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설화 수업이 만든, 한 달의 기적

해남공공도서관, 교과연계프로그램 '말깨비여행' 고민 스케치

등록 2022.05.12 11:35수정 2022.05.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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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 삼산초등학교에서 지역설화와 함께하는 말깨비 여행 수업을 시작했다. ⓒ 김성훈

  
전남 해남군 명승지인 대흥사로 가는 길 초입에 삼산초등학교(교장 박경이)가 있다. 이곳에선 교직원 25명과 유치부 포함 66명의 학생들이 생활한다. 지난 9일, 필자는 3~4학년 17명을 위한 5회차 마지막 특별 수업인 '지역설화와 함께하는 말깨비 여행'을 위해 다목적 강당인 송림관을 찾았다. 기상을 뜻하는 소나무가 교목인 학교인 만큼, 아이들은 오전 11시가 되자 하나 둘, 운동장을 가로질러 씩씩하게 송림관의 계단을 밟았다.

'지역설화와 함께하는 말깨비 여행'은 기획된 교육프로그램이다. 말로만 하는 마을 교육이 아니어야 했다. 마을의 삶이 깃든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의 꿈을 찾아야 했다.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교과 연계 융복합 수업 모델이 필요했다. 그에 관하여 해남공공도서관(관장 정선화)은 고심을 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필자와 해남공공도서관 직원들은 프로그램 설계와 실무에 관한 논의를 거듭했고, 지난 3월 29일부터 해남군 내 초등학교인 어란진초를 시작으로 오는 6월 말까지 9개 학교 11개 학급  200여명의 아이들을 만날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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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5회차 수업, 손인형 역할극을 하고 있는 삼산초등학교 학생 ⓒ 김성훈

 
삼산 초등학교 5회차 수업, 정해진 시간 동안 만남의 추억을 기억하고, 헤어짐을 준비하는 그 시간, 한 아이가 강당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고사리 손으로 룰렛을 돌렸다. 바늘은 할아버지라고 쓰인 한 칸을 가리켰다. 할아버지 손 인형을 들고 아이는 동네에서 만난 할아버지를 상상하며 목소리를 흉내냈다.

"애비야, 용돈 줄게, 만원이다. 옛다, 옛다."

아이들 웃음 소리가 자지러졌다. 소년과 소녀의 손 인형을 낀 다른 친구들에게 관중 역을 맡은 아이들은 사귀는 이야기, 싸우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 결을 채운 시간들이 있었다. 이 시간 동안 필자는, 지역의 이야기를 아이들 손에 진흙처럼 묻히게 할 수 없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해졌던 두꺼운 인연의 옷으로 온 몸을 감싸며 철자가 조금 틀려도 야단 맞지 않는 그런 수업, 생애 처음 타인을 부르던 음절인 엄마, 아빠처럼 내가 서 있는 공간과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없을까를 고민했다.

첫 수업이 진행됐던 지난 3월 29일, 어란진초등학교(교장 박순규)를 갔던 때가 생각났다. 해남군 송지면 어란마을로 가는 길에 바다 향기와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봄철 세입자 개나리꽃을 봤다. 설화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말씀 설(說)자와 말할 화(話)의 합성어이다. 이 어원이 기쁘게 말을 하되 가려 하다는 뜻이 있다. 공동체 삶의 교본이 되는 말은 잇되 해악을 주는 말은 억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1~3학년까지 합해 17명인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설화의 의미를 알게 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이었을까. 반추해 보면, 설화란 오랜 시간 지역의 구술자와 청자 사이의 시간적 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스토리는 시대에 맞게 가감된다. 초기의 뼈대에 붙은 말은 피와 살이 지닌 생명처럼 역동한다. 그 사이마다 수많은 사람이 발화자와 청자의 역할을 번갈아 가며 반복하게 된다. 청자는 시간의 맨 끝에 위치한가 동시에 발화의 맨 처음에 서 있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설화의 시간 텀에는 발화자와 청자 사이에 필연적으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발생한다. 따라서 설화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는 인성적으로 반가운 만남과 건강한 헤어짐을 연습하는 시간이다.

수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필자가 건 슬로건이 있었다.

"만났을 때 인사 했던 것처럼 헤어질 때도 바르게 인사합시다. 그래야 그 순간을 기억하며 우리는 미움의 씨앗이 아닌 그리워 할 것의 싹을 마음에 틔울 수 있습니다. 전체 차렷! 인사! 고맙습니다."

전라남도 해남군은 읍을 포함하여 14개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도의 정신과 시인 고정희, 김남주를 잇는 삼산면, 해남의 옛지명인 명량, 명량대첩의 장엄한 승리를 펼칠 수 있게 힘썼던 민초들의 고장이자, 성웅 이순신과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대항했던 전라우수영의 이억기 장군의 구국 혼이 서린 문내면, 익룡의 신비를 벗기며 세계 고고학 석학들의 눈빛을 모은 해남이크누스의 탄생지 황산면, 조선중기 미술의 경지를 한층 끌어 올린 백포 윤두서의 숨결이 살아 있고, 조선시대 1000여 호가 머물며 지방행정관의 우두머리였던 현감이 머무른 현산면, 옥황상제에게 허락을 구하고 지상의 아름다움에 반해 선녀가 살다 갔다고 일컫는 운녀섬이 있는 화원면 등, 마을마다, 면마다 이야기는 있었다.

내가 사는 이야기, 교과서에서는 듣지 못했지만, 우리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재미난 이야기는 없을까. 북평면 오산마을에 전해지는 도깨비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닌 오 노인 이야기, 해남읍 남동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고목나무에 묶인 빗자루 이야기, 계곡면에서 강진군으로 넘어가는 대내미재에 서린 호랑이 똥에 화상 당한 할아버지 이야기 등이 있었다. 나와 상관 없을 것 같은 이야기가 우리 지역에도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수업 첫날, 우리는 아이들이 정한 규칙과 선생님이 정한 규칙 한 가지를 정했다. 이를테면 선생님인 필자가 정한 규칙은 모든 활동 종료시 마다 정리하기,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 잘 듣기, 친구들과 싸우지 않기 등이 있었다. 또한 규칙을 어길 때 치러야 하는 벌칙 역시 아이들 입으로 정했다. 가령 엉덩이로 이름쓰기, 빈 공간에서 1분간 서서 생각하기 등이 그러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서, 우리가 좀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의견을 표명하고, 그것을 지키는 민주주의 수업은 별도의 이론 없이 스스로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정하고, 공동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데 회차당 주어진 시간이 두 시간이었는데, 우리는 한 시간 가까이 토론하고 의견을 모았다. 필요하다면 그 이상도 이 시간을 내어줄 계획이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오랜 시간 숙의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 아닌 보여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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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6일, 도깨비 가면과 방망이를 들고, 도깨비 포즈를 취하는 삼산초등학교 학생들 ⓒ 김성훈

 
수업 둘쨋날, 우리는 북평면 오산 마을에 전해오는 도깨비 이야기를 접했다. 동화구연을 하듯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깨비의 이미지와 실제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도깨비 이미지를 반추하는 시간도 가졌다. 뿔이 가진 도깨비가 왜 우리 머릿속에 굳어졌는지, 그 도깨비의 원조가 일본의 오니와 흡사하다는 것부터, 우리 지역 도깨비 이야기까지 아이들은 접했다. 하지만 이런 이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작은 체구에 뛰는 심장은 그 누구보다 빠르므로, 아이들은 서둘러 도깨비 가면 및 방망이를 만들며, 이야기 속 도깨비를 상상했다. 만들고 춤추고, 놀고, 웃는 시간의 결 동안, 우리는 관계라는 단어를 체득했다.

관계의 친숙함이란, 자신의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간에 그 상대를 떠 올리며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은 아닐까, 만나는 순간 긴장을 일으키는 사람, 위세나 허풍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사람, 그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자신마저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된다. 필자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지역 설화라는 촉매를 통해, 아이들은 내가 사는 공동체가 무엇인지, 그 속에 깃든 이야기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타인을 대할 때 내 것을 내어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권선징악의 형벌자로서 역할을 했던 도깨비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불이 번쩍번쩍 나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깔깔 웃으면서 익혀 나갔다.

지난 4월 4일날 찾은 북평초등학교(교장 백현영)는 존경이라는 단어를 되려 아이들이 필자에게 알려준 곳이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영어로 respect(리스펙트)는 라틴어 respicio(레스피치오)에서 뿌리를 두고 있다. 보다, 돌아보다는 뜻이다. 무엇을 돌아본다는 것일까. 삶이라는 시간의 결 속에 담긴 공동체 정신, 말이 덧대어지고 보태진 순정한 그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도 아닌 지금 이곳을 의미한다.

공동체는 강한 자, 약한 자, 성격이 급하고 메마른 자, 느긋한 자, 손이 빠른 자, 걸음이 느린 자 등이 공존하는 곳이다. 삶은 탄생 이후부터, 우리가 부모를 골라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공동체 역시 나와 맞는 것을 고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포용의 방법론적 고민을 해야하지 않을까. 태도가 달라지면 생각이 변하고, 그것이 혁신이라 믿는다.

특수 아동 한 명이 포함되어 있는 이곳 배움터에서, 아이들은 익힌 것을 필자는 배웠다.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 손 잡아 줄줄 아는 넉넉함이 그러했다. 다른 것이 괴상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며, 조화롭게 산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아이들은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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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도깨비 작가와 큐레이팅 시간을 북평초등학교 교실에서 가졌다. ⓒ 김성훈

 
셋째날, 도깨비 마을을 스크레치판에 그리고, 우리는 20년후 성공한 사람의 모습으로, 큐레이팅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래 큐레이터는 우리 말로 학예사를 일컫는 것인데,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기획 전시하는 일을 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는 작품보다 꿈의 질서를 재배열하고, 정상의 순간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미리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나이는 순식간에 70세가 되기도 했고, 이제 막 장가든 새신랑이 되기도 했다. 뉴욕 타임즈에 얼굴이 알려지기도 하고, 방금 중국에서 강의를 마치고 귀국한 사람도 있었다. 본인의 도깨비 마을 작품을 어느 곳에 전시할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야 말로 아무말 대잔치처럼 웃고 떠들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다다라야할 것, 아직 정하지 못한 그것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가졌다. 왜?

도깨비 마을에는 왜 놀이터가 있지? 왜 씨름판이 있지? 너는 왜 그 꿈을 상상했지? 너는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그것은 어른도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답을 내기 위한 질문이다기 보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이 찾아야 할 지도로 접근하는 법을 차분히 익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 수줍게 웃고, 친구들은 성공한 발표자를 박수로 맞아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시간이 추억의 결을 더했다.

책만 대출하는 곳이 도서관이 아니듯, 마을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대출해주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덕분에 아이들의 수업의 질을 한층 올릴 수 있었다. 초등학교 당국이 교문을 열어주고 배려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수업은 종료되지 않았다. 학사 일정으로 드문드문 아이들과 만나기도 했고, 때론 몰아서 아이들과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 사이 아이들이 우리지역의 지역명을 말하고, 별칭인 해남이 선생님을 부를 때, 필자는 세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소통 거리를 탐구하고 발전시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그 순간의 결이 채워져, 헤어짐을 그리워 할 수 있는 추억이 되기에, 지면을 빌려 사진 몇 장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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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2일, 어란진초등학교에서 도깨비 포즈를 취하며 노는 시간을 가졌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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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0일, 4회차 수업, 호랑이 도안에 손도장찍기 작업을 하는 시간을 삼산초등학교에서 가졌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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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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