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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넷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갈 "노력한 대가 악착같이 받을 거다"

원고 5명 중 3명 이미 고령으로 사망... "대법원 '미쓰비시 재항고' 신속 판결해야"

등록 2022.11.29 16:50수정 2022.11.2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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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조속한 손해배상금 지급 확정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사죄라는 것은, (내가) 일본 가서 고생을 해놔서 일본 사람이 아니라 일본 놈한테 (받을 겁니다). 악착같이 내가 노력한 대가를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9일 찬바람 부는 대법원 앞에 선 양금덕 할머니가 절규하듯 말했다. '누구한테 사죄받고 누구한테 배상받고 싶냐'는 질문을 받은 직후였다.  

우리 나이로 94세(주민등록상 1931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29년생)인 양 할머니는 강제동원 피해자다. 14세 무렵인 1944년 5월 '중학교에 진학시켜주겠다'는 일본인 교장의 유인에 넘어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광복 2개월 뒤인 1945년 10월께 미쓰비시 측이 '고향집 주소를 알고 있으니 월급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2022년 기준 만 77년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할머니는 모진 세월을 홀로 감당해야만 했다. 광복 후 결혼 생활을 이어갔지만 '일본군 위안부에 다녀왔다'고 잘못 알려져 가정이 깨졌다. 1999년에는 일본 사법부에 전범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2009년엔 일본 정부가 양 할머니를 포함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우리 돈 1000원에 해당하는 '99엔을 지급하겠다'고 해 분통을 터뜨린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양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2012년 광주지법에 미쓰비시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고, 1심과 2심에서 승소했다. 지난 2018년 11월에는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우리 법원은 미쓰비시가 양 할머니 등 피해자 5명에게 각각 1억~1억 5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후 한국 법원은 미쓰비시가 국내에 보유한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에 대한 압류 조치를 명령했다. 현재는 상표권과 특허권을 현금화하는 마지막 사법 절차인 매각명령만 남은 상태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다시 한번 법원의 판단에 불복해 재항고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지난 7월 26일 외교부는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 매각 여부 판결을 앞둔 대법원에 "강제 현금화 이전에 외교적인 해결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대법원에서) 충분히 고려해주길 바란다"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외교부 의견을 수렴해 이례적으로 날짜를 특정하지 않은 채 미쓰비시 측의 특허권 특별 현금화 명령 재항고 사건에 대한 판결을 미뤘다.

29일 찬 바람이 매섭게 부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 사죄·배상'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휠체어에 앉은 채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외교부, 피해자들 상처에 소금 뿌렸다"
 

양금덕 할머니 “기다리다 세월 다 간다. 미쓰비시 강제동원 사죄·배상하라”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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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조속한 손해배상금 지급 확정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이날 대법원 앞에는 양 할머니를 비롯해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 것은 피해자들 상처에 다시 소금을 뿌린 행위나 마찬가지"라면서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를 강하게 질타했다.

"(1990년대) 일본 소송으로부터 시작해 길게는 20여 년 안팎을 외롭게 싸워오는 동안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 정부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현금화되면 추가 보복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그에 굴복해 피해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자 한 거다. 이런데도 외교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판결을 보류해 달라고 대법원에 요구했다. 너무 뻔뻔하고 염치없는 일 아닌가."

이들은 대법원을 향해서도 "언제부터 법원이 대일외교까지 신경 쓰는 곳이 됐냐"면서 "4년 전 오늘 대법원은 일제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피해 할머니 등에 대해 미쓰비시중공업이 배상하도록 최종 판결했지만 법원 명령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좌고우면 하지 말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특별현금화 명령에 대한 재항고심 판결을 신속하게 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또 한국과 일본 기업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미쓰비시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안에 대해서도 "배상 책임도 없는 엉뚱한 사람이 대신 그 돈을 주면 그동안 싸워온 피해자 꼴은 어떻게 되겠느냐"며 "아무에게나 동정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7월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꾸린 뒤 네 차례 회의만 진행한 뒤 9월 초순 협의회를 종료시켰다. 피해자 목소리를 충분히 들었다는 취지였다.

이후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의 유력한 해법으로 '병존적 채무인수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병존적 채무인수안이란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받은 뒤 피고 대상인 미쓰비시 등을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양 할머니가 말한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의 사과와 배상과는 배치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양금덕 할머니 역시 "잘못을 하면 죄를 받아야 한다"면서 "우리가 뭐 때문에 이렇게 나와서 고생을 하냐"라고 일갈했다. 

한편, 미쓰비시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버티는 4년 동안, 원고 5명 중 3명은 세상을 떠났다. 생존자로는 양금덕 할머니와 김성주 할머니 2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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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조속한 손해배상금 지급 확정 판결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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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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