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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재난영화 포스터에 이순신이 등장한 사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영화 <투모로우>

23.03.17 09:57최종업데이트23.03.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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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김은숙 작가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창시절에 당한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들에게 당한 고통을 되갚아주는 복수극이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는 '멜로 전문작가'로 유명했다. 실제로 김은숙 작가는 데뷔작 <파리의 연인>부터 2016년 <도깨비>까지 대부분의 작품이 멜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이처럼 작가나 감독들은 특정 장르에서 강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일 출신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재난영화 전문'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만든 많은 영화의 각본작업까지 참여하는 에머리히 감독은 외계인이나 재난, 괴수 등에 의해 지구가 재생 불가능한 지경까지 파괴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엄청난 크기의 재난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매우 작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들은 흥행성적과는 별개로 비현실적인 재난상황 묘사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004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는 실감나는 묘사는 물론이고 재난상황을 견뎌내는 인간들의 생존본능을 잘 그려내면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구 북반구 전체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무서운(?)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에머리히 감독의 기상 재난 영화 <투모로우>다. 
 

<투모로우>는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 영화들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다양한 캐릭터 연기할 수 있는 개성파 배우

영화감독 아버지와 시나리오 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이크 질렌할은 10대 초반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1999년 약관의 나이에 <쥬만지>와 <퍼스트 어벤저>를 만든 조 존스톤 감독의 <옥토버 스카이>를 통해 주연으로 데뷔한 질렌할은 2001년 누나 매기 질렌할과 <도니 다코>에 출연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렌할은 2004년 재난영화 <투모로우>를 선택했다.

질렌할이 학교를 대표해 퀴즈대회에 출전했다가 기상이변으로 뉴욕의 도서관에 고립되는 고교생 샘 홀 역을 맡은 <투모로우>는 1억2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5억52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질렌할은 <투모로우>를 통해 젊은 스타배우로 급부상했지만 차기작으로 뻔한 상업영화가 아닌 다소 의외의 작품을 선택했다. 바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에니스(고 히스 레저 분)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잭을 연기한 질렌할은 미국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훗날 마블의 히어로가 되는 로버드 다우니 주니어, 마크 러팔로와 함께 데이빗 핀처 감독의 <조디악>에 출연했고 2010년에는 인기게임을 영화화한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에 출연했다.

질렌할은 2010년대에도 로맨스 영화 <러브&드럭스>와 액션 스릴러<소스코드>,범죄스릴러 <프리즈너스>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고 2014년에는 <나이트 크롤러>에서 사이코패스 연기를 선보였다. 비록 에디 레드메인(수상)과 마이클 키튼,스티브 카렐 등에 밀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진 못했지만 일부 관객들은 질렌할의 연기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 이후 최고의 사이코패스 연기"라고 극찬했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괴짜 동물학자 겸 수의사 조니 윌콕스를 연기한 질렌할은 2019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는 미스테리오 역을 맡았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 중에서 가장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작품이지만 미스테리오 역을 맡은 질렌할의 연기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극찬 일색이었다.

1억 달러 넘는 제작비
 

샘(오른쪽)은 좋아하는 여학생을 쫓아 퀴즈대회에 출전했다가 뉴욕에서 험한 꼴을 당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국내에서는 <투모로우>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사실 이 영화의 원제는 '모레'를 의미하는 < The Day After Tomorrow >다. '당장은 아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다가올 수 있는 날'이라는 의미로 지어진 제목이다. <투모로우>는 국내에서도 300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투모로우>는 '재난 영화의 장인' 에머리히 감독이 연출한 영화답게 1억 달러가 넘는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자비 없이 지구 북반구를 순식간에 얼려 버렸다. 특히 LA의 건물이 토네이도에 휩싸여 종잇장처럼 뜯기는 장면과 샘(제이크 질렌할 분)과 로라(에미 로섬 분) 등 주인공 일행이 있는 뉴욕 도서관이 해일에 침수되는 장면, 미국의 랜드마크인 자유의 여신상이 물에 잠기는 장면 등은 영화라는 걸 알면서도 상당히 섬뜩하게 느껴진다.

지구에 빙하시대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예측하고 국민들을 멕시코로 대피시켜야 한다는 주장한 잭 홀 박사(데니스 퀘이드 분)는 정작 자신은 이들 샘을 구하기 위해 점점 얼어붙고 있는 뉴욕으로 올라간다. 잭은 험한 이동 중에 차량과 썰매, 그리고 동료를 잃지만 온갖 고생 끝에 샘이 있는 뉴욕 도서관에 도착한다. 잭과 샘의 재회는 런닝타임 내내 춥게 느껴지는 <투모로우>에서 잠시나마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세계 시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봉하는 할리우드 대작영화들은 종종 현지 정서에 맞는 포스터를 따로 제작해 홍보에 사용할 때가 있다. 눈에 파묻힌 자유의 여신상이 공식포스터였던 <투모로우> 역시 한국에서 맞춤형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눈에 파묻힌 숭례문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그려진 포스터였다. 에머리히 감독은 2016년 <인디펜던스데이:리써전스>에서도 외계인의 우주선이 겨냥하는 대륙을 나라마다 다르게 제작해 홍보에 활용한 바 있다. 

행발불명된 아들 찾아 뉴욕으로 떠난 아버지
 

잭과 샘 부자의 재회는 <투모로우>에서 유일하게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투모로우>에서 지구에 빙하기가 올 수도 있다고 가장 먼저 주장한 잭 홀 박사는 정확한 날짜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치인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하지만 홀 박사의 예상대로 지구 북반구엔 빙하기가 찾아왔고 홀 박사는 국경 근처에 있는 국민들을 남반구로 대피시켜야 한다는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한 후 아들을 구하러 뉴욕으로 떠난다. <투모로우>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한 퀘이드의 커리어 최고 흥행작이다.

1981년 영화 <불의 전차>로 칸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고 이안 홈은 젊은 관객들에게는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에서 골목쟁이네 빌보를 연기한 배우로 익숙하다. <투모로우>에서는 오지에서 기상연구를 하는 영국의 과학자 테리 랩슨을 연기했는데 죽음을 예감한 후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인류를 위해"라는 유언을 남겼다(반면에 축구광인 그의 동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위해"라는 유언을 남겼다).

<투모로우>에서 샘이 퀴즈대회에 참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로라를 연기한 에미 로섬은 2003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미스틱 리버>로 주목 받은 후 <투모로우>와 <오페라의 유령>에 잇따라 출연하며 신예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출연한 작품들에선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그 중에는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졸작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부르마 역도 있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투모로우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제이크 질렌할 데니스 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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