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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님, 그 어느 나라도 못 한 걸 우리가 해냈단 겁니까?

[대선 이슈 칼럼] "구조적 성차별 없다"는 윤석열 발언... 절대 동의할 수 없는 까닭

등록 2022.02.08 10:08수정 2022.02.0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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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특별강연에서 경제 현안 관련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지난 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젊은 사람들은 여성을 약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라고 말했다(관련기사).

사십대인 나는 젊은 사람 축에 끼지 못해서일까. 그의 말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성차별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니, 그게 참말인가. 그렇다면 세계 그 어떤 나라도 완전히 이루진 못한 일을 우리가 해냈다는 것인데, 전지구적인 쾌거가 되어야 할 이 소식이 왜 어떤 뉴스에도 실리지 않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이 답답함이 나만의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100대 기업 임원 중 여성 비율이 4.8%에 불과한 것, ▲OECD 국가 중 유리천장 지수가 9년 연속 꼴찌인 것, ▲성폭력 등 강력 범죄 피해자의 약 90%가 여성인 것, ▲맞벌이 부부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세 배 많은 가사노동을 하는 것 등을 짚으며 윤 후보가 '부디 상상계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로 볼 것'을 촉구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격차지수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아이슬란드 역시 "성 격차가 가장 적은 나라"일 뿐 성평등 최상위 숫자인 1을 달성하진 못했으며 2021년 0.74라는 지표를 보여주었다. 한국은 예년에 비해 나아진 것이 0.49. 이것이 개인적인 문제란 말인가(관련기사 : 20대 여성 164명에 허들을 물었다, "임금차별... 진저리나는 이 사회").  

여성의원 19%, 과연 성평등 사회 보여주는 숫자인가

얼마 전,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던 중 '여성학 교수'가 나오자 남편이 물었다. 남성학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나도 잘 모르지만,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역사를, 정치를, 문화를 배우면 그게 다 남성학이라고. 사극이든, 정치를 다룬 최근의 영화를 보든, 여성의 역할이 어떠했느냐고. 장르가 판타지라면 몰라도, 현실을 고증한다면 거기서 거기다.

드라마나 영화가 케케묵은 과거를 그려냈을 뿐, 2022년의 현실은 이와는 딴판일까. 물론, 사회적 성취를 이룩한 여성들도 있다. 다시 심 후보의 말을 빌리자면 국회의원의 19%가 여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퀴즈! 남성 의원은 몇 퍼센트인가? 이것이 정말 성평등한 사회가 보여주는 숫자인지 묻고 싶다.


내 또래의 남성 지인들은 모두 사회적인 위치를 굳혀가고 있지만, 여성들은 누군가의 엄마로서 더 자주 소환되고 있다. 그 과정에는 선택이 있었고 그녀들은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나가고 있지만, 그 선택지에는 흐릿하게, 때로는 진하게 답이 이미 칠해져 있기도 했다.

물론 지인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여성도 존재한다. 그 중 한 명은 더이상 주변에 여성 상사와 동료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며 자신의 끝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날까지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기를 진심을 다해 응원하지만, 행여 그리 되지 못한다 해도 그녀 잘못이 아님을 확신한다.

또 한 명의 지인은 자신이 세운 사업체를 보란듯이 운영 중이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케이스라 우리들 사이에서는 칭찬이 끊일 새가 없는데, 그런 그녀의 밥상은 늘 빈약하기 그지없다. 예쁘고 날씬하지 않으면 무시받을 것이라는 것이 그녀의 우려다. 나는 그녀가 조금은 편안해지길 바라지만, 내가 아는 세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윤석열이 사는 세상, 내가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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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1년' 간담회 참석한 서지현 검사 서지현 검사가 2019년 1월 29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분명히 해두자면, 나 또한 여성이 이러한 현실에 처해 있다는 것이 좋지도, 반갑지도 않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늘 괴롭다. 내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핑계로 무력감만 키운 게 아닌지 수천 번도 넘게 자학해왔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면 부끄러움만 더 커질 것 같아서 내가, 아니 우리가 겪어온 현실들을 이야기해 본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은 지난해 7월 <경향신문> 칼럼에서 "여성학이나 여가부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모든 공무원들이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건강 약자, 빈민 등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한 성인지적(性認知的) 관점을 가질 수는 없기에 여가부는 임시방편으로, 그러나 영원히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구구절절 이에 동의한다(관련기사 : 세 남성은 여성가족부 전문가).

윤 후보는 "여성은 불평등한 취급을 받고 남성은 우월적 대우를 받는다는 건 옛날 얘기"라 말한 바 있다. 정녕 그가 사는 세상은 나와는 영 다른 곳이라서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국내 미투 운동에 큰 힘을 실었던 용감한 검사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운동도 개인적인 문제인가.

이렇게 자신이 속했던 집단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국민 대다수가 속한 세상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국민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더 나은 길을 모색하긴커녕 그런 아픔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숨이 턱 막힐 뿐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코로나로 인한 고통 역시 '개인적 문제'로 치부되진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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