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고향 청풍면, 북한도 아닌데 못 간답니다

수몰 전 청풍도호부와 청풍면의 흔적을 담은 제천 청풍 문화재 단지

등록 2022.10.15 20:21수정 2022.10.18 09:30
4
원고료로 응원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의미인데, 청백하고 따스한 사람을 말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충청북도 제천시에는 여기서 이름을 딴 청풍면이 있는데, 조선시대 후기 현종 원년(1660)에는 현종비였던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관향이어서 도호부로 승격되기도 했다. 게다가 남한강을 따라 죽령길이 시작하는 단양으로 갈 수 있기에 물자 수송에 있어 중요한 지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옛 청풍도호부 터는 1980년대 충주댐 건설로 인공호수 아래에 잠겨 있다. 다행히 옛 도호부 건물들은 청풍대교 건너 망월산성 남벽 앞에 있는 문화재단지로 이전하여, 조선시대의 흔적을 그나마 간직하고 있다. 문화재단지 내에는 도호부 건물뿐만 아니라 청풍면에 있는 옛 가옥들도 옮겨놓았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면의 옛 흔적을 보러 청풍문화재단지로 가보자.

충주댐 공사로 수몰된 청풍면 이야기 
     
청풍문화재 단지는 제천 시내에서 남서쪽에 있다.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강원 북부에서 출발하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에서 82번 지방도를 타고 금성면을 거쳐 청풍호를 따라가는 고불고불한 길을 따라오면 되고, 영남지역에서 출발하면 북단양 나들목에서 532번 지방도를 타고 오면 된다. 다 오면 청풍대교가 보이는데, 건너면 바로 오른편에 문화재단지가 있다.

문화재단지 입구를 보면 팔영루라는 현판이 있는 누각과 성문이 보인다. 처음에는 문화재단지 조성을 위해 최근에 만든 것인 줄 알았는데, 300년 역사가 있는 누각이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지은 남덕문을 고종 7년(1870) 부사 이직현이 다시 지은 것이다. 이후 부사 민치상이 청풍 팔경을 노래한 팔영시 때문에 오늘날 이름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팔영루는 충주댐을 건설하던 1983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팔영루를 지나 오른편에 보니 옛 가옥들이 보인다. 가장 먼저 보이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제천 도화리 고가다. ㄷ자형 고택이지만, 고택 앞 쪽에 한 일(一) 자형 행랑채 흔적이 있어서, 튼 'ㅁ'자 고택의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화리 고가 좌측에는 부유한 농민의 집 형태를 잘 보여주는 후산리 고가와 뒷마당에 꽃들로 가득한 지곡리 고가가, 오른편에는 조선시대 시골 양반집의 모습을 간직한 황석리 고가가 있다. 댐이 수몰한 지역에 있던 대표적인 고택들을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해야 할까?
 
a

조선 후기 청풍부사 이기홍이 창건한 누정인 청풍 팔영루 ⓒ 최서우

 
a

청풍 도화리 고가. 원래는 ㄷ자형 안채와 一자형 행랑채가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었으나 안채만 남았다. ⓒ 최서우

 
황석리 고가 오른편에 보면 유물전시관과 수몰역사관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유물전시관에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진 제천의 역사를 담고 있다. 특히 조선 말기 유학자 유중교가 세운 서당인 자양서사에서 의암 유인석이 이곳에 의병 진영을 설치해, 일본군에 맞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남산전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유물전시관에서 좀 더 내려가면 수몰역사관이 있는데, 1980년대 초 충주댐 건설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이주한 55법정리동 3301가구 1만 8693명 주민들의 애환을 잘 담아내고 있다.

옛 청풍지역 일대를 보니까 남북 양끝을 빼고, 거의 모든 곳이 오늘날 호수 아래로 잠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수몰 역사관을 나서기 전 방명록을 봤는데, 고향을 다시 추억하기 위해 역사관을 찾아왔다는 수몰지 옛 주민의 문구가 보여 가슴이 먹먹했다.

두 전시관을 모두 관람하면 왼편으로 올라가는 길이 하나 보인다. 한벽루, 응청각, 금병헌 이정표가 보이는데, 올라가면 옛 청풍도호부의 흔적을 볼 수 있다.  
 
a

수몰전시관에 비치된 청풍면 지도. 푸른색 부분이 80년대 충주댐 건설로 청풍호에 잠긴 부분인데, 청풍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최서우

 
청풍도호부의 흔적과 망월산성

도호부 건물들을 보러 올라가니 청풍명월이라고 크게 쓰인 기념비 앞에 수많은 비석들과 커다란 바위들이 전시되어 있다. 수많은 비석들은 조선시대 청풍군수, 도호부사, 충청관찰사의 업적을 기린 송덕비와 선정비다.

실제 부사와 관찰사들이 선정을 배풀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대 도호부사와 관찰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중요한 자료다. 송덕비와 선정비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는 청동기시대 족장의 무덤을 상징하는 고인돌인데, 황석리 지역에서 옮겨 왔다.

옛 남한강변의 거석과 비석문화를 보고 앞으로 가면 누각과 옛 건물이 보인다. 먼저 앞면 네 칸, 측면 세 칸의 팔작지붕 누각이 눈에 띄는데, 청풍도호부 연회 장소였던 보물 제528호 한벽루(寒碧樓)다.

원래는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 출신 승려 청공이 왕사가 되면서 군으로 승격시킨 것을 기념해 객사 동쪽에 지었는데, 인조 12년(1634)년 권경이 다시 건립하였다. 밀양의 영남루와 남원의 광한루처럼 왼편에 부속채가 딸려 있는데, 상당히 드문 조선시대 누각 형태다. 오늘날 남은 것은 1972년 홍수로 무너진 것을 3년 후에 복원했다.  
 
a

옛 청풍도호부 터에 전시되었던 송덕비와 선정비들. 비석들 앞에는 제천 황석리 고인돌이 전시되어 있다. 청동기시대와 조선시대의 지도층 권력을 잘 보여주는 곳이 아닐까? ⓒ 최서우

 
a

보물 제528호 한벽루. 밀양 영남루와 남원 광한루와 더불어 부속정자가 딸린 조선시대 누각이다. ⓒ 최서우

 
한벽루 옆에는 돌담으로 막아놓은 1층과 방이 있는 누각인 2층으로 구성된 건물이 있는데, 현판에 응청각(凝淸閣)이라고 적혀 있다. 언제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조 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가 응청각에서 묵었다는 일기 기록이 있어서, 적어도 조선시대 중기에 지어져 1층은 창고, 2층은 숙박시설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한벽루 서쪽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여기로 이전했지만 기록대로 배치했다.

응청각 옆 건물에는 대청마루 위 의자에 앉아있는 사또와 두 이방, 그리고 형틀과 좌우로 포졸을 묘사해놓았다. 숙종 7년(1681) 청풍부사 오도일이 지은 관청인 금병헌인데, 부사가 집회와 집무를 처리하던 관아의 행정중심건물인 동헌(東軒)이다. 죄인을 가두었던 옥사도 있었는데, 조선 말기에 없어졌다. 금병헌 아래에는 또 다른 누각문이 있는데, 순조 25년(1825)년 부사 조길원이 창건한 금남루(錦南樓)가 있다. 충주댐 공사 이전에는 청풍초등학교의 교문이기도 했다.
 
a

제천 청풍 응청각. 장소를 이전했지만, 오늘날에도 <여지도서>기록대로 한벽루 왼편에 놓여 있다. ⓒ 최서우

  
a

청풍도호부의 동헌인 금병헌. 동헌은 부사가 집회와 집무를 처리하던 관아의 주된 행정건물이다. ⓒ 최서우

 
a

제천 청풍 금남루. 순조 25년(1825) 청풍부사 조길원이 창건하였다. 금남루 현판 반대편에는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로 쓰인 현판이 있는데, 조길원이 누제(樓題)를 손수 쓴 것이다. ⓒ 최서우

 
옛 도호부를 지나면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올라가는 길에 있는 육각정과 연리지 나무를 지나면 계단 위로 성벽이 있다. 돌 색깔이 밝은 것을 보아 아무래도 복원한 것 같은데, 삼국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망월산성의 남벽을 다시 지은 것이다.

신라는 망월산성을 단양 적성과 함께 한강변 주요 군사 요충지로 이용했는데, 이는 <삼국사기>에 문무왕 13년(673) 사열산성을 더 늘려 쌓았다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사열산성은 망월산성의 옛 이름으로 추정되는데, 고구려가 지배했던 시절 당시 지명이 사열이현이라서 그렇다.
 
a

복원된 망월산성의 남벽. 삼국시대 성곽양식으로 복원하였다. ⓒ 최서우

 
오늘날 평화를 찾은 망월산성도 단양 적성과 온달산성과 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산성 남동쪽으로는 남한강 양 옆의 산자락과 둘을 이어주는 청풍대교의 절경이, 북쪽으로는 충주댐으로 만들어진 청풍호의 비경이 멋지게 펼쳐져 운치를 더한다.

하지만 수몰전시관을 통해 옛 주민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청풍호임을 알기에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다. 청풍도호부의 일부 건물들과 옛 가옥 일부가 명월산성 앞으로 옮겨졌지만, 단양 단성면 일대와 함께 옛 추억으로 사라졌다는 안타까움 때문일까. 

게다가 한국지리 시간에 충주댐이 남한강을 대표하는 댐으로만 들었지, 조선의 청풍도호부, 오늘날 청풍면 대다수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문화재단지 수몰전시관에 와야 진실을 알 수 있다.

충주댐이 완공된 지 35년이 넘어서 옛 남한강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수력 전기를 생산하고, 홍수를 보호하는 다목적댐은 수몰지역 마을 주민의 희생으로 이뤄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a

망월산성에서 남동쪽으로 바라본 청풍대교의 풍경 ⓒ 최서우

 
a

망월산성에서 바라본 청풍호. 남한강을 대표하는 충주댐은 80년대 청풍면 주민들의 희생으로 건설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 최서우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행테마 중앙선 연재 중입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하수구 금호강' 겨우 살렸는데... '홍준표'가 두렵다
  2. 2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3. 3 윤 대통령 등판에도 심상치 않은 민심... "또 박정희? 구미가 호구냐"
  4. 4 [단독] 윤석열 정부포상, 퇴직 교원 1970명 수상 거부·포기
  5. 5 "집값 폭등은 저금리 아닌 문재인 탓" 언론보도는 '거짓'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