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만에 사퇴 번복한 민병두와 민주당, 이 또한 지나갈까

[取중眞담] 당내에서도 엇갈린 시선... 미투, 그후

검토 완료

김성욱(etshiro)등록 2018.05.21 14:08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유대 경전에 나온다는 이 글귀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단순한 지혜를 속삭인다. 여덟 글자뿐이지만 고비마다 꽤 위로가 되는 경구다.

하루가 다르게 이슈가 쏟아지는 여의도에선 더 그렇다. 지난 4일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앞으로 피감기관이 경비를 지원하는 국회의원 국외출장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국회가 공식 배포한 '국회, 피감기관 지원 국외출장 통제 제도 시행'이란 제목의 메일이었다. 그랬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논란은 여의도 정국의 중심이었다. 국가 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되려 피감기관의 돈으로 외유성 짙은 해외출장을 다녀놓고 '관행'이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 유성호


4월 16일 김 전 원장이 사퇴했지만 여론은 즉각 국회의원 해외출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곧바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관련 청원이 올라왔고, 25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에 동참해 청와대의 공식 답변만 기다리고 있다. 김 전 원장에 총공세를 퍼붓던 자유한국당은 웬일인지 전수조사는 반대했다. 급기야 자유한국당은 언론의 전수조사를 청와대의 야당 탄압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국회가 보내온 4일자 메일에도 전수조사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문장 그대로 "앞으로" 안 하겠다는 것일 뿐, '지금까지'에 대한 진상규명 계획은 빠진 것이다.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며 각을 세우던 국회의원들도 어느새 감감무소식이다. 뭐, 이 또한 지나갈테니까. 실제로 드루킹 논란과 남북정상회담 여파가 이어지면서 국회의원 해외출장에 대한 여론은 상대적으로 잠잠해진 듯 하다.

두 달만에 돌아온 민병두..."바뀐 건 시간뿐 아닌가"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 연합뉴스


같은 날인 4일 비슷한 시각, 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수많은 지역구 유권자들이 탄원서를 통해 사퇴 철회를 촉구한 점을 감안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것보다는 조속히 국회로 복귀해 의원직에 충실히 복무하고 책임을 다해줄 것을 최고위원회의의 의결로 민병두 의원에게 요구하기로..."

이번엔 더불어민주당이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이었다. 당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의 결과 브리핑이었다.

여의도의 시계를 김기식 논란에서 한 달만 더 뒤로 돌려보자. 그러니까 3월, 당시 정계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의 최대 화두는 단연 미투(MeToo, 나도 고발한다)였다. 3월 5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충격적인 성폭행 의혹 고발이 나왔고, 이틀 뒤엔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다. 그리고 3월 10일, 민병두 민주당 의원(서울 동대문구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 여성 인터뷰가 언론에 보도됐다. 민 의원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그분이 상처를 받았다면 경우가 어찌되었던 죄송한 마음"이라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그의 발빠른 대처가 호평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두 달이 채 안 돼 당 지도부가 의원직 사퇴 철회 권유를 공식 발표한 것이다. 곧장 민 의원도 "당과 유권자의 뜻에 따라 사직을 철회하고 의정활동에 헌신하겠다"면서 사의를 철회했다.

사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인용은 민 의원의 국회의원직 복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민주당 젠더대책특별위원회의 한 관계자가 한 것이었다. "두 달 전과 지금 바뀐 건 시간밖에 없지 않냐"는 설명이었다. 이 관계자는 "미투의 특성상 사실관계를 증명할 물증이 없고 민 의원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정말 당당하다면 그때 왜 사퇴하겠다고 했나. 이제 와서 마음을 바꾼다는 건 여론에 따라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는 평가를 피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젠더특위 관계자도 "지역에서 사퇴 철회 목소리가 계속 있었다면 왜 이제서야 받아들인다는 건지 그 설명이 불분명하다"면서 "당과 민 의원의 논리가 궁색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모두 4일 있었던 당 지도부 결정과는 결이 다른 목소리다. 젠더특위는 미투 국면이 한창이던 지난 3월 민주당이 TF형태에서 특별위원회로 격상시킨 조직이다.

자신에 대한 미투가 있은 뒤 "하루라도 빨리 수사에 협조하겠다"며 이례적으로 검찰에 자진 출두했던 안희정 전 지사는 현재 재판에서 피해고발자와 팽팽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예행 연습까지 해간 기자회견에서 흰 머리칼을 연신 숙였던 '연극계의 왕'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감독은 9일 처음 열린 법정에서 변호인을 통해 "안마는 독특한 연기 지도 방법이었다"고 했다. 다수의 단원들로부터 제기된 상습 성폭력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금방이라도 사회를 뒤집을 것만 같던 미투는 뚜렷한 후속 대책 없이 서서히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서둘러 고개를 숙이던 이들의 표정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하긴 뭐, 이 또한 지나갈테니.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이정민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