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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가수와 같은 무대에, 모두 노래 한 곡에서 시작됐다

[공모 - 덕질때문에 OO까지 해봤다] 음악으로 쌓아온 투쟁의 역사

18.03.15 17:31최종업데이트18.03.1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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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의 앨범 '수잔'을 듣고 나는 덕질을 시작했다. ⓒ 김사월


나는 인디음악을 좋아한다. 단출한 기타 선율에 목소리만 얹힌 포크든, 기타가 쨍쨍 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를 무당처럼 외는 사이키델릭이든, 독특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들을 찾아 듣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랬다. 그때 듣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델리스파이스, 캐스커의 음악이 아직도 플레이리스트에 있다.

돌이켜보면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나만 아는 음악을 듣는다는 이상한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일찍부터 '홍대인디병'에 걸렸던 모양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살았지만, 이상하게도 직접 공연을 보러 가는 건 자꾸 미뤘다. 너무 좋아해서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게 두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겨울, 완전히 빠져버린 가수가 있었는데, 긴 머리에 베레모를 쓰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포크 가수 김사월이었다. 담백한 기타 소리와 바람 같은 목소리가 외롭고 우울한 마음을 달래줬다. 너무 좋아서 밤마다 앨범을 듣고 또 들었다.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이었는데, 이상한 민원전화를 받고 화장실에 가서 울면서 그의 노래를 들은 적도 있었다.

공연이 있으면 꼭 가야지 다짐하던 중, 그의 SNS 페이지에 공연 소식이 올라왔다. 한남동에 있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이틀에 걸쳐 '대망명'이라는 공연을 여는데, 여기에 김사월이 출연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큰 맘 먹고 같이 일하던 친구를 꾀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한남동으로 향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목격하다

그때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어떤 곳인지, 누구와 분쟁을 겪고 있는지 몰랐다. 공연 포스터에는 '우리는 재난을 맞아 새로운 축제를 준비한다'고 적혀 있었다. 카운터 앞에는 '저항', '투쟁' 같은 글이 적힌 팸플릿이 놓여있었고, 음악가들은 공연에 앞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싸움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야 여기서 말한 '재난'이 당시 한참 사회문제로 부상하던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걸 알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을 비롯한 예술인들의 카페와 갤러리가 한남동을 '핫플레이스'로 만들었지만,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정작 이들은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건물주인 가수 싸이와 분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날 나는 두 가지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 충격은 내가 앨범으로만 들으며 상상했던 것보다 음악이라는 세계가 너무 좋았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던 가수의 공연만 보고 집에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다른 음악에도 완전히 빠져 나중에는 그냥 바닥에 앉아 밤늦게까지 모든 공연을 다 지켜봤다.

두 번째 충격은 이렇게 불합리한 사회문제를 내가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멀쩡한 건물이라도 재건축을 이유로 임대인이 퇴거를 요청하면 임차인은 꼼짝없이 쫓겨나야 했고, 이를 거부하면 용역을 불러 사람을 들어내는 폭력적인 방식의 강제집행이 이어지기도 했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두 가지

서울 종로구 끝자락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 건너편에 자리잡은 '옥바라지 여관 골목'은 2011년 골목길 해설사의 해설코스로 지정 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 되었던 사람을 가족들이 옥바라지 하던 곳이다. ⓒ 이희훈


그 날 이후, 음악과 젠트리피케이션은 내 삶에 있어 중요한 화두가 됐다. 완전히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 키워드는 계속 촘촘히 겹쳤다. 내가 음악에 관심 있다는 걸 안 친구가 노래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밴드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후에는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주민들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밴드를 제안한 그 친구는 여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를 비롯한 몇몇의 친구들이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옥바라지 골목에 모였다. 독립문역 구본장 여관에 강제집행이 들어온 날, 친구들이 소화기 분말 가루를 맞고 용역에게 끌려나오는 걸 본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처음 '현장'에 발을 들였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독립문 역 근처의 보도블록에 천막이 세워졌고, 기약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더 이상의 집행을 막고, 서울시와 재개발 조합에 책임있는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천막에 햇볕이 내리쬐 머리에 김이 오를 만큼 더웠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음악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난겨울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봤던 단편선, 야마가타트윅스터 등의 멋진 음악가들이 찾아와 문화제를 열었다.

골목을 지키던 이들은 힘을 얻었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 번씩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다섯 달의 투쟁 끝에 옥바라지 골목의 주민과 여관을 운영하던 사장님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삶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의 보상을 받았고, 서울시는 폭력적인 강제집행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작은 승리의 경험은 우리가 앞으로도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세상에는 불합리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고, 젠트리피케이션과 강제집행도 마찬가지였다. 옥바라지 골목에 모인 신학생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 계속 싸워보자고 의기투합했고, '옥바라지 선교센터'라는 사회선교단체를 만들었다. 신학생은 아니었지만 나도 여기에 슬쩍 끼어 활동을 이어나갔다. 어설프지만 '활동가'가 된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노래하며 싸우겠다

궁중족발에는 많은 음악가들이 노래를 통해 연대하고 있다. ⓒ 이은솔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운동'을 이어가고 있고, 현장에는 여전히 마음 따뜻한 음악가들이 찾아온다. 옥바라지 골목 이후에는 아현동에서 30년 동안 장사하시다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쫓겨난 아현포차 이모들과 함께 싸웠다. 이모들이 마포구청으로부터 사과를 받은 이후에는, 경복궁역에 위치한 궁중족발에 찾아가 연대하고 있다. 새로 들어온 건물주가 임대료를 4배나 올리면서 문제가 시작됐는데, 이에 저항하던 궁중족발 사장님은 자신을 끌어내는 용역들에게 항의하다가 손가락 4개가 부분 절단되는 등 사고를 당했다.

음악가들은 항상 자리를 지키며 현장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윤덕원도, 김목인도, 권나무도 찾아왔다. 내가 그토록 덕질했던 김사월도 궁중족발에서 공연을 열어 수익금 전액을 사장님들의 투쟁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밴드를 하던 나도 이들과 같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계 탄 덕후란 이런 것일까!).

처음에는 내가 사랑하는 음악들과 내가 분노하는 사회문제들이 겹치는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김사월은 '젊은 여자'라는 곡에서 '늦은 밤 나는 컴퓨터로 여자 아이돌을 봐'라는 가사를 통해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노래했다. '단편선과 선원들'은 '국가'라는 곡에서 제주 4·3 사건을 노래했다.

이들이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마음은 내가 젠트리피케이션과 강제집행을 보며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조리하지만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소리 내 말하는 것. 음악과 사회운동은 결국 모두 '말하는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요즘은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 온 단체의 첫 총회를 준비하고 있다. 맨땅에 헤딩하던 단체가 점점 자리를 잡고 있는 걸 보며 뿌듯함을 느끼다가도, 매일같이 어딘가에서 쫓겨나는 이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무력해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궁중족발의 건물주가 연대인들을 모두 고소해 다들 걱정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걸어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전히 세상에 부조리한 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 말할 예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공의로운 마음으로 노래하는 음악가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해 온 친구들이 있기에 힘이 난다.

덧붙이는 글 '덕질때문에 OO까지 해봤다' 응모글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옥바라지선교센터 강제집행 강제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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