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3 12:24최종 업데이트 24.02.2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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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2차가해." <오마이뉴스>가 만난 범죄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수사, 재판, 피해 회복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입은 상처, 그리고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안을 취재해 네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편집자말]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15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법무부-서울시 범죄 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 설치·운영 업무협약식에서 서명을 마친 뒤 센터 내 AI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2023.11.15 ⓒ 연합뉴스

 
[기사수정: 23일 오후 6시 29분]

"범죄 피해를 겪고 나면 '멘붕'이 온다. 저희가 일일이 (지원기관에) 전화로 물어보는 건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다.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일종의 사회복지사가 필요하다. 저희와 상황을 의논하고 방법을 모색해주는 원스톱 지원체계가 절실하다." - 일명 '바리캉 사건' 피해자 아버지


"사회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는 범죄 피해자들에게 국가의 대책은 여전히 보여주기식이었다. 지난해 범죄 피해자와 직접 통화했다며 한동훈 당시 법무부장관(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발표한 원스톱 솔루션 센터 사업이 7월 시작을 앞두고 있지만 "시범사업 수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개원 앞둔 원스톱센터 "시범사업 수준" 평가, 왜?
 

법무부가 설명한 범죄피해자 원스톱 지원체계 구축안. 원스톱 허브에는 이미 법무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범죄피해 전담기관이 포함된다. ⓒ 법무부

 
당시 한동훈 장관이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가 알려줬다"고 밝힌 '원스톱 지원체계'는 이미 범죄 피해자들,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안이다. 또 법무부 산하 기관의 권고는 물론 국정과제로도 다뤄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 산하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팀장 서지현)'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위원장 변영주)'는 2021년에 첫 권고안으로 "성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을 위한 체계 정비 및 부처간 협의체 구축"을 제시했다. 하지만 당시 법무부(박범계 장관)를 비롯한 정부는 이 권고안을 실제 대책으로 살리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 또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범죄 피해자들이 부처·기관별로 분산된 지원제도를 일일이 찾아다니느라 많은 비용·시간을 소모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체계 구축"을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이 역시 구체화되지 못했다. 

지난해 이 사안을 다시 공론화한 사람은 한동훈 장관으로 그는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자 원스톱 지원체계를 마련하고 원스톱 솔루션 센터(원스톱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국가와 정부는 1초의 망설임 없이 피해자 편이어야 한다"며 "그 단호한 마음으로 원스톱센터를 운영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단호한 약속에 비해 실제 실행에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원스톱센터가 오는 7월 개원 예정이지만, 인건비 예산은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책정됐다. 또 논의과정에서 그동안 피해자를 조력해 온 시민단체 등은 완전히 배제됐다. 여러 전문가들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원스톱센터는 시범사업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원스톱센터의 운영기한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법무부는 센터의 상시적 운영을 위해 공무원 인력 정규 직제 확보 추진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 "이대로면 역할 수행 어려워"...법무부 "활성화 고려해 확대 예정"

법무부는 "성범죄(성폭력·디지털 성범죄), 아동·노인·장애인 학대범죄, 기타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원스톱센터만 방문하면 범죄 피해 유형별로 받을 수 있는 모든 경제·법률·심리·복지 등 지원제도를 안내받고, 기관에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원스톱 전담 인력(케이스 매니저)를 배치"해 "사건 초기부터 일상회복까지 필요한 지원을 빠짐없이 안내·연계·확인하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원스톱센터 예산은 턱없이 모자르는 수준이다. <오마이뉴스>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원스톱센터 사업예산안'을 보면, 서울에만 위치할 원스톱센터 인건비로 '6개월 분 1억 원'이 책정돼 있었다. 이 예산으로 전문상담원 4명과 보안인력 2명을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공무직 신분으로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한다. 또 서울 외 지역 19곳(각 지방검찰청 내 범죄피해자지원센터 18곳+전국범죄자지원연합회 1곳)의 전담인력 19명 관련 1개월치 예산은 약 6600만 원에 불과했다.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박옥희)는 지난 1월 30일 오후 2시 이른바 '바리캉 사건' 피고인 김씨의 1심 선고공판에서 공소사실 모두를 인정하며 징역 7년을 판결했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선고 후 법원을 나오고 있다. ⓒ 소중한

 
범죄 피해자와 전문가들은 원스톱센터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천 스토킹 살인' 피해자의 사촌언니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법무부는 절차 간소화만 제시했을 뿐 제도적 뒷받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무슨 지원을 강화할 건지 답하지 않았다"며 "보여주기식 행정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정명화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채)는 "피해자들이 사건을 접수하고 형사·민사를 거쳐 사건이 최종 종결됐다고 할 때까지 보통 2~3년이 소요되는데 고용이 불안정한 원스톱 전담인력이 장기간 빈틈없이 지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무엇보다 전담인력 1~2명을 기관에 배치하는 것만으론 피해자 지원 강화라는 정책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 결국 전담인력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고 뒷받침하고 정책 가치를 공유하는 조직(부서)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죄 피해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원스톱 지원체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통합 케어가 가능한 지지자적 존재"라며 "그런데 법무부 자료를 보면 이런 역할 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는 신진희 변호사는 "그간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게이트키퍼'조차 없었던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원스톱센터는) 피해자가 혼자 제도를 찾아다니던 상황을 개선해주는 정도다. 예를 들어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센터에서 상담신청도 하고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까지 한번에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원스톱 지원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박용진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장관에게 범죄 피해자 지원정책은 기관설립보다 본질적인 실무 시스템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라며 "(하지만 지금 만든다는) 원스톱센터에는 원스톱이 없다"며 "근본적 제도개선 없이 보여주기식 옥상옥 정책에 세금만 낭비됐다"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오마이뉴스>에 보낸 서면답변에서 "현재에도 다수 부처·기관이 각 지역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피해자가 각 기관을 방문해 시간·비용을 소모하는 등 불편함을 덜기 위해 원스톱센터를 신설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서울 1호 센터 설치를 시작으로 각 지역별 피해자 지원 사업의 규모와 활성화 정도를 고려해 설치 확대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원스톱 지원 전담기관 및 피해자 지원 전담 경찰·검찰수사관·검사 등을 대상으로 연 2회 통합교육을 실시해 부처별·기관별 피해자 지원제도 및 협력·연계방안 등에 대해 전파해 범죄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현장, 실무자 의견 안 들어... 보여주기식 행정"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해자 고 김혜빈씨의 어머니가 지난 1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의 1심 선고 직후 김씨 친구의 품에 안겨 울고 있다. ⓒ 박수림

 
원스톱 지원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범죄 피해 당사자와 그들을 조력해 온 시민단체 등이 배제된 것 또한 문제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까지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와 경찰청·대검찰청, 피해자 지원 전담 기관(해바라기센터·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8차 회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인천 스토킹 살인' 피해자의 사촌언니는 "매번 이슈가 터질 때만 공무원을 차출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한다"며 "원스톱 지원체계를 구축하면서 범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간담회 한 번 열지 않았는데 적어도 정책만큼은 피해자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의견을 수렴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전문가들 또한 원스톱 지원 정착을 위해선 민관협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명화 변호사는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해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는 행정절차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지만 현장에는 절차 안에 포함되지 않는 요소들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기존 제도서) 배제된 이들을 지원하며 역량을 갖춘 시민단체들의 실제 경험을 정책에 포함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진희 변호사도 "해바라기센터에 소속돼 이 일을 13년간 해왔지만, 사업 시행을 언론보도로 접했다"며 "실무자 의견을 듣는 창구나 과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는 피해 당사자들을 가장 가까이 접하지 않나"라며 "법무부가 제도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장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우리와 같은) 민간 상담소는 법적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정부 지원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범죄 피해자들을 초기에 조력하고 있다"며 "그런데 정부는 마치 민간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인식 하에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제도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검증하기 위해선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의 역할도 필요한데 (민간은) 논의에서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법무부는 "협의체 회의에서 마련된 '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체계 구축방안'은 (법무부 산하) 범죄피해자보호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민간위원 의견도 수렴됐다"며 "향후 민간단체에서 좋은 의견이 제시되는 경우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의 2차가해④-범죄 피해자 집담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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