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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회영의 '굴욕'... 정부가 굳이 이래야 합니까

[주장] 한 고등학생의 정곡 찌른 질문... 독립운동가 공적에 굳이 서열을 매겨야 할까

등록 2022.10.27 21:39수정 2022.10.2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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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보 제1호는? 조선의 건국과 천도 이후 한양 도성의 남문이었던 숭례문이다. 이는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그렇다면, 국보 제70호는? 장담하건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는 문화재청의 관계자 등 전문가 외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글을 시작하며 국보 지정 번호를 들먹인 이유가 있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지, 아니면 교육을 통해 길러진 후천적 특성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대개 순번의 서열에 대단히 민감하다. 과거 어느 개그 꼭지에서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며 이런 세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국보 0호는 숫자에 불과

국보 제70호는 훈민정음해례본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와 운용 방법을 설명한 한문으로 된 해설서다. 이를 통해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과 우리글이 얼마나 과학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현재 훈민정음해례본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숭례문과 훈민정음해례본, 둘 중 어느 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인가를 따지려는 건 아니다. 모름지기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라면 어느 것 하나 서열을 매길 수 없다. 지정 번호는 그저 관리와 보존을 위해 붙인 것일 뿐이다.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하긴 요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국보'라는 것만 소개될 뿐 지정 번호는 대개 생략되어 있다. 아마도 순번의 서열에 유독 민감한 우리네 정서를 반영한 조치라 여겨진다. 무엇이든 줄 세우고 거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행은 과연 언제쯤 사라지게 될까.

오랜 시간이 필요할 성싶다. 지난 2020년 훈민정음해례본을 국보 제1호로 지정하자는 여론이 비등하기도 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문화재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무엇보다 제1호라는 숫자의 상징성을 염두에 둔 제안이었다.

그나마 문화재에 대한 '서열 의식'은 많이 누그러졌다. 그저 보물의 위 단계가 국보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보 지정 번호를 무슨 영어 단어 암기하듯 외우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요즘 그랬다간 친구들로부터 쓸데없는 짓 한다며 놀림당하기 십상이다.

정곡을 찌른 한 아이의 질문

"일제와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도 문화재처럼 서열이 매겨져 있나요?"

한 아이의 뜬금없는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정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답변하면 다른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독립운동가들에게 주어지는 건국훈장에는 훈격의 차이가 있고, 드물게 추후 승급되거나 서훈이 취소되는 사례도 있다.

예상대로 질문이 이어졌다. 몇 등급으로 나뉘어 있나? 다섯 등급이다. 수여 기준은 무엇인가? 국가보훈처의 지침에 따른다. 정부가 기준을 정한다는 뜻인가?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친다. 정부의 성향에 따라 기준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 않나?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두루뭉술한 답변이 오갔다. 답변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교사인 나 역시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질문은 내가 정부에 묻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계량화하여 서열을 매기는 게 과연 가능하고 합당한지 솔직히 궁금하다.

건국훈장은 정부 수립 후 조국의 독립과 건국에 이바지한 선열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49년 4월부터 수여됐다. 관련 법이 1963년 이후 2011년까지 여러 차례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고 훈격인 대한민국장부터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 5등급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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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제의 주구 스티븐스를 사살한 전명운의 묘소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서재필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전명운은 대통령장을 수훈했다. ⓒ 서부원

 
문제는, 건국훈장을 수여한 개별 독립운동가들의 훈격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는 점이다. 교과서에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 대한민국장 수여자에 이름을 올렸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인물은 독립장에 머물러 있다. 거칠게 말해서, '엿장수 마음대로' 줬나 싶을 정도다.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건국훈장 등급

을사늑약 체결에 자결로 항거한 조병세나 1920년대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독립군 총사령 오동진은 그렇다 해도, 미국에 건너가 이승만 휘하에서 외교 활동을 벌였다는 공적으로 대한민국장을 수여한 임병직의 사례는 쉬이 납득하기 힘들다. 그는 실상 이승만의 비서였을 뿐이다.

을사오적의 수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쳐 처형당한 이재명과 1920년대 오동진, 김좌진과 함께 독립군 3대 맹장으로 불렸던 김동삼은 대한민국장을 수훈하지 못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인 이회영은 3등급인 독립장을 받았는데, 그의 동생인 이시영은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이회영은 수능 시험에서도 자주 출제될 만큼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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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서울 현충원에는 이회영 부부의 합장묘와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양세봉의 무덤은 북한의 애국렬사릉에도 있다. ⓒ 서부원

 
그뿐 아니다.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도, 민립대학 설립 운동과 신간회를 이끈 이상재도, 한인애국단원 이봉창도, 한국광복군 사령관 지청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이동녕도, 심지어 불세출의 독립운동가 신채호조차도 뒤로 밀렸다. 세 명의 헤이그 특사 중에도 이준만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이상설, 이위종은 2등급인 대통령장을 수훈했다.

남성 독립운동가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여성 중에 대한민국장을 수훈한 경우는 두 명뿐이다. 그조차 한 명은 외국인으로,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엔 지난 2019년에 승급된 유관순이 유일하다. 여성 독립운동가 대다수는 3등급 이하에 머물러 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1호 수훈자가 이승만이었다는 사실도 적이 민망하다.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상훈법을 결재한 뒤 스스로 첫 번째 수훈자가 되었으니, '셀프 훈장'이었던 셈이다. 더욱 황당한 건,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중에 그가 훈장을 수여한 이가 자신과 초대 부통령이었던 이시영, 둘뿐이라는 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동생 이시영과 형 이회영의 훈격 차이를 납득할 수 있나. 임병직과 신채호, 둘 중 누가 더 위대한 독립운동가인가. 대체 임병직이 누구냐고 묻는 아이들 앞에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에 빛나는 그의 공적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이들에게 건국훈장의 '서열'을 괜히 알려줬나 싶은 후회가 든다. 대한민국장은 국보고, 대통령장은 보물, 독립장은 지방유형문화재로 비유하는 짓궂은 아이가 있었다. 정부가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심사해 훈격을 구분해놓았으니, 그의 비유가 아예 엉뚱하다고 할 순 없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영예로 여겨져야 할 건국훈장이 아이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될까 두렵다. 굳이 훈장의 등급을 나누겠다면 모두가 수긍할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국가보훈처의 지침만으로는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인식이 퍼지는 걸 막긴 힘들 듯하다.

하여 제안한다. 5등급으로 나뉜 건국훈장의 훈격을 단순화하자. 문화재의 지정 번호를 감춰 '서열 의식'을 누그러뜨리듯 건국훈장 수훈자라는 이름만으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상훈법을 개정하면 어떨까. 그 어떤 전문가도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계량화해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윤봉길은 금메달, 이봉창과 백정기는 은-동메달?

얼마 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을 답사하던 중 한 가족 옆에서 적이 황당한 설명을 엿듣게 됐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에게 왼쪽부터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순으로 무덤이 배치된 이유를 아버지는 비유를 들어 이렇게 설명했다. 물론, 허무맹랑한 주장일 뿐이다.

"올림픽에서 메달 수상자들이 선 위치와 똑같다. 가장 위대한 윤봉길 의사를 가운데에 모셨고, 그분의 좌우로 이봉창 의사와 백정기 의사를 둔 것이다."

그의 말인즉슨, 윤봉길이 금메달, 이봉창이 은메달, 백정기가 동메달이라는 뜻이다. 앞뒤가 맞지 않은 이야기지만, 언뜻 수훈한 건국훈장의 훈격을 생각하면 그렇게 착각할 수도 있겠다. 윤봉길은 대한민국장을, 이봉창은 대통령장을, 백정기는 독립장을 수훈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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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왼쪽으로부터 안중근(가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가 차례대로 모셔져 있다. ⓒ 서부원

 
삼의사의 유해를 봉환한 시기는 해방 직후인 1946년이고, 그들의 건국훈장 수훈 시기는 1962년이다. 이조차 추측일 뿐이지만, 순국한 시기를 기준으로 모셨다는 게 훨씬 더 상식적이다. 이봉창은 1932년 10월, 윤봉길은 1932년 12월, 백정기는 1934년 6월에 순국했다.

삼의사의 공적을 올림픽 메달 색깔로 비유하는 강퍅함에 뒷맛이 개운찮았다. 따지고 보면, 그를 나무라기도 뭣하다. 건국훈장의 훈격을 세분화해 독립운동가의 공적에 서열을 매긴 건 정부이기 때문이다. 다시 묻자. 윤봉길과 이봉창, 백정기의 공적에 굳이 서열을 매겨야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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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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