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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은 기억 못해도, 2002년 여름은 기억하는 이유

[이영광의 '온에어' 205] 다큐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 연출한 김만진 MBC PD

22.11.28 18:01최종업데이트22.11.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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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다큐멘터리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 메이킹 필름 ⓒ MBC

 
MBC가 '2002 한일 월드컵 20주년'을 맞아 다큐멘터리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를 방송했다. 3부작 다큐멘터리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는 2002년 당시 축구 대표팀 선수와 코칭 스태프는 물론 보통 사람들이 기억하는 2002년 6월 뜨거웠던 대한민국 이야기를 풀어내 호평받았다.

다큐멘터리 제작 뒷이야기 있을 것 같아, 지난 23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다큐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 연출한 김만진 PD와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2002 한일 월드컵 20주년을 기념해 MBC <다큐플렉스>에서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를 연출하셨잖아요. 방송 끝낸 소회는 어떠세요?
"이게 3부작이잖아요. 보통 특집 다큐 3부작 제작할 때 PD는 두 명이에요. 근데 이번 경우에는 연출이 저 혼자였거든요. 혼자니까 머리가 복잡하기도 하지만 육체적으로 힘들었습니다."

- 왜 3부작을 혼자 하셨어요?
"처음에는 2부작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하다 보니 두 개 가지고 안 되겠더라고요. 3부작으로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촬영이 한 60~70% 정도 진행됐기 때문에 후배 PD를 데리고 오는 게 별로 의미가 없었고, 고생스러워도 혼자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죠."

-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는 어떻게 기획하셨어요?
"제가 고 유상철 선수하고 동갑이에요. 유상철 선수가 활동하던 시절에 그분을 만나본 적은 없는데, 저는 선수 시절부터 유상철 선수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유상철 선수가 동점 골을 넣는 장면은 정말 여러 번 봤고 대단한 집념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 경기 이후에 유상철 선수는 늘 제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2019년 11월에 유상철 선수 스스로 췌장암 걸렸다고 밝히는 걸 봤습니다. 왠지 제 가까운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며칠 후 인천 유나이티드 FC 구단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당시 유상철 감독을 만나러 경기장에 갔습니다. 그날 사실 저는 유상철 감독에게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러 간 것이었어요. 유상철 감독의 기자회견에 갔고 사진 몇 장을 멀리서 찍었지만 직접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어요. 결국 그 다큐멘터리는 제작하지 못했죠.

그 일 이후 유상철 선수의 이야기에 제가 관심이 많다는 걸 주변 선후배들이 알게 되었고 아마 2021년 말에 제게 '2002년 월드컵 20주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겠느냐?'고 제안이 왔습니다. 며칠 고민했는데, 유상철 선수의 이야기 중에서 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일반 시청자들께서는 잘 모르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전해줄 수 있겠다 싶어서, 제가 이 다큐멘터리 하겠다고 했습니다."

- 이 다큐멘터리 만들면서 고민한 지점은 뭔가요?
"제가 2020년 5월 방송된 5.18 4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나는 기억한다>를 만들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는데요. 2002년 월드컵이 그동안 방송에서 많이 다룬 소재라는 점 때문에 어떻게 다르게 만들지가 고민이었습니다."

- 차별화를 생각한 지점이 유상철 선수 때문인가요?
"유상철 선수 때문만은 아니에요. 제가 선택한 접근방식은 2002년 6월을 기억하는 보통 사람들, 그러니까 축구선수나 감독 이외에 그 시기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보통 사람들의 기억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가 된 겁니다."

MBC 다큐멘터리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 메이킹 필름 ⓒ MBC

 
- 왜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이영표 선수가 인터뷰할 때 저한테 'PD님은 5년 전, 10년 전 6월에 뭐했냐'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리고 계속 이야기 하기를, 보통 사람들한테 5년 전 6월에 뭐했는지, 10년 전 6월에 뭐 했는지 물으면 보통 사람들은 잘 기억 못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2002년 6월에 뭐했나요?'라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다 세세하게 기억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2002년 6월 당시를 아주 잘 기억하는 보통 사람들을 발굴해서 그 사람들의 얘기를 한 축에 놓고 또 한국 팀의 흥미진진한 경기를 또 다른 한 축에 놓은 다음, 이 둘을 아주 정교하게 씨줄과 날줄을 엮어나가듯 구성해보고 싶었습니다."

- 누구를 인터뷰할 건지도 문제잖아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관계된 책이나 언론에 보도된 기사 말고도 과거 MBC에서 방송된 화면 혹은 방송되지 않은 촬영 원본 등을 모조리 다 보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정말 양이 엄청나게 많더군요. 예를 들어 이번 다큐멘터리에 태진아씨의 사연도 소개됐는데요. 사연을 어떻게 찾은 거냐면, 2002년 당시 월드컵 경기장 촬영 원본을 자꾸 보다 보니까 관중석 중간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는 태진아씨를 찾게 됐어요. 월드컵과 관련된 사연을 전화로 취재하고 설득 후에 촬영을 약속하고요. 모든 출연자들이 그런 식이었으니까 시간이 오래 걸렸지요."

- 태진아씨는 그래도 연예인이었는데, 일반 사람들의 경우엔 더 어렵지 않았나요.
"그렇죠. 2002년 당시 대표팀이 월드컵 개막 직전에 훈련하던 경주에서 선수들을 따라다니던 '경주여중 4인방'이 나오는데요, 이분들을 찾아내는 것도 참 힘들었습니다. 옛날 자료를 보면 정말 흥미로운 여중생들이 선수들을 따라다니는 장면이 많이 있어서 이 분들을 꼭 찾고 싶었거든요. 결국 우리 제작진들이 예전 자료 영상 속에 그 여학생들이 입은 교복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게 경주여중 교복이란 걸 알아낸 거죠. 그래서 2002년 당시 경주여중에 다니던 분들을 접촉했고 그중에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을 열심히 쫓아다니던 여학생들 소식을 묻고 또 물어서 찾았어요."

- 1부를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카퍼레이드 장면으로 시작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저는 이 다큐멘터리를 스포츠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일종의 역사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역사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보통 사람들의 기억을 잘 수집해서 교직(交織)하는 형태로요. 경기의 내용이나 결과보다는, 한판 축제가 끝난 이후 보통 사람들의 기억이 저는 더 흥미롭다고 봤기 때문에 그런 장면에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 그럼 PD님의 2002년도 기억은 어때요?
"저도 그때 기억이 정말 선명한데, 저는 당시에 <생방송 화제 집중>이라는 데일리 프로그램의 조연출 시절이었는데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한국이 이긴 경기 다음 날 제가 속한 팀이 방송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그 경우 미리 준비해 놓고 편집한 아이템들이 있어도 그냥 다 취소하고 새로 만드는 겁니다. 그럴 때는 잠 못 자는 겁니다. 정말 힘든 날들이었는데, 지나고 보면 또 이렇게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추억이 되어 있네요. 벌써 20년이 지났고요."

- 2002년 당시 방송됐던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손석희의 시선 집중>에서 나온 멘트를 중간중간 삽입하셨던데 그 당시엔 거의 모든 방송에서 월드컵을 얘기했잖아요. 유독 두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 있을까요?
"저는 몇 년 동안 계속 내레이션이 없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고 이번에도 처음부터 내레이션이 없는 다큐멘터리로 완성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좋은 오디오를 잘 발굴해야 합니다. 좋은 오디오를 잘 발굴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화자(話者)를 잘 선정해서 좋은 인터뷰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방송사가 보유하고 있는 아카이브를 잘 발굴해서도 좋은 오디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카이브를 발굴하는 형태의 다큐멘터리는 우리나라에서도 보편화 되었죠. 보통 영상 아카이브를 많이 사용하지만 저는 꼭 그렇게 한정 지을 필요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라디오 아카이브도 아주 훌륭한 오디오 자료 소스가 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MBC의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서의 <배철수의 음악캠프> 경우에는, 진행자인 배철수 씨는 아주 유명한 축구 팬이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20년 전 <배캠> 자료들을 찾아서 들어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배캠>이 기본적으로 음악방송인데 2002년 6월 당시에 배철수 씨는 <배캠> 방송에서 음악 이야기 절반, 축구 이야기 절반을 하실 정도로 축구 좋아하는 분이셨고 방송 내용도 재밌었습니다. 그래서 만나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출연을 부탁드렸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경우에는 시사성이 강한 프로그램이잖아요. 당시 방송을 들어봤는데, 이번 다큐멘터리에 사용한 2002년 6월 10일 방송내용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국과 두 번째 경기를 치른 날이죠. 그날 손석희씨는 1987년의 6.10 항쟁과 연결 지어 6월 10일의 의미에 대해서 방송에서 이야기하고 계셨거든요. 좋은 오디오 자료라고 생각했습니다."
 

MBC 다큐멘터리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의 한 장면 ⓒ MBC

 
- 2002 한일 월드컵 스타 중에는 홍명보 감독도 있습니다. 이번 다큐멘터리에 나오지 않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사실 홍명보 선수도 제가 너무 인터뷰하고 싶었는데 결국 못했습니다. 왜냐면 지금 울산 현대에서 감독으로 계시는 홍명보씨가 올해 정규리그에서 선두 경쟁을 하면서 너무너무 바쁘셨거든요. 결국 우승하셨죠. 팀 사정 때문에 거의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힘드셨어요. 배우 문소리씨가 기억하는 홍명보 선수와의 에피소드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지요."

- 2001년 평가전과 2002년 예선과 16강, 8강 경기를 담으셨고 4강과 3, 4위 결정전은 안 나오던데 패배했기 때문일까요?
"져서 안 넣은 게 아니에요. 계속 말씀드리고 있는 것처럼, 저는 이 다큐멘터리를 역사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한국 대표팀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거든요. 제게 더 중요한 것은 그 경기와 관련해서 선수 당사자나 주변에 있던 일반인들이 그걸 '어떻게 기억하는가'였어요."

- 이영표 선수가 "2002년에는 지역이나 이념 갈등 같은 게 없었고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의 갈등도 2002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죠.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이영표 선수 인터뷰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스포츠 내셔널리즘의 부정적인 면을 보시는 분들에게는 좋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죠. 예를 들어 어떤 스포츠이건 국가 간 경기에서 이기면 사람들이 아주 즐거워해요. 근데 오늘 밤 전 국민이 다 함께 기뻐한다고 빈부 문제가 실제로 사라지나요? 이념 문제가 사라질까요? 성별 갈등이 없어지나요? 그럼 그렇다고 이영표 씨의 말이 다 틀린 건가요? 글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짧게 정리하기 어려운 주제이지만, 스포츠에 만약 어떤 긍정적인 기능이 있을 수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경기에서 이겼는데 그 순간 내 옆의 사람들과 다 함께 기뻐했어요. 그 이후에도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연대 의식 같은 게 남아 있을 수 있고 이 사람들과 내가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면 스포츠는 중요하고도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닐까요?"

- 이번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앞으로는 어려운 3부작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웃음). 또, 시작은 축구였지만 하다 보니 2000년대 초반의 한국 사회 영상자료들을 엄청 많이 보게 됐어요. 저도 그때를 살았던 사람이지만, 좀 떨어져서 다시 보니 그때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20년 사이에 진짜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북의 소리에도 게재됩니다.
김만진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 한일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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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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