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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에도 행해진 '진압훈련', 참 다행이었던 건

광주 항쟁을 '사태'로 왜곡했던 시절... 군대에서 벌어진 일

등록 2022.05.18 10:04수정 2022.05.1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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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년 5월 27일 KBS 9시 뉴스 보도 ⓒ KBS뉴스 화면 캡처

 
오늘은 5.18 민주화운동 42주년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전히 '광주사태'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1970년생으로 1980년에는 만 10살, 당시 국민(초등)학교 3학년이 텔레비전 뉴스에서 세뇌하듯 들었던 말이 '광주사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KBS 뉴스를 보면 '폭도'라는 말이 계속 나왔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이 광주 시민들을 선동해 무장을 했다고 했다. 국민학생인 나로서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탱크가 지나갈 때마다 용감한 국군 아저씨들이 빨리 무장간첩들을 잡아달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때는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광주는 '빨갱이들이 점령한 도시'라 무기를 탈취해 군인과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뉴스와 신문이 모두 광주 시민들을 폭도와 무장간첩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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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가 진압소요 목적으로 실시한 '충정훈련' ⓒ MBC 드라마 제5공화국 화면 캡처

 
필자는 1992년 입대했다. 특전사와 유사한 편제이자 교범에 따라 훈련을 받는 701 특공연대에 배치됐다. 특공연대에서는 '충정훈련'을 했다. 공수부대가 광주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했던 진압 훈련이었다.

대나무 각반을 차고 철모(화이바)에 방석 철망을 부착하고 진압봉을 들고 땡볕에서 훈련을 했다. 구령에 맞춰 군홧발을 땅에 내딛으며 하는 훈련은 공수훈련만큼 힘들었다. 만약 옆과 간격이 맞지 않거나 진압봉을 내려치는 강도가 약하면 교관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훈련이 아니라 마치 얼차려와 같은 기합이었다. 

병사들은 충정훈련을 받으면서 조잡한 대나무 각반과 방석망 화이바만 쓰고서는 돌아 맞아 죽을 수도 있다면서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실제로 돌을 던지고 맞는 훈련 도중 부상자도 속출했다. 

훈련을 받으면서도 1980년처럼 군인이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데모 진압 훈련을 받을 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5.18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는데도 군인이 충정훈련을 한다는 자체가 이상했다. 당시 대통령은 노태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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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계엄 발령 시 서울시내 병력 추가 투입 배치도 ⓒ MBC PD수첩 화면 캡처

 
훈련을 받으면서 만약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같은 일이 벌어지면 우리 부대는 어느 지역, 어느 대학으로 가는지 고참들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 부대뿐만 아니라 충정훈련을 하는 부대는 전담 대학이 지정돼 있었다. 

실제로 1987년 계엄 발령시 서울시내 병력 추가 투입 배치도를 보면 701 특공연대가 서울 시내로 투입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전사는 공식적으로 1993년부터 충정훈련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1994년 전역할 때까지도 부대에는 대나무 각반과 방석망, 진압봉을 비치해놨다.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광주의 아픔을 몸으로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 군대에서 받았던 '충정훈련'을 한 번도 실전에서 써먹지 않고 전역했다는 점이다. 
#충정훈련 #특공연대 #518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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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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