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홍상수 영화 촬영한 이곳, 김민희 좌석도 유명세

[극장 옆 독립예술전용관⑥] 라이카시네마 문유정 이사

23.05.21 11:51최종업데이트23.09.01 16:33
원고료로 응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 산업이 위축됐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요즈음, 국내에 몇 안 되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침체기에서도 나름의 자구책,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 라이카시네마 문유정 이사 라이카시네마의 문유정 이사가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라이카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관객들 사이에서 '영화 편집숍'이라는 수식어로 입소문 난 극장이 있다. 운영 3년 차로 그 역사는 짧지만, 독특한 건물 디자인과 루프탑 쉼터, 그리고 카페와 어우러진 이곳을 찾는 관객이 늘고 있다. 우주로 떠난 최초의 강아지 이름에서 따온 '라이카(Laika)' 시네마 문유정 이사를 지난 11일에 만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서울 연희동에 자리한 라이카 시네마는 국내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중 최초로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형 멀티플렉스인 메가박스에서 운영 중인 돌비 애트모스 특화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 예술영화를 만날 수 있는 셈. 스크린 화면이나 영사기가 아닌 사운드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배경엔 코로나19 팬데믹이 있었다.
 
오픈 자체가 위기... "미룰 수 없었다"
 
극장 개관일인 2021년 1월 13일은 한창 팬데믹으로 영화 산업 위기론이 불거지던 때였다. 서울 연희동을 상징하는 극장을 만들겠다는 지금 대표의 다짐이 있었지만, 주변에서는 무모한 결정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보냈다. 문유정 이사는 "2018년부터 개관을 준비했는데 더이상 미룰 수 없었다"며 "오히려 코로나19 시기에 문을 연 게 우리 극장의 존재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대표님(이한재)이 SF영화 마니아다. 처음 지금의 건물을 지을 때 우주 관련 이름을 붙이려 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다는 느낌이라 친근한 강아지를 따와서 스페이스 독(Space Dog)이라고 지었거든. 영화관도 처음엔 스페이스 독 시네마라고 하려다가 제가 독자적인 브랜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소련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떠난 라이카에서 따오게 됐다. 어떤 분들은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Leica)와 관련 있냐고도 하는데 철자가 아예 다르다(웃음).
 
어떻게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에 맞는 극장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극장이 가져야 할 차별점은 사운드에 있다고 판단했다. 화질보다 돌비 시네마가 최근 급진적 발전을 했다고 느꼈거든. 공간의 협소함으로 4k 버전 상영이 우리 극장에선 의미가 없기도 했다. 결과적으론 잘한 선택이었다. 예술영화 중에서도 꾸준히 돌비 시네마 버전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돌비 영화 기획전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지리적 특성상 이곳을 찾는 관객 비율을 보면 20대, 그리고 대학생들이 많다. 문 이사는 "연세대, 이화여대생들이 많은 것 같고, 외국인 유학생들도 많이 보인다"며 "서대문구에 우리와 아트하우스 모모, 필름포럼 등 세 개의 독립예술영화관이 있는데 관객 분포가 저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우리 극장엔 예술 영화 새내기들이 많달까. 다른 예술영화관에 가본 적 없거나, 예술 영화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찾아오시는 편이다. 처음 우리 극장을 홍보할 때 예술영화 마니아를 노리기 보단 한 번도 예술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을 타깃으로 삼았는데 그게 통한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 심할 땐 하루에 한두 명도 안 오시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주말 상영은 거의 매진이다. 표가 없어서 현장에서 기다리시다가 돌아가는 분도 생긴다.
 
상영관 규모 자체가 39석 단관으로 매우 작아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계시고 저도 대표님께 확대를 요청하고는 있지만, 무리하게 지금 상영관 좌석을 늘릴 순 없을 것 같다. 좌석 한 줄을 더 추가할 수도 있었지만, 상영환경이 중요하다. 멀티플렉스보다 넓은 레그룸이 차별점이기도 한데, 좌석 수를 늘리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니까. 기술적으로 모든 좌석이 소외되지 않도록 디자인한 게 지금의 구조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에 맞는 극장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극장이 가져야 할 차별점은 사운드에 있다고 판단했다." ⓒ 이정민

 

독립영화인도 애정하는 공간
 
좌석 수의 한계로 수익성 자체가 눈에 띄게 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 공간을 잘 활용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게 라이카 시네마의 운영 방향성이다. 문유정 이사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삼대장이라 할 수 있는 아트나인이나 씨네큐브와 경쟁해서 이길 것도 아니기에 관객층 자체가 겹치지 않게 개발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공간 구성과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시네필(Cinephil)이 아닌 분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었거든. 영화 선정 또한 너무 어렵거나 힘든 예술영화보다는 접근이 쉬운 작품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 덕인지 20대 초반 관객이 대거 늘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 약 네 배 정도인 것 같다. 영화 편집숍이라는 표현을 어떤 관객분이 해주셨는데 그게 바로 우리 극장을 오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살 수 있지만, 누군가 골라준 옷을 사러 편집숍에 가듯 관객분들이 라이카 시네마를 찾는 건 우리가 골라주는 영화를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문유정 이사는 관객과의 적당한 거리감을 강조했다. 각종 굿즈와 상품으로 관객을 유인하는 게 아닌, 있는 그대로 두면서 관객 스스로가 찾아오게끔 하는 전략이었다. 문 이사는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이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면, 우린 무인 영화관처럼 존재하는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혼영족(혼자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일 수도 있다. 최대한 관객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게 전략이라면 전략일 것이다. 속으론 기쁘지만 애써 쿨한 척이랄까(웃음). 혼자 혹은 소수로 오셔서 카페와 루프탑 공간을 돌며 사색하는 분들이 많으셔서 속으로 '오셨구나!' 반가워만 한다. 근데 올해부터 스탬프 카드 제도를 시작하긴 했다. 일곱 번 보시면 한 번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한편으론 독립영화인들도 알게 모르게 찾아주고 계신다. 박해일 배우가 <헤어질 결심> 종영 때 오셔서 몰래 영화를 보고 가시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애써 아는 척 안했다(웃음).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의 <소설가의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했는데 김민희 배우가 앉았던 A6 좌석이 관광지처럼 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에 맞는 극장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극장이 가져야 할 차별점은 사운드에 있다고 판단했다." ⓒ 이정민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의 청사진
 
현재 진행 중인 다르덴 형제 기획전을 기점으로 라이카 시네마는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간판 프로였던 '라이카 라이크'를 확대 개편해 단편 영화 기획전, 감독 기획전 등을 기획 중이다. 문유정 이사는 협업 시스템을 강조했다.
 
"다양한 주체들과 협업을 하려 한다. 5월 말에서 6월 초에 한 잡지사와 작은 영화제를 기획하고 있다. 지난해엔 퀴어 영화제를 했는데 올핸 다른 식으로 운영해보려 한다.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정체성을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보면 더숲아트시네마나 헤이리시네마도 출발은 서점이나 다른 공간이었다가 궁극적으로 상영관을 넣게 됐잖나. 문화라고 하면 극장은 필수 요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운영 면에서 문유정 이사는 "대관이나 예술영화 상영 때 심의 문제나 절차상 거쳐야 하는 과정이 간소화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독립영화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규모로 상영하고 싶어도, 극장 상영이기에 등급 심의를 무조건 받아야 하고, 상영 방식 또한 DVD나 일반 파일 포맷이 아닌 극장용 DCP(Digital Cinema Pack) 포맷으로만 틀어야 하기에 제약이 크다는 의미다.

"더이상 지원금을 더 달라거나 극장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 각 예술영화 전용관들이 개성을 드러내면서 함께 통합 스탬프 카드를 마련하거나 같이 행사를 기획하는 등 협력하는 모양새도 좋을 것 같다. 또 예술영화 선정 기준도 완화되길 바란다. <노매드 랜드> 같은 영화는 분명 예술영화인데 대형 직배사가 예술영화 신청을 안 해서 실질적으로 분류되진 못했거든.

예술영화 전용관의 운명은 멀티플렉스와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분들이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신 뒤 '나 오늘 CGV 다녀왔다'고 자랑하시진 않잖나. 하지만 라이카 시네마나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은 뒤엔 SNS에 어필하시곤 한다. 그런 극장들은 자기만의 고유성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멀티플렉스를 주로 찾는 분들은 상영 환경이나 문화 감성 충족보단 영화 보는 자체가 더 중요한 분들이기에 오히려 OTT 플랫폼으로 빠지는 비중이 높다고 본다. 하지만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는 분들은 취향이 분명한 분들이다. 오히려 극장을 찾아가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아신다고 생각한다. 예술영화관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본다."
라이카 시네마 독립예술영화관 극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