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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책꽂이에 꽂혀있던 '사이비 책자', 어떻게 가능했나

[김성호의 씨네만세 466]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만민중앙교회편

23.03.17 13:45최종업데이트23.04.0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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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일이다. 이사를 준비하며 거실 책꽂이에 꽂힌 책을 옮기는데 태반이 읽지 않은 책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그중에선 나와 나이가 비슷한 책들도 적잖이 있었는데, 대개는 부모님이 직접 구입했거나 집에 방문한 손님들이 주고 간 것이었다.

적어도 십수 년씩 그 책을 꽂아두고서 한 번을 펼쳐보지 않았단 것이 못내 민망하였다. 책 깨나 읽는 사람으로, 집에 제가 모르는 책을 이리도 많이 꽂아만 둔다는 것이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새 집에 이삿짐을 푼 뒤 나는 집 안의 모든 책을 죄다 읽어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렇게 읽은 책 가운데선 의외의 발견도 많았다. 김남조와 한하운, 미우라 아야코, 기욤 아폴리네르, 기 드 모파상 등의 귀한 글들도 그렇게 만났다. 그러나 일부는 영 실망스러워 폐지로 팔아치워야 했다. 시대를 건너 생명력을 얻지 못한 수많은 글과 사업을 빙자한 지난 시대의 사기꾼들, 또한 사이비와의 경계가 모호한 종교서적들도 제법 있었다.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도 그렇게 집어든 책이었다. 오십 권 가까이 되는 책들을 몽땅 읽는 와중에서도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겨둔 것이었다. 나는 저자인 이재록이란 이도, 그가 운영하는 만민중앙교회의 이름도 들어본 적 없었다. 제 고난을 과장하고 저의 특별함이며 신의 영험함을 별 근거 없이 반복하여 강조하는 책이 워낙 당혹스러워 알아보았던 바, 이재록은 사이비 교주로 취급되는 인물이며 여신도를 상습 성폭행하여 근래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6년의 실형까지 선고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집에 전하고 간 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책의 내용보다도 더욱 섬뜩하였다. 사이비는 그토록 흔한 것이다.
 
한국 뒤흔든 다큐의 마지막 목표
 

▲ 나는 신이다 포스터 ⓒ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모두 네 개의 종교, 네 명의 교주를 겨냥한다. 여덟 편으로 나뉜 에피소드는 첫 세 편이 정명석에게 할애되고, 다음 하나는 박순자의 오대양 사건을 조명하며, 다음 둘은 김기순의 아가동산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두 편이 남는 것인데, 그 대상이 바로 이재록의 만민중앙교회가 되겠다.
 
통상 관심을 끄는 첫 화와 인상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화가 중요하다 한다면 이재록과 만민중앙교회는 제작진에게도 충분히 의미가 깊은 대상이라 하겠다. 모르긴 몰라도 거기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만민중앙교회가 상대적으로 여전히 그 교세를 확고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조성현 PD가 몸담은 MBC와 이 종교가 남다른 사연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큐는 1999년 5월 11일로 향한다. 이날 밤 가정집 TV 속 MBC 채널에선 시사탐사 프로그램과 초원에서 얼룩말들이 물을 마시는 장면이 번갈아 방영됐다. 의아하면서도 우스꽝스런 상황이었다. 이유는 다음날 밝혀졌다. < PD수첩 >이 방영되던 시각 여의도 MBC 사옥에 난입한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주조종실을 습격해 방송 송출을 강제로 중단시킨 것이다. 한국 방송역사에 길이 남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충격과 공포의 공영방송국 본사 습격사건
 

▲ 나는 신이다 스틸컷 ⓒ 넷플릭스

 
이재록은 1990년 이단성의 문제로 자신이 속했던 교단인 예수교대한성결회로부터 제명처리된 뒤 자신이 운영하는 만민중앙교회를 키워나갔다. 자신에게 신과 같이 권능이 있다는 그의 주장에 교계에선 그를 사이비로 규정했으나 커진 교세는 줄어들 줄 몰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MBC는 만민중앙교회의 문제점을 다룬 방송을 내보낼 계획이었는데, 방송 당일 본사 사옥을 습격 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다큐는 당시의 충격적인 정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서울 복판 MBC 사옥 로비를 차지하고 시위를 벌이는 신도들이 급기야 주조종실을 덮치는 긴박함이 화면 넘어 그대로 전해진다. 방송을 준비한 PD들이 화장실에 숨었다는 일화부터 주조종실 내에서 직원들과 밀고 밀리는 몸싸움을 벌인 상황까지가 상세하게 묘사된다. 더불어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던 신도들의 모습에서 방송국 안에까지 뻗쳐 있었을 사이비 집단의 영향력도 짐작해볼 수 있겠다.
 
다큐는 다시 이재록이 16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나이든 교주가 모태신앙 속에서 자라난 어린 피해자를 숙소로 부르고 준강간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의 범죄행위가 교묘하게 양식화돼 있었음을 내보인다. 이재록이 신적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어린 여성들이 그의 마수에 노출되었고, 이러한 사실이 새나간 뒤엔 오히려 피해자의 행실을 비난하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사이비는 어떻게 인간을 잠식하는가
 

▲ 나는 신이다 스틸컷 ⓒ 넷플릭스

 
피해사례가 쌓이고 급기야 피해자가 다른 이와 나눈 녹음파일까지 공개된 뒤에야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신도들이 이재록과 그의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이다.
 
법원은 여타 사이비 사건에 비해 이재록을 중하게 처벌한다. 2019년 법원은 상습 준강간 등의 혐의로 징역 16년을 선고한다. 인정된 피해자만 모두 아홉명이었다. 이로써 그는 아흔이 넘는 2034년에야 교도소를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그는 수감 4년 만에 뇌종양을 호소하며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현재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지만 그의 현재가 어떠한지를 알 길이 없다. 다큐 역시 그의 현재에 접근하지 못했다. 이재록은 감옥 밖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고, 그의 종교는 건재하다. 오로지 피해자들만이 씻어내지 못한 한과 상처를 갖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사이비가 판치는 대한민국, 어떻게 가능했나
 

▲ 나는 신이다 스틸컷 ⓒ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가 다룬 네 개의 종교는 한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이비 가운데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 이보다 더 세가 강한 종교가 여럿이고 그들 중에선 경제와 정치 등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가 있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또한 다음 세기의 JMS, 만민중앙교회를 꿈꾸는 신흥 사이비도 수많은 피해를 양산한다. 그들 앞에서 한국의 법과 정의가 살아있다고 우리는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다큐의 끝에서 시청자는 불편한 감정과 마주한다. 죄악상을 폭로하는 통쾌함 대신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가까운 감정이다. 이는 법치국가인 한국이 이 다큐가 재구성한 지난 시대의 사이비, 그들의 죄악을 단죄하는 데 철저히 실패했다는 결론에 근거한다. 신도를 성폭행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앗아간 종교며 교주들이 기껏해야 단 몇 년의 수감생활 뒤 풀려나 영화를 누리는 모습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신이다>는 단순히 사이비를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번영하는 이 나라와 이 나라를 수호한다고 떠벌이기 좋아하는 집단들에 대하여 그 무능함을 지적한다. 대저 이 나라에 법과 정의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이들이 활보토록 가만히 놓아둘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로부터 개선을 말하는 건 다큐를 본 이들의 몫이 될 것이다.

결코 쉽지 않았을 다큐를 완성한 조성현 PD와 제작진 일동의 수고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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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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