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한 번도 못 했던 말, 어쩌면 다신 못할 바로 그 말 - 아이유, 사랑을 노래하다

[리뷰] 프롬의 <사랑의 기술>로 본 아이유의 <좋은 날>

23.05.29 10:39최종업데이트23.05.29 10:39
원고료로 응원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건지 / 오늘따라 왜 바람은 또 완벽한지
그냥 모르는 척 하나 못 들은 척 (....) / 아무 말 못하게 입맞출까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
이런 나를 보고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말아요 (....)
 
한 번도 못 했던 말, 어쩌면 다신 못할 바로 그 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I'm in my dream / It's too beautiful beautiful day (....)
Just don't make me cry / 이렇게 좋은 날"

 
아이유가 부른 노래 <좋은 날>의 가사다. 비오는 날의 이별보다 화창한 날의 이별이 더 견디기 어렵다. 헤어지자는 슬픈 말이 예감되는 만남으로 향하는 이에겐 하늘은 오늘따라 어쩜 이렇게 더 파랗게 보이고, 바람까지 오늘따라 왠지 또 완벽해 보인다. 나 빼고 세상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원래 슬픈 노랫말은 경쾌한 리듬일수록 더 슬퍼 보인다. 감정의 보색 원리랄까. 아이유의 <좋은 날>이 딱 그렇다. 하지만 그녀에게 오늘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거다. '좋은 날'이니까. 좋아하는 '오빠'는 이제 사라지지만,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고,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을 정도로 '좋아함'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테니까.
 
이렇게 '좋은 날'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사랑을 배워야 한다.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많은 이들은 사랑은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긴다. 독일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우리가 사랑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사랑받는 것은 '당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니까.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 여기는 이는 어떻게 사랑을 잘할 수 있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남자는 사랑을 받기 위해 돈을 모으고, 여자는 사랑을 받기 위해 외모를 가꾼다.
 
둘째, 사랑을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줄 아는 쉬운 일이고, 사랑받을(또는 사랑할) 대상을 얻기가 어렵다고 여긴다. 옛날에는 사랑받을(또는 사랑할) '대상'을 얻기 위해 결혼을 했고, 오늘날에는 결혼할 '대상'을 얻기 위해 사랑을 한다, 아니, 사랑받을(또는 사랑할) 대상을 얻으려 한다.
 
셋째, 사랑 '하게 되는 것'과 사랑 '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작과 사랑의 지속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끌리는 것'과 '하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끌림은 당하는 것이지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성적 매력이나 성적 결합에 의해 시작될 때 더욱 그렇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점점 끌림이나 매력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지루함이 차지한다. 사랑은 끌리거나 빠지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 프롬, <사랑의 기술>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을 잘할 수 있을까?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랑의 기술'은 무엇일까? 프롬은 사랑을 받으려 하지 말고 사랑을 '하라!'고 한다. 사랑에 끌리거나 빠지길 바라지 말고 사랑을 '하라!'고 한다. 사랑하는 것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사랑을 주는 것은 '희생하는 것'이나 '교환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주는 것은 '나'를, '내 삶'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나와 내 삶을 나누어주면 그만큼 나와 내 삶도 풍요로워진다. 사랑을 주는 것은 너와 너의 삶뿐만 아니라 나와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생산적인 행위다. 사랑을 주는 것 자체가 너뿐만 아니라 나도 기쁘게 한다. 사랑을 '해' 주거나 사랑을 '받는 만큼' 주면, 주는 것 자체가 기쁘지 않다. 사랑은 주는 것 자체가, 하는 것 자체가 좋다.
 
5월이면 눈물겹도록 그리운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노래처럼 '천번이고 다시 태어난대도 그런 사람 또 없을 테'다.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 그댈 위해서 나의 심장쯤이야 얼마든 아파도 좋은데, 사랑이란 그 말은 못해도 먼 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모든 걸 줄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슬퍼도 행복하다. 태어나 처음 가슴 떨리는 이런 사랑 또 없을 테다. (....)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그대 웃어준다면 행복할 테다. 사랑은 주는 거니까 그저 주는 거니까 슬퍼도 행복하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사람 사는 세상'이란 게 바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서로 사랑할 수 있어서 슬퍼도 행복한 세상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는 사라졌지만, 그와 함께 나누던 우리의 사랑은, 그런 사랑을 함께 나눈, 그리고 함께 나눌 '좋은 날'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테다.
 
누구나 크든 작든 실연의 아픔 하나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지니고 있을 테다. 어쩌면 그게 사실은 '사랑'을 잃은 '실연'의 아픔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실연인'의 아픔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는 잃을 수 있어도, '사랑'은 잃을 수 없다. '사랑하는 이'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도 함께 나누던 '사랑'은 잊을 수 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하늘은 그날따라 어쩜 그렇게 더 파란 건지, 바람은 그날따라 왜 또 완벽한지 너무나 야속했던 사랑. 그냥 모르는 척 할까, 그냥 못 들은 척 할까, 아무 말 못하게 입 맞출까 수많은 고민을 했던 사랑.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고,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고, 이런 나를 보고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마음속으로 그토록 애원했던 사랑. 그런 사랑은 또 없을 사랑과 그런 사랑을 함께 나눈 '좋은 날'들은 사랑하는 이가 사라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거다. 영화 <좋은 날>(2014) 속 여자의 말처럼, 행복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한 번도 못 했던 말, 어쩌면 다신 못할 바로 그 말.
나는요 사랑이 좋아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학지성 In&Out>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95
아이유 좋은 날 프롬 사랑의 기술 노무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땀이 뻘뻘나는 뜨거운 여름날에 펑펑 눈이 오기를 헛되이 희망하는 '바보'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