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8 17:41최종 업데이트 22.06.0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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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외친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는 국민들이 있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수십 년간 여당이었던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이 무너지고 있다면? 

며칠 전 연락을 받은 사안 때문에 하는 얘기다. 전남 곡성군에서 한 업체가 대규모 채석장을 추진하자, 주민들이 그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그런데 군청에서는 '불법현수막을 걸었다'며 무려 1800만 원이 넘는 과태료를 주민들에게 부과하겠다고 사전통지를 해 왔다는 것이다.
 

전남 곡성군 주민들이 건 채석장 반대 현수막 ⓒ 김진호

 
너무 어이가 없어 군청에서 보낸 사전통지서를 한번 보내달라고 했다. 마을 이장에게 1843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통지한 게 사실이었다. 주민들이 현수막을 총 61장 걸었는데, 1장당 17만 원~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지난 2월 필자도 이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채석장이 추진되는 바로 아래쪽에는 청정한 저수지가 있고, 그 저수지 물로 사과 농사,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농어촌공사에서는 '채석장이 들어설 경우 저수지 제방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의견까지 표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주민들이 현수막을 걸어서 반대의견을 표시할 수밖에. 

그런데 곡성군은 '옥외 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아래 옥외광고물법)' 제3조를 위반했다며 거액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허가 또는 신고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현수막을 걸었다는 이유다. 

대한민국에서 사업 반대 현수막이 붙은 곳이 어디 한 둘인가? 만약 서울이나 대도시 지역 주민들이 붙인 현수막이었다면, 지방자치단체가 이렇게 거액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를 돈으로 억압하려는 시도

지정된 게시대에 걸린 현수막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자체가 현수막을 철거하는 경우는 흔히 있지만, 이렇게 거액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재정적 부담을 지워 주민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태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법률인 옥외광고물법을 찾아봤다. 그런데 이 법률에서도 과태료 부과 처분이 부당하다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제2조의2(적용상의 주의)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 법을 적용할 때는 국민의 정치활동의 자유 및 그 밖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조항은 옥외광고물법 적용의 대원칙에 관한 조항이다. 주민들이 현수막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행동에 거액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치가 '표현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애초에 채석장이 추진되지 않았다면,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현수막을 걸 이유도 없었다. 억울한 사람이 억울하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조차도 억압한다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만약 업체들이 영리활동의 일환으로 거는 현수막이라면 규제의 필요성이 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현수막이라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옥외광고물법을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옥외광고물법 제2조의2를 지키는 일이다. 
 

전남 곡성군 주민들이 채석장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김진호

 
옥외광고물법은 무조건 적용되는 법률이 아니다. 일정한 경우에는 적용이 배제되는 조항도 있다. 제8조에서는 관혼상제, 학교행사, 종교의식, 시설물의 보호·관리, 안전사고 예방, 선거·투표 홍보 등을 적용배제 사유로 제시한다. 또 "단체나 개인이 적법한 정치활동을 위한 행사 또는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해 표시·설치하는 경우(제4호)", "단체나 개인이 적법한 노동운동을 위한 행사 또는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해 표시·설치하는 경우(제5호)"도 적용배제 사유로 인정한다.

법조항에서는 "적법한 정치활동", "노동운동"이라고 했지만, "등"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영리가 목적이 아닌 시민운동, 주민운동 차원에서 현수막을 거는 경우도 넓은 의미의 '정치활동'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옥외광고물법은 헌법 위에 군림하는 법이 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행정관청의 허가나 신고수리 없이는 현수막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조차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곡성군청이 왜 이렇게 무리한 과태료 부과처분을 하려고 할까? 순수하게 곡성군청 단독의 결정인지, 아니면 업체의 민원이나 압박에 의한 조치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 저질러지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민주당의 텃밭이고 민주당 군수가 있는 지역에서 말이다. 

최소한 민주당이 '민주'를 얘기하려면 이런 일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본적인 인권 중에 하나가 '표현의 자유'인데, 농촌 주민들에게는 '표현의 자유'도 없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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