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쓰레기를 제일 쉽게 주울 수 있는 방법

[리뷰] 소일 지음 '나는 윤리적 최소주의자, 지구에 삽니다'

등록 2022.11.15 14:07수정 2022.11.15 14:07
0
원고료로 응원
학창 시절 내 주변에는 손 재주가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헝겊이나 아크릴판으로 필통을 만드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에 속했는데 언뜻 봐도 문구점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예쁘고 튼튼했다. 게다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다는 프리미엄까지 있으니 탐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따금씩 흘긋거리긴 했지만 나는 한 번도 만들지 않았고 만들어주겠다는 친구들의 호의도 극구 사양했다. 나야 볼펜과 샤프 하나씩만 가지고 다니니 필통이 필요 없었고 나도, 친구들도, 좀 더 유익한 일에 시간을 쓰길 바랐던 것이다. 더 유익한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친구들이 아이돌에 열광할 때도 나는 늘 저만치 물러서 있었다. 돌아보면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뭔가에 빠지지도 않고 늘 뜨뜻미지근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불 같이 타오르는 친구들의 열정을 무의미한 것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언제부터일까. 지금의 나는 정반대가 되었다. 푼돈으로도 살 수 있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고 어떤 대상에게 대가 없는 애정을 퍼붓는 사람들을 흠모한다. 뿐인가. 나 역시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열광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이미 조금은 그런 것 같다.

가령, 나는 책을 읽고 리뷰를 쓴다. 쉼 없이 읽지만 기억력이 좋지 않아 시작한 일인데 마치 꼭 해야 하는 업무처럼 내 일과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가볍게 쓸 때도 있지만 어떤 책에 홀딱 반하고 나면 꽤 많은 품을 들이기도 하는데, 대가 없는 수고가 달콤해 쓰고 또 쓰게 된다.

필통을 직접 만들거나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어떤 대상을 마음껏 사랑하는 일. 이것만으로도 우리 삶엔 생기가 잔뜩 불어넣어지니, 대가가 없긴 한데 사실 없는 것도 아니다. 돈이면 다 될 것만 같은 자본주의 속에서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심지어 그것만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작은 마음들은 누군가와 통하게 되어 고립감을 한움큼 내려놓게 되고 때로는 큰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업이 바뀌거나 법이 제정되는 일들 말이다. 지금의 나는 쓸모없는 일이란 어디에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 되었다.
 
a

<나는 윤리적 최소주의자, 지구에 삽니다> 책표지 ⓒ 우리학교

 
작은 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을 만날 때면 흠뻑 미소가 지어진다. 소일 작가의 <나는 윤리적 최소주의자, 지구에 삽니다>를 보면서도 그랬다. 그녀는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일본에 체류하던 이십대때,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했다고 한다. 먼 지역에 있어서 피해는 없었지만 문득 직업이 없는 현실보다 재해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그때부터 혹시 자신이 떠나고 나면 남기게 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고 '최소한의 삶'을 결심하고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겐 어쩐지 영어로 더 익숙한 '미니멀라이프'를 택한 것이다. 단, 내 집만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해가 덜 되는 방향을 지향하게 된 것.

"꿈꾸는 '직업'이나 '직장' 대신 꿈꾸는 '삶'을 찾은 셈이다."(25p)

블로그에 그에 관한 기록을 이어나가며 그녀는 마음이 맞는 이웃들을 만났고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팁과 응원을 주고받으며 용기를 충전해 나갔다고 한다. 뿐인가. 작은 삶을 지속하던 중 우연히 공고를 보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기관에 취직하게 되었고 책도 출간하게 되었다.

이제 강연자로 나서기도 한다는 그녀. 최소주의자로서의 삶을 한걸음씩 내디뎠을 뿐인데 또 다른 길이 열렸으니, 이른바 '성덕(성공한 덕후)'이 따로 없다. 그녀는 여전히 쓰레기를 줍고 환경에 대한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책에는 최소한의 삶을 위한 팁들도 담겨 있지만, 언뜻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는 그녀의 생활도 가감없이 공개되어 있다. 가령, 사계절 옷은 전부 다 합해 30벌이지만, 양말은 36켤레를 갖고 있다고. 에어컨은 쓰지 않지만 로봇 청소기를 사용한다는 것도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나로서는 작은 삶을 위한 고정불변의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며 고유한 원칙을 만들고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또한, 막연한 꿈보다는 지금 당장의 행동이 내 삶의 귀한 순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덕분에 상기할 수 있었다.

"꿈은 먼 미래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의 내가 '원하는 삶'에 있고 희망은 당장 지금의 '행동'에 있다는 것, 그 진실을, 이제 나는 안다."(27p)

이 책은 십대를 위한 '진로 읽는 시간' 시리즈물로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아이들의 꿈이 '건물주'에 국한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거창하지 않은, 내 눈앞에 있는 일의 소중함은 아이들뿐 아니라 모두와 공유하고 싶다. 

"쓰레기를 제일 쉽게 주울 수 있을 때가 바로 발 앞에 쓰레기가 있을 때다. 멀리 바다로 흘러 가기 전에 줍자. 내 발 끝에서 바다가 시작된다."(94p)

나는 윤리적 최소주의자, 지구에 삽니다 - 제로 웨이스트로 먹고 살기

소일 (지은이),
우리학교, 2022


#나는윤리적최소주의자지구에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3. 3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