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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 돼 죽은 아들... 가해자는 책임 면할 시간 벌고 있어"

[현장] 눈발 속 모인 산재사망 유족들... SPL 제빵공장 동료 "말뿐 아닌 처벌 있어야"

등록 2023.01.26 16:37수정 2023.01.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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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 평택 제빵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A(23·여)씨의 동료인 강규형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SPL지회 지회장이 2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김성욱


눈발이 거세던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 SPL 평택 제빵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23세 여성 A씨의 동료 강규형씨, 화성 화일약품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29세 고 김신영씨의 아버지 김익산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숨진 24세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CJ E&M에서 일하다 숨진 28세 고 이한빛씨의 아버지 이용관씨가 함께 거리에 섰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이제야 1년을 맞았지만, 최근 윤석열 정부가 이 법을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김익산씨 : "새해가 밝았다고 하지만 저희 가족은 지난해 9월 30일 일어났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고 여전히 악몽의 날을 버티고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향남제약단지 화일약품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날 무렵 저희 아들은 여느 때처럼 작업장에서 일하다 만신창이가 되어 죽었습니다.

4개월이 지났습니다. 화일약품은 생때같은 자식을 죽여놓고 아버지인 저에게도 처벌불원서를 요구했습니다. 지난 12월엔 전 직원을 모아놓고 처벌불원서를 일괄해서 받았다고 합니다. 분통이 터집니다. 피해자는 불면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고용노동부의 수사가 늦어지면서 가해자는 잘못을 회피하고 책임을 면할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강규형씨 : "작년 10월 15일 SPL 산재 사망사고로 고인이 된 분과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고가 난 공정은 샌드위치 공정으로 초기에는 수작업을 하다가 무량이 점점 많아지면서 교반기라는 기계를 사용해 소스 작업을 했습니다. 오직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안전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혼자 작업하다 사고를 당했고, 고인이 사용한 교반기에는 안전센서조차 없었습니다.

사고가 난 시간 또한 새벽이었습니다. 저희는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 15시간 이상 근무하는 극한의 노동 환경입니다. 야간근무 중에서도 가장 힘든 새벽 시간에, 정해진 주문량에 맞춰 작업을 끝내야 하는 숨막히는 작업시간이 계속됩니다. 꽃다운 청춘이 별이 된 지 4개월이 다 돼갑니다. 사망사고가 났을 땐 당장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할 것처럼 떠들더니 이제는 처벌에 대한 내용조차 기사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권금희씨 : "남편은 38살 너무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정말 어렵게 가진 소중한 아이는 이제 아빠를 사진으로만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저희 남편은 중대재해법이 통과하고도 2개월이 지나서 사망하였습니다. 법이 개정되고 처음부터 실행이 잘되었다면 분명 저희 남편은 지금 제 곁에 있었을 겁니다. 


동국의 잘못들이 드러났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검사의 입장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법이 개정 되었을 때는 그에 정당한 처벌도 이뤄져야 되풀이 되는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중대재해법의 첫 처벌 판례가 앞으로 모든 노동자의 안전고리가 될 수 있도록 엄중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더 이상 일하다 억울하게 죽지 않게 해주세요."


법령 개악 수순에... 유족들 "말만 처벌 말고 실제로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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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씨(당시 나이 24) 어머니 김미숙씨가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김성욱


민주노총과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악과 무력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첫 1년 동안 총 229건의 사건 중 검찰은 달랑 11건만 기소했고, 윤석열 정부는 노골적으로 친기업적인 법 개정 TF를 발족했다"라며 "고용노동부도 11월 말에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하더라도 노사추천 전문가로 된 TF를 구성하겠다고 하더니, 한 달도 안 돼 오직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TF를 일방적으로 띄웠다"고 했다.

문은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작년 1월 29일에 채석장 작업 중 3명이 사망한 삼표산업 사건의 경우 지난해 6월 노동청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아직까지 기소하지 않고 있고, 작년 3월 2일 발생한 현대제철 사망 사건의 경우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사 중이다. 검찰이 대기업 수사는 왜이리 굼뜨고 더딘지 알 길이 없다"라며 "지난 1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집행은 전혀 엄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 변호사는 또 "윤석열 정부는 마치 기업의 불만 처리 창구라도 되는 듯 처벌보다 위험성 평가를 통한 자율 규제를 해야 한다며 그에 걸맞은 법령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정부는 이 법을 사문화하고 무력화하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책임자 처벌해야 또 다른 아들들 죽음 막아"
  

화일약품 산재사망 유족 고 김신영씨 아버지 김익산씨가 2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김성욱

 
현장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가족들도 한 목소리로 중대재해처벌법의 후퇴 움직임을 강하게 반대했다.

지난해 9월 30일 화일약품 공장 폭발사고로 사망한 고 김신영(29)씨의 아버지 김익산씨는 "아들이 일하고 있던 바로 옆 작업장에서 위험천만한 밸브 수리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아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라며 "화일약품 대표에 대한 처벌은 또 다른 아들들의 죽음을 막는 길"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15일 파리바게뜨의 빵을 만드는 평택 SPL 제빵 공장에서 사망한 A(23·여)씨와 함께 일하는 강규형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장은 "SPL 노동자들은 동료가 사망한 날에도 바로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해야 했을 정도로 SPL은 노동자를 마치 감정 없는 기계 부속처럼 취급했고, 이것이 바뀌지 않는 한 같은 사고는 또 다시 반복될 것"이라며 "말만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니라 정말 처벌받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돼야 한다. SPC그룹의 허영인 회장이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한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을 때 사업주는 물론 원청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지난해 1월 27일부터 적용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시행 첫 해였던 지난해 1년간 중대재해 사망사고는 611건, 사망자는 644명이었다. 이는 전년 대비 사망사고 54건, 사망자 39명이 줄어든 수치다. 하지만 아직 사업주가 처벌된 예는 한번도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총 229건 중 노동부가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것은 34건, 이중 검찰이 실제 기소한 것은 11건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경영자 처벌을 완화해달라는 재계의 줄기찬 요구에 윤석열 정부도 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지난해 11월, 노동부는 처벌 중심이 아닌 자율 규율 중심으로 중대재해를 감축하겠다는 내용의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 11일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출범시켰다. 노동계에선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처벌 규정 완화 등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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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씨(당시 나이 24) 어머니 김미숙씨, CJ E&M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 SPL 평택 제빵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23세 여성 A씨의 동료 강규형씨, 화성 화일약품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29세 고 김신영씨의 아버지 김익산씨 등이 참석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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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죽었는데 기소조차 안돼... 중대재해법 후퇴 안됩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산재 #SPL #화일약품 #동국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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