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복죽, 백종원 때문에 가는 건 아니고

포항 죽도시장 전북죽 유화초 대표와 만나다

등록 2022.05.19 11:58수정 2022.05.1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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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직한 전복은 유화초전복죽 인기의 일등공신이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장사란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고,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까지 줘야하는 행위. 결코 쉽지 않다.


음식 장사는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돈 주고 사먹는 음식에 까다롭고 예민하다. 이는 철저한 준비 없이 만든 음식점이 오래 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 할 것 없다. 무한경쟁의 21세기. 시장이나 도심 상가에서 어제 본 간판이 오늘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네마다 미식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한국. 한 가지 음식만으로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30년을 이어왔다면 그 가게의 맛과 영업 전략은 보통이 아닌 게 분명하다.

포항운하가 지척인 죽도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유화초전복죽.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은 전복을 듬뿍 얹은 연녹색의 맛깔스런 죽은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도 포항시민과 관광객들을 유혹 중이다.

유화초전복죽의 주인은 유화초(76)씨. 자기 이름을 걸고 음식점을 운영한다. 맛이건 위생이건 자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가게는 1kg당 8미(마리)짜리 전복을 쓴다. 죽에 사용되는 전량을 완도에서 가져오고 있다"고 유 대표가 말하기에 되물었다. "그럼 1마리가 130g쯤 된다는 말인데, 그게 큰 건가?" 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해물탕에 들어가는 조그만 전복은 1kg이 20마리쯤 된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면 손님이 먼저 안다"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난 유 대표는 인심 좋은 아버지 밑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입맛 까다로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맛있는 것, 멋스런 것을 먹고 보며 자랐다.

결혼 후 포항에 정착한 것은 서른네 살 때. 처음엔 미장원을 운영했고, 이후엔 횟집도 한 경험이 있다. 전복죽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아들이 어릴 때다.

대부분의 음식점이 부침(浮沈)을 겪듯, 유화초 대표의 전복죽집도 잘 될 때가 있었고, 조금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유 대표의 죽을 접한 손님들의 평가는 한결같았다. "맛있고 푸짐하다"는 것.

'코로나19 사태'의 광풍 속에서도 유화초전복죽은 고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택배를 통한 주문량은 늘었다고 한다.

- 코로나19로 인해 음식점들이 어려움을 겪었는데.
"전복이 면역력 강화에 좋다고 알려져 오히려 많이 팔았다. 젊은 손님들이 나이 드신 부모를 위해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상 밖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손님이 조금 줄었다. 하지만, 남들 안 될 때 우리는 장사를 잘 했으니 섭섭하지 않다. 지금까지 고생한 다른 가게도 함께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웃음)"

- 30년을 큰 어려움 없이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처음 죽집을 시작하며 다짐한 게 있다. 좋은 전복을 사용하고, 딸려 나가는 반찬의 재료 또한 최고의 것을 쓴다는 것이다. 조금 비싸도 돈보다 가게의 앞날을 먼저 생각했다. 싱싱한 전복으로 정성을 다해 끓이면 그 누구보다 손님이 가장 먼저 알아준다.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유화초전복죽은 백종원씨 등 이른바 '유명 맛 전문가'가 음식점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도 두어 차례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손님들은 방송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지속적으로 가게를 찾진 않는다. 사실 방송에 소개된 가게라면 유화초전복죽 말고도 많다.

유 대표는 직접 먹어본 사람이 인터넷에 남기는 '식당 방문 후기'가 영업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는 유화초전복죽의 든든한 우군(友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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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이 듬뿍 들어간 유화초전복죽의 죽과 맛깔스런 반찬. ⓒ 홍성식

 
생에 대한 낙관과 웃음으로 건강 유지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일흔여섯은 적지 않은 나이다. 종일 주방에 서서 일해야 하고, 많게는 하루 100그릇의 전복죽을 만들어 포장하는 건 손자가 대학생인 할머니에겐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유 대표는 항상 웃는 얼굴이다. 목소리도 우렁우렁 활기에 차있다. 멍게젓과 꼴뚜기젓, 동치미와 고추장아찌 등 내오는 반찬 인심도 넉넉하다. 게다가 반찬 하나하나가 죽만큼이나 맛있다.

노령임에도 크게 아픈 곳 없어 보이는 유화초 대표의 건강을 지켜주는 건 아마도 생래적인 낙관성과 환한 미소가 아닐지. 그런 성격은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다.

- 처음 죽도시장에 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
"젊은 시절엔 미장원과 횟집도 운영해봤다. 죽도시장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은 건 전복죽집을 하면서다. 어떤 사람은 '예전이나 현재나 살기가 어렵다'고 앓는 소리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이 아무리 어려워도 처음 장사를 시작하던 47년 전보다야 백번 낫다."

- 유화초전복죽은 어떤 사람들이 찾는지.
"죽집엔 나이 지긋한 손님이 대부분일 것이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젊은 손님이 훨씬 많다. 30,40대가 8할은 되는 것 같다. 그들이 먹어보고 부모님들 몫으로 포장을 해가거나, 택배 주문을 한다."

- 딸려 나오는 반찬이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
"메인과 서브가 두루 맛있다니 음식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듣기 좋은 말이다.(웃음) 반찬 만드는 특별한 방법이 있냐고? 없다. 그저 제철에 나오는 좋은 멍게를 깨끗하게 까서 좋은 소금에 절이는 게 전부다. 동치미도 제주산 무를 사서 직접 만들고, 고추장아찌도 내가 담근다. 앞서 말했듯 그 과정에선 식재료의 가격보다 품질을 먼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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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에서 보내온 전복을 손질하고 있는 유화초 대표. ⓒ 경북매일 자료사진

 
죽도시장에서 인천 소래포구로 이어진 '손맛'

유화초 대표는 2015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전복죽을 특허청에 상표 등록했다. 가게엔 특허청장의 직인이 찍힌 서비스표등록증이 걸려 있다.

유 대표의 정갈한 손맛은 며느리에게로 이어졌다. '유화초'라는 이름을 걸고 전복죽을 만들어 팔 수 있는 곳은 전국에 단 두 곳. 포항 죽도시장과 인천 소래포구에만 있다.

인천 유화초전복죽도 손님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유 대표가 알려준 30년 축적된 노하우로 만들어지는 죽과 반찬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포항의 몇몇 산부인과는 유 대표의 빼놓을 수 없는 단골이다. "옛날부터 산모의 젖이 모자라면 전복을 먹였다"는 게 유 대표의 설명. 아기를 낳은 후에도 먹지만, 임신 중 입덧이 심할 때도 전복죽을 먹으면 속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호주와 싱가포르에서 온 관광객도 손님으로 받은 적이 있고, 서울과 강원도는 물론, 전복을 공급받는 완도에서도 전복죽 택배 주문이 온다. 그럴 때면 고생은 까맣게 잊고 웃음 짓게 된다"는 유 대표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제 막 식당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조언할 게 있냐"는 물음에는 간명하면서도 당연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 식구가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들 시작할 땐 그런 초심을 가진다. 그걸 잊는 순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유화초전복죽이 유명해지면서 체인점을 하고 싶다는 이들도 늘었다. 지금까지 제의받은 것만도 60여 건. 여든 살쯤 되면 적절한 대가를 받고 그들에게 맛있는 죽과 반찬 만드는 방법부터 음식점 운영 방식까지 모두 알려준다는 게 유 대표의 계획이다.

"이후엔 뭘 할 거냐고? 그땐 나도 좀 쉬어야지. 좋아하는 노래 배우러 노래교실도 다니고…. 지금껏 고생했으니 그래도 되지 않겠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유화초전복죽 #죽도시장 #유화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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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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