 처리됐기 때문에 유효표는 82표로 봐야 한다"고 말하고, "김태균 선수가 신인왕으로 등극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일부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86표로 과반수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재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MVP투표가 이어졌다. 이승엽 33표, 우즈 14표, 신윤호 35표. 사회자는 "다득표자인 이승엽과 신윤호 선수를 대상으로 2차투표를 실시한다"고 밝히고 "투표를 위해 회의를 해야 하니, 기자단 대표들은 앞으로 나와달라"고 요청했다.

회의 결과는 신인왕도 재투표를 한다는 것. 전체표를 86표로 계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투표단은 시상식에 참석한 62명의 기자들로만 구성됐고, MVP는 33표를 획득한 이승엽 선수에게 돌아갔다. 신인왕 투표 결과는 박한이 선수에게는 더욱 좋지 못했다. 10표나 차이난 것.

만약 1차 MVP투표에서 누군가 과반수를 획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도 신인왕 2차투표가 실시됐을까.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방기자들의 의사는 무시돼도 좋은 걸까. KBO는 과반수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최고 선수와 최고 신인을 뽑기에는 너무나 엉성한 투표 절차.

시상식의 꽃은 상을 받는 사람. 그러나 주인공이 없다

이날 수상자 대기석에 앉아 있던 선수는 모두 두산과 삼성 소속 선수들이었다. 최다홀드상을 받은 차명주, 타점상을 받은 우즈, 도루상을 받은 정수근, 홈런상을 받은 이승엽과 신인왕 후보로 참석한 박한이 선수. 불참한 선수는 모두 7명. 고베4개국 친선야구대회 출전, 팀 훈련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우리 엄마 잘해!"
엄마에게 보내는 아이의 응원 소리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날 무대에 가장 많이 올라간 사람은 신윤호 선수의 부인 김민희 씨. 다승, 방어율, 구원부문을 석권한 남편을 둔 탓(?)으로 단상에 3번이나 올라가 똑같은 포즈를 취해야 했다. 이날 시상이 이루어진 14개부문 중, 본인이 직접 수상한 경우는 단 5번뿐.

주인공이 없는 썰렁한 시상식. 갈수록 박수소리는 작아졌다. 결국 한국시리즈에 오른 팀 소속 선수만 참석할 수 있게끔 일정이 잡혔던 셈이다.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한 결과를 축하해주는 자리. 많은 선수들이 참석할 수 있는 시기에 시상식을 하면 안되는 걸까.

MVP만 대단한 거니?

자신의 실력으로 받는 상이 기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그것보다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날 개인 타이틀 수상자에게는 단상에서 소감 한 번 밝힐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상 받고, 꽃다발 받고, 카메라 보고 웃고, 그리고 내려오고.

하지만 MVP는 달랐다. MVP발표와 함께 많은 기자들이 이승엽 선수를 에워쌌고, 단상에는 MVP와 신인왕을 위한 공개 인터뷰 자리가 마련됐다. 이승엽 선수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정수근 선수 등이 식장 뒤편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어디 가? 갈려구?"
"뭐 인터뷰도 없고 기분 나빠요."

우스개소리로 던진 얘기지만, 왜 섭섭하지 않았을까.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한 52개의 도루에 걸맞는 변변한 소감 하나 밝히지 못했으니.

그들이 식장을 빠져 나간 지 10분 정도 흘렀을까. 마침내 이승엽 선수의 인터뷰가 끝나자 "이상으로 MVP·신인왕 투표 및 각 부문별 시상식을 마치겠습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날 MVP로 신윤호 선수가 선정됐다면 일찌감치 끝났을지도 모르는 시상식. MVP와 기자들을 위한 취재잔치는 끝나고 있었다. 이런 시상식에 참석하고 싶은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MVP와 신인왕 후보에 오른 선수들 모두가 참석했다면, 그리고 수상을 축하해주는 동료 선수들로 가득찬 시상식이었다면 선수들의 얼굴은 좀더 밝지 않았을까. 수상자 대기석에 앉아 있던 선수 중 가장 어린 나이였던 박한이 선수. 그를 괴롭힌 것은 20년 역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술한 시상식이었다.
2001-11-02 13:5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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