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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김연경 '인증샷' 논란, 탁현민이 지적한 또 다른 문제

[주장] 정치가 대중스타에 미치는 영향 커... 집단적 광기·마녀사냥 우려스럽다

등록 2023.02.02 15:31수정 2023.02.0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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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남진과 배구선수 김연경은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과 찍은 사진 한 장 때문에 뜻하지 않은 논란에 휘말리며 곤욕을 치렀다. 

어디에 가든 사진 요청을 받는 것은 많은 유명인과 대중스타들의 숙명이다. 특히 정치인에게 핫한 스포츠 스타나 문화예술인처럼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과 '인증샷'을 남기는 건 남다른 의미가 있다. 대중의 호감과 사랑을 받는 스타들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자신을 홍보할 수 있고, 이미지도 쇄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스타와 정치의 만남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마이클 잭슨의 만남, BTS의 UN 연설같은 사례처럼, 때로는 스타들이 정치적 이슈에 적극 동참하면서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경우도 있다.

남진-김연경을 둘러싼 '인증샷' 마케팅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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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이 1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자 배구 김연경, 가수 남진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 김기현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아직 대중스타가 정치인 혹은 정치적 이슈와 연관되는데 부정적인 인식이 훨씬 강하다. 대중 스타가 정치권의 필요로 이용당하고 존엄성이 무시되거나, 혹은 대중의 진영논리에 의한 줄세우기와 편가르기를 일방적으로 강요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진과 김연경의 인증샷 마케팅을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두 가지 속성에 모두 해당하는 씁쓸한 사례다.

남진-김연경이 김기현 의원과 사진을 찍은 것이나, 이를 김기현 의원이 SNS에 올려 자랑한 것까지는 일반 정치인-스타들의 관계에서도 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당 대표 선거에 나선 저를 응원하겠다며 귀한 시간을 내주고, 꽃다발까지 준비해줬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남진과 김연경 측은 김기현 의원과 알지 못하는 사이였고, 정치적 지지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거짓말이 들통나자 김기현 측의 '사과같지 않은 사과'도 가관이었다. 김기현 의원은 1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에서 연 캠프 대구 출정식에서 "지인 초청을 받아 거기에 남진과 김연경 두 분이 온다는 말씀을 듣고 간 것"이라며 "10분쯤 같이 있으면서 덕담을 나누고 여러 대화를 나눴다. 제가 좀 일찍 나오면서 꽃다발을 주시기에 받고 사진을 찍었다. SNS에 올린 사진은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고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저로 인하여 그분들에게 여러 가지 불편이 생길 것 같아서 그 점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친분이나 정치적 지지를 사칭하고 과장한 것에 대해서는 끝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당대표 경쟁자인 안철수 의원조차 "유명인을 도구 삼은 거짓 마케팅도 문제이지만 해명까지 거짓이라면 더 문제"라고 일침을 놓았다.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 것이다. 

하지만 김기현 의원은 "자꾸 본질과 벗어난 것을 갖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구차스럽다. 거기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을 회피했다. 본인의 무책임한 거짓말로 두 사람이 애꿎은 피해를 입었는데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적당히 덮고 넘어가겠다는 그의 태도에 많은 대중이 공분했다.  

마녀사냥식 여론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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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GS칼텍스 KIXX 배구단의 경기. 3세트 흥국생명 김연경이 서브를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한 이번 논란을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과 선택의 자유'를 억압하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광기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의 시작은 대중스타들의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정치인의 거짓말에서 비롯되었지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진과 김연경을 매도한 익명의 악플러들이었다.

남진과 김연경은 정치색을 드러낸 적이 없지만, 설사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누군가를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 자체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카타르월드컵에서 활약한 축구 국가대표 조규성은 월드컵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대표팀 환영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야권 지지성향의 누리꾼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되어야 했다. 정치색을 전혀 드러낸 적이 없는 스포츠선수에게조차, 진영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며 편가르기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광기이자 마녀사냥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지낸 탁현민씨조차도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하여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 사회자로 나섰다가 비판을 받은 방송인 김제동, 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는 배우 송일국의 사례 등을 남진-김연경과 함께 거론하며 마녀사냥식 여론을 비판했다.

여기서 탁현민씨는 "누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는지가 왜 그 사람에 대한 평가의 전부나 상당 부분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했느냐로 어떻게 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는 여야, 보수와 진보를 떠나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치 논리에 따라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이다. 대중스타가 정치적 입장과 견해를 솔직히 드러냈거나, 혹은 그랬을 것이라고 '오해'를 받는 것만으로 난도질을 당하는 게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자유롭고 성숙한 의사표현과 소통을 활성화시키는 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선동과 거짓, 집단주의와 마녀사냥이 결합되어 개인의 인권을 억압하고 피해를 입히는 모든 현상을, 우리는 명백한 사회적 '폭력'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김기현의원 #남진 #김연경 #인증샷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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