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6 10:04최종 업데이트 24.02.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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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 의무를 3년 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 등을 심사하기 위해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김정재 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를 3년간 유예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에 당첨된 수분양자가 실거주를 해야 하는 시점을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후 3년 이내'로 완화하였다.

분양가 상한제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부담할 수 있는 비용으로 내 집을 마련하도록 하기 위해 아파트 가격을 인위적으로 시세보다 분양가를 낮게 책정하는 제도이다. 2021년 갭투자를 막고 실제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무주택자들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아파트는 최초 입주 가능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실거주할 것을 의무화하였다.


하지만 2년 뒤인 2023년 1월 윤석열 정부는 전매제한 완화와 실거주 의무 폐지를 발표하였다. 지난해 1월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둔촌주공아파트의 미분양 가능성이 높아지던 시기로, 부동산투기꾼들도 유입시켜 둔촌주공아파트 완전 분양을 유도하고 부동산경기 부양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전매제한 완화와 실거주 의무 폐지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는 법안 개정 사항이기에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지난 1년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다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어정쩡한 동의로 '실거주 의무 3년 유예'라는 사실상 폐지 전 단계를 밟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 무력화를 위한 밑밥

실거주 의무 관련 법안은 국회 과반 이상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이 사실상 결정한다. 실거주 의무 폐지가 아닌 3년 유예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상 폐지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

청약 당첨자가 실거주를 하지 않고 세입자를 받아 2년 전세 계약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법안대로 수분양자가 유예기간 종료 전인 최초 입주 후 3년 내에 실거주를 해야 한다면 전세 계약은 2년 후 종료하거나 전세 계약을 3년으로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첫 입주 후 2년이나 3년 후에 수분양자가 입주해야 한다.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잔금 치를 능력이 없어서 전세 임차인을 들였는데 2~3년 안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잔금 치를 돈을 확보할 수 있을까? 전세 임차인 입장에서도 이사비 등 거래비용을 생각했을 때 2~3년만 살고 나가려고 하는 세입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실거주 의무 유예 기간 1~2년이 지나 전세 임차인의 계약 종료가 서서히 다가올 어느 시점에 전세 임차인의 주거 불안정과 임대인의 전세보증금 반환 어려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을 명분으로 실거주 의무 폐지를 주장하는 기사가 언론에 등장할 것이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등에 업은 갭투자 수분양자들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라고 정치권을 압박하면 지금처럼 민주당은 못 이긴 듯 또다시 유예를 하거나 폐지에 동의해 줄 것이다.

대한민국 부동산 혼란의 원인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 완화를 골자로 한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모습. ⓒ 연합뉴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투전판으로 변질된 이유가 무엇인가? 부동산정책이 본래의 목적을 놓치고 눈앞의 부동산 경기에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일관성을 유지하며 시장의 규칙을 세우는 데 목적이 있는 정책도 부동산경기에 따라 요동을 치기 때문에 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져 시장 안정 효과를 내기 어려워지고 부동산시장은 투전판으로 변해버렸다.

무주택자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주택을 제공하는 분양가 상한제의 목적이 무엇인가?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한 매수자가 아니라 해당 지역에 실제 거주하고자 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한 제도이다. 그렇다면 본질에 충실하게 제도를 설계하면 된다. 분양가 상한제의 목적에 비추어 해당 지역에서 실제 거주할 무주택자들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국민들의 주거 안정이지 부동산 경기 부양이나 소수 국민들의 시세차익 보장이 아니다.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수요까지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두면 분양가 상한제의 정책 목적과 본질이 흐려지고 무주택자를 위한 청약시장은 혼탁해져 해당 지역에 실제 거주해야 하는 무주택자들의 기회가 박탈된다.

나중에 가격이 더 오를 것을 대비해서 미리 사두려는 무주택자들까지 배려할 필요는 없다. 그런 논리라면 어린 자녀를 위해서 미리 집을 사두겠다는 부모에게도 청약시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주변 임차시장의 안정을 위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도 어불성설이다. 투기수요까지 진입하면 주택가격은 더욱 오르고 결국 전세가격도 함께 오르기 마련이다. 임차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은 임차시장 안정을 위해 만든 정책으로 풀어야 할 일이다.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한 목적을 생각해 보고 해당 정책의 본질에 맞도록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정도이다.

총선을 앞두고 눈앞의 표만 생각하는 포퓰리즘적 합의로 인해 미래의 실거주 무주택자들은 또다시 의문의 1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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