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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사고에서 전원 생존, 이태원 참사에 주는 교훈

[하성태의 이야기 따라잡기] 이태원 참사로 다시 본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22.11.14 17:42최종업데이트22.11.1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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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 넘도록 리뷰와 칼럼을 쓰고 있어도 어렵습니다. 문학소년, 영화청년으로 성장했어도, 이제는 몇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엎어지기를 반복해도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늘 이야기를 고민하고 콘텐츠에 서사가 없으면 허전할 지경입니다. 어쩌면 세상 또한 개개인의 서사와 이야기로 구성될런지도요. 영화와 드라마를 그 서사와 이야기를 중심으로 탐구해 보겠습니다.[편집자말]
155명 전원이 생존했다. 여객기가 새떼와 충돌하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뉴욕 한 복판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했는데, 사망자도, 큰 부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기적이 맞다. 그런데, 이러한 신속한 판단과 흔들림없는 결행력으로 수많은 인명을 구하고 국민적 영웅이 된 기장은 정작 미 국가운수안전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처지에 처한다. 필수불가결한 검증일까, 부당한 흠집내기일까.

지난 2016년 개봉한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하 <설리>)의 기둥 서사다. 잘 알려진대로, 이 이야기는 지난 2009년 1월 15 발생한 US항공 1549편 여객기 사고를 바탕으로 한 실화다. 가장 미국적인 배우라 일컬어지는 톰 행크스가 연기한 여객기 조종사 체슬리 설리 설린버거 역시 실존 인물이다.

국내 관객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개봉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설리>가 조명한 사고 당시 총체적인 구조 국면은 '세월호 참사'의 우리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참사를 막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개인의 책무와 미국이란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안전)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담담하면서도 부단히 조명하고 따져 묻는다.

물론 자칫 미국 우월주의로 비칠 수 있는 자가당착이나 게으른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이 노장은 기적과 같은 실화를 통해 안전과 생명을 대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보편타당한 책임 의식과 이를 작동시키기 위한 점검 시스템의 윤리까지를 그리 어렵지 않은 화법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설리>는 국정농단 시국에 개봉했고, 이 미국스러운 실화를 접하는 우리는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무너져간 정권의 시스템 부재를 저 멀리 미국 땅의 실화 사건을 통해 반추하고 자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6년 만에 10.29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설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성찰거리를 던져 준다. 매우 고마운 작품이다.

국민적 영웅은 왜 트라우마에 시달리나
 

영화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 스틸 이미지.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스틸 이미지.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일반적인 트라우마일 수 있다. 그럼에도 설리(톰 행크스 분)는 지속적으로 악몽을 꾼다. 여객기가 뉴욕의 빌딩에 부딪치는 장면이 꿈 속에서 나타나고 일상에서 떠오른다. 내가 관제센터 제안처럼 회항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을까. 그랬다면 여객기가 강에 추락하는 일 자체를 막지 않았을까. 머리가 희끗한 이 베테랑 여객기 조종사는 회의하고 또 회의한다.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수많은 인명을 살렸다. 도처에서 국민적인 영웅 '설리' 얘기다. 그러나 비행기는 허드슨 강에 추락해 버렸다. 회항 자체가 불가능한 미션이 아니었다. 허드슨강 비상 착수는 온전히 본인의 판단과 선택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에 수많은 인명이 달려 있다면 그 선택의 함량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설리>가 시작하는 시점은 이 국민적 영웅이 미 국가운수안전위원회의 조사에 맞닥뜨린 순간이다. 위원회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동원해 철저한 검증에 나선다. 사고 당시 잘못된 판단은 없었는지, 승객 전원의 목숨을 걸고 무모한 선택을 한 건 아닌지에 대해 위원회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검증한다.

그것이 이 '영웅'을 몰아붙이고 결과적으로 심리적 위축감을 더하게 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여기엔 '좋은 게 좋은 거'란 무사안일주의식 사고방식도, 인맥이나 위치에 좌우되는 일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반북되는 시뮬레이션 결과는 설리가 틀렸다고 말하는 중이다.

"이 시뮬레이션엔 인적 요소가 빠져 있어요. 조종사들이 몇 번이나 연습한 겁니까? 이 시뮬레이션을 위해서요. 인적 오류를 밝히고 싶으면 인적 요소를 반영해요."

추궁을 거듭하는 위원들에게 설리가 항변한다. 그렇다. 판단은 기계가, 컴퓨터가, 자율 주행 항법이 아닌 위기 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내리는 법이다. 위기의 현장에서 내린 판단은 이처럼 종합적인 요소가 반영돼야 한다. 원론적인 사후 판단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모든 상황을 옆에서 지켜봤던 부조종사도 이렇게 거든다.

"이건 비디오 게임이 아니에요. 생사가 걸린 일이었어요."

<설리>는 시간 순으로 짜인 영화가 아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자성하고 회의하는 설리의 회상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퍼즐처럼 맞춰가는 영화다. 거기에 올바른 선택을 하고도 추락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기 위해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돌봤던 조종사가 자리하고 있었을 뿐이다.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음을, 그리하여 미국인의 책임 의식과 윤리 의식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리하여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장소에 있었다"는 설리의 대사를 강조한다.

맞다. 국가의 안전 시스템은 그렇게 작동하고 그 존재감을 통해 시민들의 생명을 살리는 한편 평소 책임의식과 안전의식을 고취하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가 부러울 수밖에 없던 장면이 바로 거기 있다.

여객기 추락과 동시에 해안경비대가, 경찰이, 언론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인명 구조를 위한 총체적인 활동에 나서는 <설리> 속 구조 장면 말이다. 6년이 흐른 지금도 그러한 부러움이 여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통탄할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당당하게 위원회 조사를 마치고 나온 설리는 이렇게 말한다. 역시나 부러움을 안겨주는 명대사다.

"난 내 일을 했고,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다."

<설리>의 교훈 그리고 10.29 이태원 압사 참사의 책임자들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스틸 이미지.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우리 현실로 돌아와 볼까. 10.29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장소에 있었는가. 아니다. 경찰도, 경찰 기동대도, 구청 직원들도 거기에 없었다.

제대로 된 위치에서 자기 할 일을 할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이 공분하는 중이다. 반면, 자기 일을 할 사람은 없었는데 애먼 이들만 본업에 충실한 건 그 자체로 비극일 수밖에 없다. <설리> 속 명확히 존재하고 신속히 작동했던 시스템을 부럽게 만든, 그리하여 어제까지 158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부재한 시스템의 책임자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이들이 혹시 <설리> 속 시뮬레이션처럼 현장 상황을 무시한 채 원론에만 매달리고 있는 건 아닌가. 수사만능주의, 처벌만능주의에 빠져 인적 요소를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아니, 본인들이 무책임하게 무시해 버린 그 인적 요소로 인해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것은 아닌가. 

세월호 참사에 이어 다시 호명된 <설리>가 우리에게 일깨우는 교훈은 명확하다. 국가적 재난을, 참사를 막는 안전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힘은 무엇인가. 저들에게 있고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언가.

누가 자신의 책임에 충실했고 누가 자기 책임을 방기하는가. 무엇보다 본인의 책임을 누구에게 뒤짚어 씌우려고 하는가. 설리가 시달려야 했던 트라우마를 전국민이 겪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진짜 '자신들이 맡아야 할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태원참사 설리허드슨강의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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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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