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9 06:50최종 업데이트 24.01.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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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통령님께 애플의 동영상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난 13일 애플은 신제품 발표회를 열고 아이폰 15 시리즈, 애플워치 등의 제품을 소개했습니다. 이 행사는 전 세계에 실시간 생중계됐는데 애플 제품 소개 중간에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등장하는 '어머니 대자연'(Mother Nature)이라는 광고가 나왔습니다. 오늘은 이 광고를 대통령님과 함께 보고 싶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어머니 대자연'이 등장해 팀 쿡에게 한마디 합니다.

"자네가 2020년에 약속했지. '2030년까지 애플의 전체 탄소 발자국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무슨 대단한 환경주의자인 양. '모두가 공유하는 지구를 위해 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우리에게 있다'라면서 말야."
  

애플의 광고 '어머니 대자연' 중 한 장면. 어머니 대자연이 팀 쿡의 환경보호 약속에 대해 비꼬는 투로 이야기를 합니다. ⓒ 애플


그러자 팀 쿡과 직원들은 그동안 애플이 자연을 위해 한 일들을 설명합니다. 모든 포장에서 플라스틱을 뺐고, 재활용 알루미늄을 쓰며, 가죽 제품을 퇴출시키고 있다고요. 애플 자체적으로 이미 100% 청정에너지를 쓰고, 에너지를 많이 쓰는 항공 운송을 줄이고, 물 사용량도 줄이고, 세계 곳곳에 나무를 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단한 환경주의자인 양"한 게 아니라 실제로 환경을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하죠.
   
팀 쿡과 어머니 대자연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됩니다.

"2030년에 이르면 모든 애플 제품이 기후에 끼치는 영향이 넷제로가 될 겁니다."


"모든 제품 말인가?"
"네, 모든 제품이요."

"그래야만 해."
"꼭 그럴 겁니다."

 

애플 광고 '어머니 대자연'에서 팀 쿡이 2030년에 이르면 모든 애플 제품이 기후에 끼치는 영향이 넷제로가 될 거라고 약속합니다. ⓒ 애플

 
애플 탄소중립 선언의 의미

이번 신제품 발표회는 예년에 비해 공개한 제품 수도 적고, 타이타늄 본체를 채택한 아이폰 15 프로 역시 한국 언론의 눈에는 "혁신은 없었기"에 제품에 대한 기사와 함께 팀 쿡이 직접 참여한 이 짧은 광고가 기사로 많이 소개됐습니다.

그런데 기사 내용을 보면 "팀 쿡이 배우로 변신해 연기한 게 화제가 됐다"는 게 대부분입니다. 거기에 친환경을 강조한 팀 쿡, 혹은 애플이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는 정도의 내용을 더했을 뿐이죠.

이 영상을 보면서 대통령님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애플의 탄소중립 선언으로 인해 제일 고민이 많아야 할 사람이 바로 대통령님이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됐습니다. 고민해야 할 사람이 고민하지 않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고민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애플의 탄소중립 선언이 왜 대통령님이 고민해야 할 일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애플은 "2030년까지 탄소 발자국을 0으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탄소 발자국이란 제품을 만들 때 원료채취, 생산, 수송·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온실가스)량을 계량적으로 만든 지표입니다.

이걸 0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는 애플이 미국 쿠퍼티노 본사의 전기만 100% 청정 에너지를 사용하고, 아이폰 제조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차원을 넘어 사용되는 모든 부품도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은 제품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애플의 선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사용할 때 쓰는 전기 역시 청정에너지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애플 제품을 사용할 때 전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해서 그만큼의 재생 에너지가 생산될 수 있도록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애플로 인해 탄소 배출이 늘어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애플 웹사이트에는 애플의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협력업체와 함께 할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 애플

 
애플은 제품을 설계하고 디자인하지만 대부분의 제품은 중국, 인도, 베트남 등지에서 생산합니다. 그리고 애플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역시 한국, 일본, 중국 등의 협력회사로부터 공급을 받습니다. 애플이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애플에 납품하는 회사들 역시 탄소 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애플 웹사이트의 탄소중립 항목을 보면 "모든 협력업체와 함께 나아가다"라고 명시해 놨습니다. 영상 속 팀 쿡이 마지막에 한 말 "꼭 그럴 겁니다"에서 진심을 느꼈습니다.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지 못한 협력업체는 애플에 제품을 공급하지 못할 것입니다.

국내 기업의 실정

"애플 관련 생산 공정에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하기로 약속"한 250여 개의 애플 협력업체 중에 한국 기업은 얼마나 될까요? 애플의 2022년 회계연도 공급망 목록에 포함된 국내 기업은 모두 12곳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이노텍 같은 대기업과 범천정밀, 덕우전자 등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의 기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기업들은 애플의 탄소 중립 일정에 맞춰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해야 합니다. 외국 기업이지만 한국에 공장을 두고 거기서 제품을 애플에 공급하는 기업들도 쓰리엠(3M), 온세미(Onsemi), 창덴과기(JCET) 등 13개나 됩니다. 이 기업들도 마찬가지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애플이 환경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우리 기업에 고자세로 나오면 애플 말고 다른 고객사를 찾으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죠? 예를 하나 들어 보죠. LG이노텍은 애플에 아이폰의 카메라 모듈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매출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75%입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해 애플에 납품을 못하게 되면 이 회사가 온전할 수 있을까요? 참고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6조 원 정도이고, 연매출은 20조 원 가까우며, 직원 수는 1만 5000명에 육박합니다. 이게 LG이노텍만의 상황이 아닙니다.
 

LG이노텍 회사 개요. 매출 가운데 애플의 비중이 75%입니다. ⓒ LG이노텍

   
애플이 탄소중립을 이야기하고 203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하겠다는 게 왜 대통령의 고민이 되어야 하는지 이제 감이 오나요? 우리 대표 기업들의 최대 고객사인 애플의 탄소 중립 선언은 우리 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할 때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애플뿐만 아니라 BMW나 델 같은 유수의 기업들이 이 같은 조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럴 조건이 갖춰지지 못하면 우리 기업은 고객사를 잃게 될 것이고,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기업들은 떠날 겁니다.

보도에 따르면 작년 매출액 상위 30대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10% 남짓에 그쳤습니다. 그마저도 배터리와 반도체 등 재생에너지 사용이 수출과 직결되는 분야를 제외한 내수 위주의 기업들은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1%에도 못 미치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30% 정도고, LG이노텍은 22%입니다. 이마저도 실제 재생 에너지를 사용해서 이룬 성과가 아니라 인증서(REC) 구매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쓴 것으로 '인정받은 것'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기업의 목줄을 죄고 있는 대통령
  

우리나라 최종에너지 소비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OECD 국가 중 가장 낮습니다. ⓒ 통계청


왜 실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법을 택하는 걸까요? 재생에너지를 쓰고 싶어도 재생에너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3.36%(2019년 기준)로 꼴찌입니다. 2022년 국내 재생에너지 총발전량은 약 43테라와트시(TWh)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 두 반도체 회사가 필요한 양도 채우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은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문재인 정부에서 정한 30.2%에서 21.5%로 줄여버렸습니다. 2023년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사업'과 '신재생에너지보급지원사업'의 예산도 각각 1548억 원, 744억 원을 줄였고요. 대신 2021년 기준 27.4%였던 원전 비중은 2030년 32.4%까지 늘린다고 했습니다.

지난 RE100 기사에서 원자력은 재생에너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억하시죠? 그래서 원자력 발전을 통해 얻은 전기를 쓰면 탄소중립을 인정받을 수 없고 우리 기업들은 납품을 포기하든지 이 나라를 떠나 재생에너지 사용이 가능한 나라에 공장을 다시 지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게 삼성전자가 반도체 팹을 용인 말고 미국 텍사스에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구요. 대통령님의 원자력 사랑과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압수수색이 우리 기업들의 목줄을 죄는 중입니다.

다시 팀 쿡이 등장한 광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애플 광고 '어머니 대자연' 중. 가죽 제품을 퇴출한다고 말하는 자리에 가죽 점퍼를 입고 나타난 직원에게 쓴소리를 합니다. ⓒ 애플

 
어머니 대자연에 애플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하는 여러 일들을 설명하던 중 한 직원이 "아이폰 케이스에서 가죽을 단계적으로 없애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 대자연은 가죽점퍼 입은 임원을 가리키며 이렇게 쏘아붙입니다. "그쪽도 퇴출 예정인가?" 탄소중립을 위해 가죽 제품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고 자랑하는 회사에서 가죽점퍼를 입고 있는 무신경을 비꼬는 겁니다.

이 가죽점퍼를 입고 있는 직원에게서 대통령님을 보았습니다.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탄소중립을 달성하자면서 재생에너지 발전을 줄이고 원자력 발전을 늘리는 대통령님의 행동이 가죽점퍼를 입은 채 가죽 제품을 퇴출시킨다고 하는 이율배반적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대통령님, 원자력이라는 가죽점퍼를 벗으세요. 원자력에 대한 집착을 벗고 재생에너지 개발에 힘을 보태야 할 때입니다. 안 그러면 우리 기업들 다 문 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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