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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에 다시 풀타임 엄마가 되었습니다

매일 계속되는 '김지영들'의 삶, 그래도 별 일은 없습니다

등록 2022.09.01 13:14수정 2022.09.0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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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임신, 출산, 경력단절... 소위 여성이 겪는 사회문제로 대표되는 이 일들은 당연하게도 제 삶을 피해 가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파생된 일은 더 많았지요. <82년생 김지영>의 열기는 식었지만 김지영들의 삶은 매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회가 그리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김지영의 결말이 자못 비현실적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들게 나간 사회에서 다시 자리를 내려놓는 일도 적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시작된 육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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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다. ⓒ 서인희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 번도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이 자란 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계약직 교직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계약이 종료되던 해에 같은 대학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향이 지방도시라는 것이 그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습니다. 스물일곱의 저는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라고 생각했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못해 처절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도시, 익숙한 공간이 한 곳도 없는 도시가 마치 투명한 결계가 쳐진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학연과 지연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관계나 마음을 깊이 나눈 친구는 고사하고 그 흔한 지인조차 한명도 없다는 것은 무척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직장생활 2년차 사회초년생의 경력은 단절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우울감이 짙어졌고, 술을 마시는 날이 늘더니 어느 순간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참 뻔한 이야기지요. 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덕에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교습소도 시작하며 사회 속 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운영하던 작은 교습소는 출산을 앞두고서 정리할 수 밖에 없더군요. 또 다시 노력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육아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육아는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필요 없는 것 같은 이 사회에서 나 없으면 안 되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기쁘게 하던지요. 다만, 결혼 이후에 석사와 박사 과정을 쉼없이 밟아가는 남편을 보며 어느 순간 우울해지고 갈수록 그 빈도와 강도는 심해졌습니다. 내가 너무 아까워졌습니다.

견딜 수 없어서 남편에게 토로한 날, 그의 답변은 강렬했습니다.

"생각해보자. 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지도 않았고,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결혼을 했고 갓난아이가 있는데 또 아이를 가질 가능성도 있는 서른이 넘은 여자를 고용할 회사가 있을까? 나라면 너를 뽑기 어려울 것 같아. 너라면 어떨 것 같니?"
       
냉정한 말이었지만, 모두 공감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오랜 대화 끝에 대학원에 진학을 하기로 하고, 다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3시간씩 자며 공부와 살림, 육아를 했지요. 내 관계를 만들어가고 내 고민을 깊게 하는 일은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 지역에 제 자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일로 연결이 되더군요.

2014년, 결혼이주 5년 만에 처음으로 사회적 자리가 주어졌습니다. 제 일은 공부, 일, 육아, 살림으로 늘어났습니다. 저는 다음 일로 연결되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결코 끼어들 수 없는 지역 사람들의 관계망을 넘어서려면 매순간 능력을 증명해야 했고, 남들보다 몇 배는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7년의 시간 동안 계약직 프리랜서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공공 영역의 정규직 직원으로 제 자리는 달라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회사에서의 사고로 PTSD와 중증도 우울증, 공황장애를 얻기도 했습니다. 산재로 승인받을 만큼 분명하고 심각한 일이었지만 겨우겨우 갖게 된 그 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흔을 앞둔 시점 공황장애의 재발은 모든 것을 멈추게 했습니다.

더이상 조급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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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일하던 회사를 퇴사하며 정리한 개인 물품. 생각보다 참 단출했다. ⓒ 서인희


몇 년 전, 한 기사에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거치면서 기업에서 자리잡은 여성들이 40대에 퇴사를 선택하는 이유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성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다 쓰고도 복직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은 이미 드물고 좋은 직장입니다. 그런데 왜 퇴사를 선택하는지를 읽고 무척 슬펐습니다.

대략 이유는 이러합니다.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녀는 가장 예민한 중2 전후의 시기가 되고,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지요.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 때문에 결국 퇴사를 선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의 퇴사는 경력단절로 연결되기 매우 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상황은 조금 달랐지만, 저도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온전히 아이와 함께하는 건 10년만의 일입니다. 일년에 한 두번씩 일을 안 하면 안되느냐고 묻던 아이는 요즘은 종종 앞으로도 일하지 말고 같이 있자고 합니다. 육아와 살림을 하는 것은 10년 전과 다를 게 없는데, 제 마음은 참 달라졌습니다. 너무 지쳐서인지, 산전수전 다 겪어서인지, 그저 불혹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깨달음은, 가장 소중한 것이 명료해지니 내 욕망의 출처를 찾아서 정리하게 되고 욕망이 정리되니 스트레스와 강박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13년간 맨땅에 헤딩하며 쟁취한 자리에서 다시 풀타임 엄마가 되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더이상 조급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별일 없이 살고, 부럽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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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따뜻하고 더 정갈한 사회를 꿈꾸는 엄마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어디에 있든 모든 사람이 각자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그런 사회를 바라며 저는, 느리지만 분명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국가의 애도는 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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