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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 팔아 우간다 아이들에게 2천만 원 기부

[인터뷰] 포항 죽도시장 할매호떡 고명희씨

등록 2022.06.06 14:35수정 2022.06.0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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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 할매호떡에서 일하는 고명희 씨. ⓒ 경북매일 자료사진

 
아직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들지 않았지만, 목덜미로 땀이 흘러내릴 만큼 더웠다. 당연했다. 바로 코앞에 뜨겁게 달아오른 철판이 있었으니.


경북 포항 죽도시장 입구에 조그맣게 자리한 호떡 노점. 고명희(62)씨는 그 자리에서 14년을 일했다. 앞서 고씨의 어머니가 1980년부터 '할매호떡'을 시작했으니, 모녀가 대를 이어 호떡을 구워 판 세월이 벌써 42년.

지난해부터는 고씨의 아들까지 일을 거들고 있으니 '호떡집 3대'라 불러도 무방하다.

지난 5월 31일, 인터뷰는 호떡을 굽는 번철(燔鐵)을 사이에 두고 진행됐다. 30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8월에는 얼마나 더 더울까?

그럼에도 낙관적인 웃음이 그려진 고씨의 얼굴은 환하다. 고생을 고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이유가 뭘까.

"오래전 엄마에게 방송사에서 인터뷰 제의가 왔어요. 그때 엄마는 '내가 이 일을 하면서 한 거라곤 내 자식 키운 것밖엔 없다. 남을 도와준 것도 아닌데 무슨 인터뷰할 자격이 있나'라며 거절했죠.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당연지사 그게 무슨 생각이었는지 궁금했다. 물었다.

"그래서요? 생각 끝에 뭘 했습니까?"
"얼마 전에 아프리카 우간다(Uganda)에 아이들을 위해 작은 학교를 짓는데 2천만 원을 기부했죠."


정말이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들려주는 고씨의 이야기에 적지 않게 놀랐다. 할매호떡은 좌판을 차려 운영되는 가게다. 우간다에 기부한 돈 2천만 원이면 시장에 점포를 얻어 좀 더 편하게 장사를 할 수도 있었을 것 아닌가.

"글쎄요…. 점포를 세낼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그것보단 어려운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더 가치 있지 않을까요?"

호떡처럼 달콤한 사랑과 나눔

긴 시간 노점에서 일하고, 가끔은 예의 없는 손님도 맞아야 하는 고씨임에도 표정과 말투가 밝았다. 그러한 삶에 대한 긍정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알고 싶었다.

- 호떡을 만들어 팔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엄마가 1980년에 여기 자리를 잡았다. 나는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힘이 부치는 엄마를 돕기 시작한 게 2005년 즈음이다. 3년쯤 반죽 제대로 만드는 것부터 호떡 맛있게 굽는 방법 등을 배웠고 2008년에 일을 이어받았다."

- 짧지 않은 시간이다. 많은 것이 변했을 것 같은데.
"1980년엔 호떡 한 개가 100원이었다. 내가 이어받았을 땐 500원이었고. 지난해까지 700원을 받다가 올해 밀가루 값과 식용유 값이 너무 올라 할 수 없이 1천 원으로 올렸다. '내가 못 먹는 음식은 만들지 말자'는 것이 우리의 장사 원칙이다. 그건 엄마와 내가 똑같다."

-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때는.
"나는 신앙을 가졌다. 거기서 사랑과 나눔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우연한 기회에 아프리카에 갔었다. 그곳에서 가난 속에서도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을 만났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아직 여러 분야에서 경제적인 발전이 이뤄지지 않은 나라인 우간다는 학교를 짓는데 한국처럼 큰돈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내 형편껏 기부를 했는데, 아이들보다 내 마음이 더 행복했다. 그게 보람이라면 보람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잘 웃는 고씨의 맑은 얼굴은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긍지와 보람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어렵지 않게 짐작됐다. 조건을 달지 않고,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기부와 봉사를 실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1천 원짜리 호떡을 얼마나 팔아야 2천만 원의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 그걸 남에게 선뜻 내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고씨에겐 사랑과 나눔을 통해 얻어지는 행복감이 호떡보다 더 달콤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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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 할매호떡집 3대. 좌측이 고명희 씨의 어머니, 가운데는 아들이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밀가루, 찹쌀가루에 비법 재료... 호떡의 9할은 반죽

만두가게에 가면 만두 이야기를 해야 하고, 결혼식장에선 신랑과 신부 이야기를 해야 한다. 호떡집을 갔으니 호떡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매호떡의 메뉴는 3가지. 대표 메뉴는 1천 원짜리 전통호떡이고, 치즈호떡과 씨앗호떡은 1500원이다.

-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렸다. 장사에 도움이 되는지.
"지난 2년간은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만은 못하다. 게다가 호떡은 겨울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음식이다. 11월부터 2월까지의 손님이 여름에 비해 2배는 많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도 잘 버텼으니 이제 갈수록 좋아지지 않겠는가."

- 세 가지 호떡 중 어떤 게 가장 많이 팔리나.
"아무래도 전통호떡이다. 손님 열 명 중 일곱 명은 그걸 찾는다. 여러 TV드라마의 영향으로 포항이 흥미로운 여행지로 알려지면서 젊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그들은 씨앗호떡과 치즈호떡도 좋아한다."

- 하루에 판매되는 호떡의 양은.
"20kg 밀가루 한 포대를 반죽해서 아침 9시에 호떡을 굽기 시작한다. 재료가 다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오후 3~4시가 될 때도 있고 6시쯤이 될 때도 있다. 가장 많이 팔았을 때는 한 포대 반, 그러니까 밀가루 30kg 반죽한 걸 모두 판매한 적이 있다."

고씨는 "호떡이 10이라면 반죽이 9"라고 말한다. 2~3시간의 숙성이 필요하니, 고씨가 반죽을 시작하는 건 매일 새벽 4시 30분 무렵. 41년은 직접 손으로 반죽을 했다. 반죽기계를 구입한 것은 아들이 일을 돕기 시작한 지난해 가을.

밀가루와 찹쌀가루를 일정한 비율로 섞고, 여기에 며느리에게도 알려줄 수 없는 '비법 재료' 몇 가지를 더해야 반죽이 완성된다. 그 비율과 들어가는 재료는 고씨의 어머니가 장사를 시작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못다 한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사랑

고씨의 아들은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직장생활보다는 장사가 내게 맞는 것 같다"며 호떡집 3대가 되기를 자처했다.

회사를 그만둔 후 야시장에서 호떡을 구워 팔며 경험을 쌓았고, 지금은 포항시 이동에서 호떡 밀키트(Meal Kit·손질된 식재료와 조리법을 세트로 구성한 제품) 가게를 운영하면서 어머니를 돕고 있다.

아주 어렸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돼서도 할매호떡을 찾아줄 때가 가장 즐겁다는 고씨.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조그만 호떡집이지만 여든일곱 살 할머니부터 스물여섯 살 손자까지 3대가 이어가며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손님 모두가 우리 가게 호떡을 먹으며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 행복을 만드는 일이니 건강이 허락된다면 오래오래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을 때 고씨는 "아직 아프리카에 나눠줄 사랑이 조금 더 남아 있다"며 웃었다. 우간다 아이들을 위해 기부를 더 하겠다는 이야기임을 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호떡은 따뜻하고 달콤하다. 고씨는 호떡보다 더 뜨겁고 달콤한 나눔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 분명해 보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할매호떡 #죽도시장 #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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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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