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핸드폰 요금? 11000원이면 충분합니다"

전통시장의 '손자 같은 상인'... 고은성씨

등록 2022.05.26 08:09수정 2022.05.26 08:09
1
원고료로 응원
a

포항의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에서 '손자 같은 상인'으로 불리는 고은성씨. ⓒ 경북매일 자료사진

 
훤칠한 키에 환하게 웃는 얼굴부터가 호감이 간다. 인사성도 밝다. 이른바 '어르신들이 사위 삼고 싶어 할 청년'으로 느껴졌다. 복개된 경북 포항 죽도시장 칠성천 입구에서 핸드폰을 판매하는 행복텔레콤 고은성(32) 대표는 나이 지긋한 시장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사이에서 '손자 같은 상인'으로 통한다.

고 대표가 건넨 명함 뒤쪽엔 이 청년상인이 마음속에 세워둔 장사의 원칙이 적혔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손님들이 의심하지 않게, 진심을 담아, 나가는 분들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도록."

간명한 문장이지만 그 옛날부터 물건을 사고파는 원칙이라 할 상도(商道)가 고스란히 담겼다. 스스로 "이 일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그는 죽도시장에서 가게를 열기 전 삼성에서 소프트웨어 관련 업무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맡아 일했다.

고등학교 때는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고 정비 등을 배웠다. 무언가 만들고 고치는 일이 좋아서였다. 대학은 조리학과를 다녔는데, 일식 요리를 익혔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웃음과 만족감을 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은 일찍부터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너무 비싼 요금제의 핸드폰을 쓰는 게 안타까웠어요. 보통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의 요금제를 사용하시는데, 사실 월 1만1천 원의 요금으로도 크게 불편 없이 쓰실 수 있거든요. 어렵고 치열한 시대를 힘들게 살아오신 어르신들에게 복잡한 서류 작업을 대신 해주고, 적절한 금액의 핸드폰과 요금제를 안내해드리고 싶었어요."

이는 고은성 대표가 말하는 '노인들이 많이 찾는 전통시장에서 가게를 연 이유'다.


환하고 깨끗한 매장은 시장 어르신들의 쉼터

고 대표가 운영하는 핸드폰 매장은 보통의 전통·재래시장 가게와 달리 채광이 좋아 밝고 환하다. 거기에다 깨끗이 정돈돼 있어 흡사 카페처럼 보인다. 사탕과 바나나 등의 간식도 늘 준비돼 있다. 1년 전 죽도시장에 정착하며 안면을 익히게 된 몇몇 어르신들은 매장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한참 동안 쉬어가기도 한다.

- 아무래도 어르신 손님이 많이 올 듯하다. 어려움은 없는지.
"젊은 사람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편합니다. 예전 직장에서도 어르신들을 자주 만났던 터라 노인 응대가 어색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분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나를 귀여워해주던 조부와 조모의 모습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저렴하고 실용적인 핸드폰과 요금제를 추천해주면 맛있는 것도 사주고, 칭찬도 해주시는데 그럴 땐 보람을 느끼죠."

- 가게를 연 후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핸드폰을 4대나 가지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한 달 핸드폰 요금이 40만 원이 넘더군요. 그분은 사실 그만큼 요금이 나온다는 것도 잘 모르고 있었어요. 차분하게 설명을 해드리고 해지하는 걸 도왔습니다. 우리 매장에서 핸드폰을 구입하지는 않았기에 내게 이익은 없었지만, 웃으며 나가시는 모습만으로도 좋았습니다. 그분은 그날 이후에도 가끔 오셔서 내가 손자처럼 보인다며 쉬다 가시곤 합니다."
 
a

어르신들에게 저렴한 요금제를 알려드리는 게 보람 있다는 고은성 대표. ⓒ 경북매일 자료사진

 
꼼꼼한 비교와 정보 수집이 저렴한 핸드폰 구입의 비결

- 자기에게 적절한 핸드폰과 요금제를 고르는 노하우를 알려준다면.
"사람들은 싼 물건은 꼼꼼하게 비교하면서 구입하는데, 핸드폰처럼 고가의 물품은 머리 아프고, 귀찮다고 고민 없이 구매 서류에 사인을 해버립니다. 보험과 적금, 펀드도 가입할 때 여러 조건이 있는 것처럼 핸드폰 요금제도 마찬가지에요. 유튜브와 관련 인터넷 사이트 등을 보면서 조금만 정보를 수집해도 자신에게 꼭 맞는 걸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고 대표의 또래 친구들은 아무래도 개인 사업을 하기보다는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는 세대가 다른 30대 초반 청년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했다.

"'코로나19 시대'가 3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친구들이 '안정적인 직장생활이 편하다'는 이야기를 하긴 합니다. 상황이 녹록지 않으니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친구들도 개업을 망설이긴 하죠. 하지만, 직장 안에서 겪는 상사와의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떨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흥하든 망하든 자신의 책임 아래서 삶을 살아가는 게 개인 사업의 매력이니까요."

그렇다면 고은성 대표가 안정적 직장생활을 떠나 핸드폰 매장 운영이라는 사업의 길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뭘까? 그 궁금증에는 이런 답이 돌아왔다.

"직장에선 크건 작건 차별과 부조리함을 만나게 되고, 동료들과의 실적 다툼을 하게 되죠. 자신이 회사를 구성하는 부속품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남들보다 더 빨리 승진하기 위해 무한경쟁의 톱니바퀴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죠. 반면 사업은 주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수가 있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가 안고 가야 하기에 남에게서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찾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성장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의 꿈과 앞으로의 10년은...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바쁘게 살아가는 젊은이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건 희망의 에너지를 주변에 선물한다. 고 대표도 그런 사람인 듯 보였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전통시장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험한 세파 헤쳐 온 나이 많은 상인들에게서 힘을 얻는다고 하는 고은성 대표.

"쉬는 날 없이 부지런히 일하시는 주변 어른들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웁니다. 죽도시장 상인들 대부분에겐 넘치는 열정과 자부심이 있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자기가 사장인데 아무 때나 쉬고, 마음대로 가게 문 열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보다 일찍 아침을 열고, 늦게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매일 더 좋은 장사 방법과 손님 응대 방식을 고심하는 선배 상인들을 보면서 사업 초보자인 저는 존경의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앞으로 10년 후엔 보다 많은 손님들에게 신뢰를 얻어 매장을 넓히고, 저렴한 핸드폰과 요금제를 권유하며 사업을 키워가고 싶다는 고 대표.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을 벗어나, 내 집 마련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옹골찬 미래 계획을 이야기하는 그는 나이보다 어른스러워 보였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 말은 빼놓지 않고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당신의 핸드폰 요금은 안전한가요?"라고 되묻는 고 대표.

자신의 의사를 짤막하고 재치 있게 전달하는 이 어법만을 놓고 보자면 반짝이는 작은 귀고리가 썩 잘 어울리는 고은성 대표는 영락없는 '21세기 신세대 청년'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죽도시장 #고은성 #행복텔레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