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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달리기와 요리를 잘합니다" 이 말을 하기까지

잘하는 것을 잘한다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등록 2023.02.01 14:19수정 2023.02.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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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 픽사베이


일주일에 네댓 번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 전후로 빠르게 걷는 것을 포함해 약 8킬로미터쯤. 중간에 멈추는 일은 거의 없다. 예전엔 걷다 뛰다를 반복하기도 했지만 햇수로 육 년이 되니 지구력도, 인내력도 조금은 좋아진 듯하다. 


성실히 뛰지만 별다른 목표는 없다. 러닝 머신이 익숙한 나는 실외 노면에서는 맥을 못 춰 각종 대회는 꿈도 꾸지 않는다. 딱히 체형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근력 강화를 원한다면 더 좋은 운동이 얼마든지 많다고 알고 있다. 건강에 유익하길 바라긴 하나 막연할 뿐이다. 

잘 살아내기 위해 달린다

목표라고 하면 왠지 미래지향적이거나 구체적이어야 할 것 같아서 없다고 했지만, 사실 원하는 바가 있긴 하다. 나는 달리기를 통해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길 바란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는 것. 삶의 원초적인 욕구를 해소하길 바라고 거의 매일 성취하고 있다.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늘 불면증에 시달렸다. 초등학생 때 쓴 일기장에도 잠을 못 자 괴롭다는 내용이 적혀 있으니, 꽤 오래 달고 산 지병인 셈이다. 하지만 새벽 달리기를 한 뒤로 점차 단잠을 자게 되었으니 도저히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다. 

물론 지금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날이면 불면이 찾아온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나면 아침에 눈 뜨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데, 그럴수록 악착 같이 일어나 고단한 몸으로 달리기를 한다. 그러기를 며칠씩 반복하면 불면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육체와 정신 중 무엇이 더 센 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달리기를 하고 알게 됐다. 


달게 자고 난 뒤에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 괜히 자극적인 음식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 더 좋은 음식들로 나를 채우게 된다. 외식보다는 풍성한 생채소를 곁들이는 집밥을 택하는데, 그럴 만한 기운과 의욕이 있어서 직접 요리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화장실도 잘 가게 된다. 이러니 달리기가 내 생존과 관련되었다고 여길 수밖에.

나는 이렇게 잘 살아내기 위해 달릴 뿐이니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 대상은 다르겠지만, 누구나 이 정도 노력은 하면서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달리는 것을 직접 보거나 이야기로 듣는 사람들 중에는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며칠 전 헬스장에서도,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달리는 거예요? 내가 운동한 지 꽤 됐는데 그렇게 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중간에 안 쉬죠? 몇 킬로나 달려요? 어떻게 그게 돼요? 폐활량이 유난히 좋은 거예요? 응?"

늘 그래왔듯이 나는 과분한 칭찬이라고 여겨 고맙다는 인사로 화답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것으로 대화를 끝내지 않았다. 어떻게 달릴 수 있는 건지 여러 번 질문을 반복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한 나는 뜬금없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달리는 건 그냥 달리는데요. 저는 근력 운동을 싫어해서 큰일이에요. 나이 들수록 근력이 중요하다고 하던데 전 재미가 없어서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그것도 해야 하는데…."

아주머니는 어딘가 모르게 실망한 눈치를 보이셨고 근력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몇 마디 설명을 하고는 자리를 뜨셨다. 그때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뭔가 트레이닝 비법이 있거나, 혹은 달리기와 연관된 이력이 있는지 여쭤보신 게 아닐까 싶다. 

칭찬에 대한 적합한 대답 

생각해 보면, 나는 칭찬을 받을 때마다 이런 패턴을 반복했던 것 같다. 고맙다고 간단히 대답하고 넘어가는 일이 가장 많았지만 가끔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이번처럼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기도 했다.

언젠가 요리를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는 일찍부터 자취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일 뿐, 잘하는 축에는 끼지도 못한다고 답한 적도 있다. 지인은 그렇다고 다 잘하는 건 아니라며 부럽다고 했는데, 나는 상황이 닥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며 조금은 뾰족하게 말하기도 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가만 보면 내가 보인 것은 겸손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낮은 자존감을 드러냈을 뿐이며 때로는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결국,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상황을 만든 것이다. 차라리 소소한 팁을 전달했으면 어땠을까. 처음부터 잘 달린 것은 아니며 딱 1km만 뛰자고 시작했다가 2km, 3km로 서서히 늘려갔다고 말이다. 달리기가 가져오는 변화에 집착하는 것도 좋다.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이에게는 제일 좋아하는 메뉴 하나를 정해서 레시피 없이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는 것도 권해줄 수 있었다. 특히 나물의 경우 양념이 비슷해서 하나만 익숙해지면 다른 것도 쉽게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묻지도 않은 것을 구구절절 설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거만한 사람은 밉상이지만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에 소박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은 퍽 근사하기만 하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내가 이건 좀 해요" 라며 양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그 활기가 주변에 퍼지는 것 같아 즐겁기만 했다. 반대로, 난 이런 거 못 한다며 뒷걸음질 치는 것은 반갑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나는 후자였던 것 같아 뜨끔하다. 

혹시나 일을 그르쳐 피해를 주진 않을까 경계했던 것이지만, 돌이켜 보면 크게 잘못될 일들도 별로 없었다. 이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 무색하지만, 이제라도 잘하는 것을 잘한다고 말해 보고 싶다.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말이다. 나는 달리기와 요리를 조금, 아주 조금은 잘하는 사람이다. 
#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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