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욕심, 불신, 반목... 대장동 '이지스함'은 어떻게 침몰했나

[정영학 녹취록 보고서⑤] 2013년 4월 16일, 대장동 일당 '인증샷' 나비효과... "같이 뒤져야지"

등록 2023.01.30 07:00수정 2023.01.30 09:36
15
원고료로 응원
지난 1월 12일 1325쪽에 이르는 '대장동 정영학 녹취록'이 '뉴스타파 DATA 포털'에 공개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녹취록 가운데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연속보도합니다.[편집자말]
"4000억 짜리 도둑질 완벽하게 하자, 이거는 문제되면 게이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도배할 거다." 

2014년 11월 5일 오후 1시 15분 정영학과의 통화에서 남욱은 유동규의 말이라면서 이렇게 전했다. 문제가 되면 '대한민국을 도배할 거'라는 그 말대로 대장동 일당은 실제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그들은 '침몰'했다. 

"김만배 방패가 튼튼해, 별명이 이지스함(최신종합무기 시스템을 탑재한 군함)이야. 김이지스. 대한민국에 이 큰 사업(대장동)을 해서 언론에 한 번 안 두드려 맞는 거 봤어?" (2020년 3월 13일 정영학-김만배 등, 분당의 한 식당)

튼튼한 방패는 그로부터 1년 8개월만에 부서졌다. 김만배는 2021년 11월 4일 구속 기소 됐다. 화천대유·천화동인 1~7호에 최소 651억 원의 이익을 몰아줘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다. 뿐만 아니다. 검찰은 지난 12일 대장동 일당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 비밀을 공유해 7000억 원 대의 이익을 본 혐의다. 

그들은 대장동 사업을 돈 때문에 시작했고, 욕심 때문에 불신하고 분열했으며, 또 그로 인해 침몰했다. 그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 있는 것이 정영학 녹취록이다. '욕심 - 불신 - 반목 - 침몰'로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a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왼쪽부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남욱 변호사가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욕심]  "20번 알 낳을 거를 받을라고 그러면 안 되지"

2020년 3월 31일, 김만배는 분당구 한 카페에서 정영학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내 몫은 이만큼'이다 (해야지), 세상 다 내 돈 갖고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진심으로 하는 얘기야." 


같은 날, 김만배는 이런 말도 했다. 

"황금알을 배고 있는 닭을 (들고) 개울을 못 건너갈 거 같으면 팔아야지. (근데) 한 번 알 낳을 거를 계산해서 팔아야지 20번 낳을 거를 받을라고 그러면 안 되지." 

모두 욕심이 과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김만배는 '네 것 내 것이 없다'고도 말했다.

"스님한테 그랬어. 화천대유에 있는 것도 내 꺼, 통장에 있는 것도 내 꺼, 저 별을 쳐다보고 있으면 저 별도 내 꺼지. (그런데 결국은) 저 별을 쳐다보는데 니 꺼 내 꺼가 어디 있겠냐." (2020년 7월 6일 정영학-김만배 판교의 한 카페)

남욱도 유동규를 가리켜 욕심을 이야기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2013년 유동규는 남욱에게 돈을 요구한다. 대장동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유동규가 돈을 요구하는 상황을 정영학에게 전달하며 남욱은 "중이 고기 맛을 보면 절에 빈대가 안 남아난다"(2013년 7월 25일 정영학-남욱 통화)고 비유한다. 그로부터 보름 뒤(2013년 8월 12일) 남욱은 재차 정영학과 통화하며 "지금까지 (유동규에게) 3억4700만 원, 졸X 많이 줬다"고 전했다. 

[불신] "빨개 벗고 칼 하나씩 들고 등 붙이고 있는 건데..."

"진짜 서로 빨개(벌거) 벗고 칼 하나씩 들고 등 붙이고 있는 건데, 돌아서 찌르면 그냥 죽는 사이인데 이거는, 이 사람들(정영학·정재창)을 안 믿으면 누굴 믿어요." (2013년 4월 30일 정영학-남욱 통화)

남욱의 말이었다. "돌아서 찌르면 그냥 죽는 사이"를 두고 김만배는 꽤나 신랄하게 표현했다. 여기 등장하는 정재창은 대장동 사업 초기 동업자다. 

"너(정영학)는 깜깜하면 고개를 쭉 내밀고 다니면서 막 짖어, 요것만큼도 안 내놔. 남욱이는 깜깜하든 환하든 지 기분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고. 재창이는 총알이 떨어지는 자리, 유효사거리에 항상 떨어져 있어." (2020년 3월 13일 분당 식당 정영학-김만배-이성문) 

특히 김만배는 남욱을 불신했다. 

"남욱이는 진실이 없는 애야, 모든 사람한테. 내가 동규한테도 그랬어. '넌 부패 공무원이다, 업자한테 돈 받지 그런 놈이 무슨... 넌 공직가면 안 돼'라고." (2020년 7월 6일 판교 카페 정영학-김만배) 

이와 같은 불신은 대장동 일당이 쓴 공통비(공동으로 부담할 사업비) 분담금을 두고 옥신각신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더 깊어졌다. 

"공통비를 정리하고 지분대로 배정 받았으면 문제없을 텐데 배당이 먼저 되니 문제가 생겼다. 옛날에는 (이 사업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가) 첫 번째였는데 다 되고 나니 돈 문제가 생긴다." (2020년 10월 30일 분당의 한 노래방, 유동규-김만배-정영학) 

유동규의 이 같은 말에 김만배는 "욱(남욱)이는 자기 것도 안 내놓고 남의 걸 뺏어"라고 비난했다. 여기에 유동규는 이렇게 답한다. 

"걔는 옛날부터 그랬잖아요."

[반목] "X벌 같이 뒤져야지"... "나는 다들 보기 싫다"

불신은 뿌리깊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서로 목숨줄을 건 담보를 남긴다.

2013년 4월 16일 오후 6시 50분. 정재창, 정영학, 남욱은 유동규에게 전달할 돈을 앞에 두고 인증샷을 남겼다. 앞서 유동규가 "너네 원하는 대로 다해라 (다만), 그런 사람들 컨트롤하려면 총알이 필요하다"며 요구한 돈이었다. 정재창이 휴대폰을 꺼내며 "살아도 같이 살고, 딴 짓 못하게 다들, X벌 뒤지는 거 같이 뒤져야지"라고 말한다. 정영학은 "이걸 뭐 하러 해, 나는 콩밥 먹으면 빨리 뒤져요"라며 식겁한다. 

 
a

2013년 4월 16일 오후 6시 50분. 정재창, 정영학, 남욱은 유동규에게 전달할 돈을 앞에 두고 인증샷을 남겼다. ⓒ 뉴스타파

 
녹취록에 따르면 정재창은 2019년 말부터 유동규에게 돈을 건넨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김만배와 정영학을 협박한 정황이 나타난다(정재창은 이와 관련한 2021년 검찰 소환 조사 당시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김만배가 꺼낸 카드는 '자수'였다. 

"내가 재창이한테 '너는 뇌물로 3억이나 줬으니 너는 (징역) 7년이다. 동규가 (뇌물 받았다고) 자수 한다는 거 내가 말렸다'고 했어." (2019년 12월 23일 김만배-정영학, 서초동 카페) 

"형(김만배)이 자수한다고 그래서 (정재창이) 겁먹고 있어. 너(정영학)도 뭐라고 그러면 자수한다고 그래, 만배형이 자수하자고 그런다고." (2020년 4월 4월 김만배-정영학, 교대역 카페)

그리고 2021년 4월 27일, 정영학과 정채창의 통화는 대장동 일당이 서로 얼마나 멀어졌는지 잘 보여준다. 정영학은 "다들 보기 싫다"고 했다.  

정재창 : "꼴랑 돈 30억 때문에 그러지 마."

정영학 : "김만배한테 받으면 줄게."

정재창 : "김만배 그 개XX 죽여 버릴 거야. 그럼 다 한 번 만나."

정영학 : "저는 다들 보기 싫으니까. 나도 남욱이 안 보고 만배 형도 이제..."

정재창 : "모레까지 정리해줘요."

정영학 : "돈이 없어요. 소송하시든지."

정재창 : "형이 유동규 갖다 줬다매(며). 형이 돈 빼 가지고 공무원 다 줬다매(며)? 형이 주범이라매(며)?"

정영학 : "뭔 개소리예요, 그게?"


[침몰] "눈이 오기 전에 산은 넘어야 할 거 아냐"

결국, 녹취록에서 나온 단어가 "몰살"이다. 유동규 지분 전달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김만배는 이렇게 말한다. 

김만배 : "동규가 나온 거 해달라고 해서 동규한테 '내가 가져가서 세금을 내고 빼서 수표로 주겠다' 이런 방법이 하나 있고, (동규는) 자꾸 투자를 해달래 그래서 싫다고 했고, 그래서 내가 '남욱이 형(김만배)한테 천화동인1 소송(지분 반환)을 하면 내가 (소송에서 져서) 그 금액을 남욱이한테 주고 너(유동규)가 남욱한테 투자를 받으면 된다'고. 그러니까 자기는 남욱이를 못 믿어서 싫대. 내가 그랬어 '너(유동규) 이거 걸리면 네 명은 다 죽어, 몰살이야'." (2021년 2월 1일, 김만배-정영학 통화) 

한 달 전쯤, 김만배는 화천대유 사무실에서 이런 말도 했다.

김만배 : "눈이 오기 전에 산은 넘어야 할 거 아냐. 대선이라는 큰 산 언덕 위에 휘몰아치는 광풍을 누가 어떻게 감당해. 올 하반기부터 공세가 시작될 텐데. 가는 길에 황금연못에 잉어들이 많아도 거기에 시간을 끌면 고개를 못 넘어. 눈이 오는데 산을 어떻게 넘어. 눈 오기 전에 넘어야지. 돈이 문제가 아닌 거야. 눈 내리면 산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이 셀 거야. 우리는 산을 넘어야 돼."

정영학 : "맞습니다. 다 얼어죽게 생겼는데요." (2021년 1월 6일, 서판교 화천대유 사무실 김만배·정영학·이성문 등)


정영학의 말은 현실이 됐다. 이지스함으로는 산을 넘을 수 없었다. 

 
a

[2021년 4월 27일, 정영학·정재창 통화] 뉴스타파가 공개한 1325p 분량의 정영학 녹취록은 정재창이 정영학에 30억 원을 요구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것으로 끝이 난다. ⓒ 뉴스타파

#김만배 #정영학 녹취록 #대장동 사업 #남욱 #유동규
댓글1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