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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없는 밴드, 시대 읽은 015B의 색다름

[명반, 다시 읽기] 015B 2집 < Second Episode >

23.06.07 13:37최종업데이트23.06.0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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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1990년대 대중가요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편집자말]
결성부터 독특했다. 무한궤도 활동이 끝나 솔로로 전향한 신해철을 뒤로 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둔 대학생들은 새 팀을 조직하여 음반을 내기로 의기투합했다. 기존 멤버였던 피아노의 정석원, 베이시스트 조형곤, 드럼의 조현찬이 합류했고 정석원과 형제였던 장호일이 기타를 잡았다. 그런데 마이크를 잡을 사람은 없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목소리가 부재한 밴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프로' 음악인의 꿈을 꾼 건 아니었다. 첫 히트곡 '텅 빈 거리에서'가 수록된 1집은 스스로 인정하듯 그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어리숙했고, 애초부터 상업적 성공을 지향하지는 않았다. 이들이 선보인 객원 가수 체제는 낯설었고 자기 스타일을 끝까지 고수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남들과 다른 뚜렷한 주관을 가진 015B는 이상하게도 밉지 않았고 시대에 먹혀 들어갔다.

같은 출발선의 신해철이 철학적인 가사와 천재성으로 신도들에게 숭배받는 위치였다면, 이들은 스스럼 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대차게 외면하기도 하며 그들과 친근하게 소통한 입장에서 다가갔다. 서정성으로 충만한 발라드, 실험적인 사운드, 간혹 이 사회의 단면을 영리하게 벗겨낸 가사까지, 015B는 대중이 좋아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진실되게 음반에 녹여낸 아티스트였다.  

015B의 짙은 오리지널리티
 

015B 2집 < Second Episode > ⓒ (주)다날엔터테인먼트


< Second Episode >는 015B의 오리지널리티가 가장 진한 작품이다.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감성적인 트랙이 절반 이상을 채웠지만, 주류에 반하는 태도가 가장 먼저 돋보인다. 단적으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환경오염을 향한 신랄한 풍자곡 '4210301'에는 당시 태동하기 시작하던 랩을 삽입해 시대를 앞선 이들의 역량을 증명했다. 군부 정권이 쌓은 댐이 무너진 문화 대범람의 시기, 세상은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었고 '015B는 항상 새로운 걸 들고나온다'는 걸 각인했다. 

잘 짜인 음악은 이들의 진취적인 발걸음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정부 기관의 전화번호로 제목을 지었다는 이슈와 별개로 '4210301'은 곡의 흐름과 악기 사용에 있어서 충분한 세련미를 갖췄다. 아울러 랩과 영어 내레이션, 전화벨 소리를 적절히 섞어 공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물론 이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와 발맞춘 결과이기도 하다. 앨범이 발매된 즈음 등장한 미디(MIDI)와 시퀀서는 음악 제작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했고, 능숙하게 시스템을 다루던 015B는 이전과 색다른 음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서정성을 짙게 드러내는 남성 객원가수 시스템 확립
 

015B 멤버들의 모습 ⓒ 페이퍼레코드

 
객원 가수 시스템도 < Second Episode >에 이르러서 그 가닥이 잡힌다. 보컬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015B가 구축한 틀은 보컬리스트의 성장을 도우며 여러 명곡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1집과 2집에 걸쳐 그들이 발견한 가장 큰 원석은 단연 윤종신이다. 절절한 감정을 토해내던 최근 모습과 달리 미성으로 음반의 중심부를 이끄는 그는 당찬 신시사이저 반주가 빛나는 '친구와 연인'에서는 활기찬 젊음을 표현하고, 피아노 반주 위 '떠나간 후에'와 'H에게'에서는 발라드의 기본을 수놓는다.

앨범은 이별의 정서를 붙잡고 있지만 절절하게 치닫지만은 않는다. 남성 보컬의 피쳐링은 적당히 슬프며, 적당히 신나는 015B의 무드를 대변하기에 적합했다. 부드러운 선율 역시 마음을 쓸어내리고 그 시절의 낭만을 홀로 반추하게 돕는다. 최근 열풍이었던 시티팝이 떠오르는 '비워진 너의 자리 속에'가 색소폰 음색으로 끈적한 무드를 형성하는가 하면, 졸업식 송가로 새 생명을 얻은 곡 '이젠 안녕'이나 산뜻한 연주곡 '동부 이촌동 새벽 1:40'은 아련한 감상을 선사하며 작품의 테두리를 옅게 긋는다.

이후 015B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히트한 < Third Wave >와 '신(新)인류의 사랑'이 담긴 4집 < The Fourth Movement >의 판매고를 각각 100만 장에 가깝게 올리며 대중가수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으로 올라섰다. 전성기에 오른 그들은 하우스나 인더스트리얼 등 진보적인 음악을 접목하며 선구자 역할을 다했고 이는 발라드와 랩 등 현대 케이팝의 발달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도 20세기의 잔향이 남은 < Second Episode >를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조금은 초라하지만 낭만 넘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자, 015B가 진실하게 채운 멜로디는 시대를 넘어 2023년을 물들이기에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015B는 계속된다. 여전히 좋은 보컬을 찾으며 신인 가수들과 < New Edition >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곡을 찍어내고, < The Legacy >에서는 과거의 곡을 재해석하며 풋풋한 정서를 추억한다. 

음악을 좋아하던 좋은 형들은 계속해서 증명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같지 않더라도 수첩에 적은 누군가의 이야기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공일오비 음악 015B 무한궤도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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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에서 일하고,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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