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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등판에도 심상치 않은 민심... "또 박정희? 구미가 호구냐"

1000억 숭모관 건립 힘실어줬지만 시민들 분노..."지지층 결집 행보,TK 모욕"

등록 2023.02.03 14:43수정 2023.02.0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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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일 취임 후 처음으로 경북 구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추모관을 둘러보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심'조차 통하지 않을 정도로 분노가 심상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경북 구미시가 1000억 원 규모로 추진 중인 '박정희 숭모관' 건립에 사실상 힘을 실어줬지만, 지역 시민들은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연일 비판하고 있다.

특히 국비와 도비, 시민모금으로 예산을 마련한다는 구상이 알려지자 '세금 함부로 쓰지 마라'는 항의가 시 홈페이지 게시판을 도배하기도 했다. 보수의 지지기반인 TK(대구경북) 지역에서조차 보수의 상징인 박 전 대통령 관련 사업에 또 다시 거액을 쓰는 일을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1일 구미를 방문한 윤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기존 숭모관이 좁다'며 개선 방안을 주문했다고 동행한 인사들이 전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윤 대통령이) 숭모관이 너무 협소하다며 함께한 도지사, 시장, 국회의원에게 좋은 방안을 요청했다"고 당시 상황을 페이스북에 적었다. 최근 구미시가 박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숭모관을 새로 건립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여론이 좋지 않자, 에둘러 지원사격하려는 말로 풀이된다.

김장호 구미시장도 윤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을 때 "추모 후 나오시면서 추모관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며 많은 관심을 표했다"고 페북에 올렸다. 현재 숭모관은 박 전 대통령 생가 내부에 마련돼 있다.

박 전 대통령 생가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구미시갑)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철우 지사가 '매번 올 때마다 복잡하고 좁아서 불편하다'고 건의하니까 대통령께서 대책을 강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윤 대통령 발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구 의원은 새 숭모관 건립과 관련해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라며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1000억 원이 너무 과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금액은 잘 모르겠지만 뜻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적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하면 됐다 아이가"... 도 넘은 '박정희 마케팅'에 눈살 찌푸린 구미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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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앞에 있는 추모관. ⓒ 조정훈

 
그러나 윤 대통령의 지지와 지역 정치인들의 홍보에도 불구하고, 지역민과 시민단체들의 노여움은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이미 박 전 대통령 관련 사업에 예산 1200억 원 넘게 투입됐다. 구미시 발표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새마을운동테마공원 건립' 879억 원, 역사자료관(159억 원)과 동상(17억 원) 건립을 포함한 '박 전 대통령 생가 주변 공원화 5개 사업' 305억 원 등이 소요됐다. 새마을공원은 이용률이 저조하자 전시물 보강공사에 50억 원을 더 들였다.

구미시 재정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니다. 2021년 기준 부채는 2065억 원으로 경북 23개 시군 중 가장 높다. 고물가·고금리에 '공공요금 폭탄'으로 서민경제가 어려운데다 지역행정까지 빚더미에 앉은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 관련 사업에 세금을 또 써야 하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2일 오후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서 만난 한 시민은 기자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우리는 그딴 것 관심 없으예. 그만하면 됐다 아입니까? 제발 난방비 폭탄에 물가가 올라 어려운 시민들의 심정이나 알아주는 행정을 했으면 좋겠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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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 있는 박정희 동상. 높이가 5M에 이른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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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 있는 역사자료관. ⓒ 조정훈

 
숭모관 건립 소식이 알려진 지난 달 30일부터 3일 오전까지 구미시청 자유게시판에는 수십 건의 비난글이 쇄도했다.

자신을 25세 청년이라고 밝힌 A씨는 "다른 지역은 다들 시행하고 심지어 연말에 남는 예산으로 한도까지 풀어주는 지역사랑상품권을 구미시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하지 않고 있다"며 "이 와중에 1000억 원의 예산을 박정희 숭모관에 쓴다면 어떤 구미시민이 동의하고 기뻐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B씨는 "국민들 세금이 구미시장 쌈짓돈으로 보이나? 구미시민이 호구로 보이나 보다"라고 비판했고, C씨는 "힘든 시기에 이런 정책은 사치다. 이런 곳에 돈 쓸 바엔 난방비나 지원해 달라"고 강조했다. D씨는 "난방비, 전기요금, 생활물가 (때문에) 너무나 힘든 시기"라며 "내 세금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사용된다면 환영하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 시민단체는 구미시의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반박하는 성명을 연일 발표하며 대응하는 모습이다. 조근래 구미경실련 사무국장은 "시민들은 박정희 사업 키우기가 시장·국회의원들이 재선·삼선 공천 따내기임을 잘 알고 있다"며 "김장호 시장은 '박정희 난방비 지원금'이나 지원해라. 그러면 박 전 대통령도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김영민 구미YMCA 사무총장은 "구미시가 밝힌 대로 박 전 대통령 생가에 매년 20만 명이 온다고 한다면 하루에 500명꼴"이라며 "추모객들의 불편을 고려해 1000억 원을 들여 숭모관을 짓겠다는 것은 시민들의 눈을 속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혈세를 낭비해 숭모관을 짓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정치적인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시민 세금을 그런 식으로 쓰는 것은 조세 포탈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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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박정희 숭모관을 건립하겠다는 구미시의 발표에 지난달 30일부터 이를 비난하는 시민들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 조정훈

      
국회까지 간 숭모관 논란... "옛 대통령 부르면 지지? TK 시민 모독"
 

숭모관 건립 논란은 지역을 넘어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퍼진 모양새다.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은 2일 오후 국회 소통관 브리핑을 통해 "대형 야구장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기념관을 짓는다니 죽은 자를 모시는 아방궁이라도 지을 셈인지 의문"이라고 힐난했다.

이 대변인은 "시민 복지, 민생 예산으로는 돈 한 푼도 아까워 벌벌 떨면서 기념사업에만 이렇게 돈을 퍼부으니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다"며 "거기다 건립 기금으로 국비 확보까지 추진한다니 국비를 무슨 쌈짓돈 마냥 알고 있는 건지 따져 물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숭모관 건립에 힘을 실어준 윤 대통령을 향해선 "여당 대표 선거에 노골적인 개입이 '친윤' 후보와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라는 후폭풍으로 다가오니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고 짚었다. 

이어 "이제 박 전 대통령을 끌어와 지지층을 결집해 보겠다는 구태 정치, 그만 좀 하자. 정파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 말고는 시민들의 삶에 어떠한 이득도 주지 못하는 행보"라며 "옛 대통령을 부르짖으면, 독재 정권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면 시민들이 지지해 줄 거라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대구, 경북 시민들을 모욕하는 보수 정치"라고 강조했다.

구미시는 박 전 대통령 위상에 걸맞은 추모공간을 마련하고자 1000억 원  규모의 '박정희 대통령 숭모관' 건립을 추진한다고 지난 달 30일 밝혔다. 시는 2월 중 숭모관건립자문위원회를 구성한 뒤 7월까지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예정지는 생가 인근 역사자료관과 새마을공원 사이에 있는 유휴공간이다. 이 땅은 구미시 소유여서 부지매입비는 따로 들지 않는다. 사실상 추모공간을 짓는 데만 1000억 원을 쓰겠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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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인근 박정희 역사자료관과 새마틍 테마공원 중간 터. 구미시는 이곳에 1000억 원을 들여 박정희 전 대통령 숭모관을 짓겠다는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 조정훈

#박정희 숭모관 #구미시 #윤석열 #구자근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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