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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까지 벌어졌지만... 엄마는 기어코 거기에 갔다

운동을 하면서 비로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젊은 날의 엄마

등록 2022.04.30 19:10수정 2022.04.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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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운동을 무척 좋아했다. ⓒ pixabay

 
에어로빅, 수영, 헬스, 등산, 요가, 필라테스 등등. 엄마가 거쳐 온 운동들이다. 엄마는 운동을 무척 좋아했다. 뭐로 보나 좋은 일이니 개인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권장하고 볼 일이지만, 아빠는 그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꼭 운동을 싫어했다기보다는 '집사람'이 몇 시간씩 집을 비우는 것을 싫어한 것이다. 


가끔은 운동 때문에 부부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의 나라면 적극적으로 엄마 편을 들고 나서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 껌딱지가 되는 게 소원이었다. 그러니 겉으론 가만 있어도 속으로는 아빠 편을 들곤 했다. 대체 운동이 뭐길래, 안 하면 평화로울 것을 기필코 해서 다투는 걸까 의아했던 것이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부부싸움을 하고 난 다음 날에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운동을 갔다. 나는 아빠가 알게 되면 또 싸울 것이 뻔해 마음을 졸이다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미워지곤 했다. 대체 그깟 운동이 뭐라고. 

그렇게 엄마의 운동은 계속되었고 내가 고등학생이던 때, 엄마는 놀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어머머머! 야야, 와서 이거 좀 봐라. 이거 왕(王)자 맞지? 응?"

그렇다. 엄마가 보여 준 것은 선명한 초콜릿 복근이었다. 개인 트레이닝도 없던 그 시절, 엄마는 어림짐작과 눈치, 실전으로 배우고 익혀서 시나브로 배에 복근을 새겼다. 갱년기를 맞이하기 전까지 엄마의 몸엔 지방보다 근육이 많았다.


마흔이 돼서야 알게 된 '몸의 즐거움'

나는 엄마와 다른 딸이었다. 병치레가 잦아 스스로 약하다는 인식이 일찍부터 자리 잡아 몸을 쓸 줄도 몰랐고 쓰고 싶지도 않았다. 2차 성징이 시작되고 날씬하고, 조신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 뒤로는 더욱 몸이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나만이 아닌, 수많은 소녀들이 그런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이십 년 전, 어느 날이 기억난다. 운동은 싫지만 오는 길에 맛있는 거나 얻어먹을 요량으로 엄마를 따라나선 적이 있다. 거친 호흡으로 뛰고, 무거운 것들을 들어 올리는 엄마 옆에서, 나는 대체 언제까지 할 거냐고 거듭 묻다가 기어코 혼이 나고 말았다. 나는 정말이지, 운동에 진심인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몇 년 전부터 새벽이면 벌떡 일어나 운동을 간다. 처음엔 요가로 시작했다가 달리기에 푹 빠졌다. 나란 사람이 호흡이 거칠어지고 땀범벅이 되는 것을 즐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마 전부터 기구도 조금씩 해보고 있는데, 점점 몸이 단단해져 놀라울 뿐이다. 몸이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걸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알았다.

운동이 왜 좋은지 말하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다. 운동을 하기 전의 나는 늘 피로감에 시달렸다. 내 체력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조금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피곤하다고 여겼고, 그 막연한 느낌에 끌려다니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삼십 분 이상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피곤한 날은 있지만 그때도 내 한계를 더 정확히 파악해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크나 큰 소득이다. 나는 오랜 내 편견보다는 강한 사람이었다.

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자 편안함도 찾아왔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닌데도 땀이 싫어서 여름을 싫어했다. 하지만 땀이 좋아지니 사계절이 전부 좋아졌다. 뿐인가. 땀을 쏟는 내 몸까지 좋아졌다. 몸을 감추거나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닌, 긍정적인 존재로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상한지 모르지만, 땀 외의 내 몸에서 나온 것들에 대해서도 더욱 관대해졌다. 이제 시뻘겋게 물든 면 월경대를 처리할 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전의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서도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이제 맨손으로도 끄떡없다. 내 피가 그토록 더럽거나 끔찍할 게 뭐란 말인가. 

여전히 신기한 것은, 단언컨대 운동을 한 날 더 힘이 솟는다는 것이다. 몸이 간단한 산수로 계산될 수 있다면 열량을 소모했으니 더 지칠 법도 하건만 그렇지 않다. 운동을 하지 않은 날 심신이 더 고되다. 그러니 할 일이 많을수록 악착같이 운동할 시간을 확보한다. 예쁜 몸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이런 변화를 겪고 보니 그 옛날 아빠의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운동을 나섰던 엄마가 자주 떠오른다. 운동이,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땀을 쏟는다는 것이, 엄마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스물한 살에 가부장적인 남편을 만나 소위 독박 육아로 삼남매를 키웠던 엄마는 어쩌면 그 순간에야 겨우 숨을 쉬며 마음까지 다잡진 않았을까.

엄마와는 다른 시절을 살고 있지만 나 역시 여성으로서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우리 사회 속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가부장제는 남편은 물론, 나에게도 스며 있다. 조금만 방심하면 전부 내 몫이 되어 버리는 가사노동 앞에서, 내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을 일일이 설명해야 할 때도, 가슴이 옥죄어온다.

그러니 지금의 나라면 소리 높여 엄마 편을 들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엄마에게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에게 자식은 행복의 원천이자 구속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가 뚝심 있게 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서, 너무 다행이다. 그럼에도 많은 것을 포기했겠지만 말이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그 대상이 꼭 운동일 필요는 없을 테다. 다만 나를 긍정할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뒤늦게나마 나도 그 존재를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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