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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된 영화 '덕후', 왜 아이들에 집착할까

[오마이스타 창간 5주년 인터뷰] 영화계가 주목하는 윤가은 감독

16.08.28 11:20최종업데이트16.08.2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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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바람이 접시꽃과 수국 등을 흔들었던 그 6월에서 2개월이 지났다. 꽃들은 지고 대신 강렬한 태양빛에 온 몸을 맡긴 푸른 잎들이 가득한 8월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 그새 여러 영화들이 명멸했지만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여전히 관객들이 찾고 있다. 개봉 당시(6월 16일) 74개 스크린으로 시작한 게 어느덧 9개로 준 상태로 장기 상영 중인 '작은 영화' <우리들>에 약 4만 3000명의 관객이 울고 웃었다.

폭염 경보가 이어지던 8월 중순, 통인동의 한 카페에서 윤가은 감독을 새삼스럽게 만났다. '진심은 통한다'는 이 막연한 말이 왠지 그에겐 하나의 신앙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들이 증거들이다. 단편 <사루비아의 맛>(2009)부터 <손님>(2011)과 <콩나물>(2013), 그리고 첫 장편 <우리들>까지 윤가은 감독은 어른들이 흔히 '덜 자랐다'며 무시하거나 치부하는 청소년과 아이들에 천착했다. <오마이스타> 출범 5년을 핑계로 그의 속마음을 듣고 싶었다.

세상은 함께 사는 것이라 말하는 용기

단편 <콩나물>, 장편 <우리들> 등으로 윤가은 감독은 아동과 청소년의 이야기를 꾸준하게 전해왔다. 본인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의 영화에서 이들이 중요한 테마임은 분명하다. 어른이라고 완벽한 게 아니고, 오히려 어른의 세상을 그대로 익히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 이선필


"정말 잘 모르겠어요!" 윤가은 감독이 웃는다. 왜 그렇게 아이와 청소년의 영화를 하냐는 물음에 대한 답의 일부였다. 7월 말까지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개봉이란 게 어떤 건지를 실감했다"며 그는 "사실 내 영화가 뭔가 부끄럽고 창피해서 개봉 후에 안 보고 있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아빠의 불륜을 바라본 소녀를 다룬 <손님>과 엄마의 심부름을 다녀오는 7살 아이를 담은 <콩나물>을 따라가다 보면 정확히 윤가은 감독의 일부와 만나게 된다. 자전적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그의 영화엔 늘 자신의 경험이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들>이 호평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어른의 그것과 닮은 어두움, 즉 선택할 수 없는 경제적 계급에 따라 서로에게 상처 주는 못된 모습까지 솔직하게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 아동과 청소년의 이야긴 그간 한국영화가 간과했거나 겉핥기만 해 왔다. 그간 고민을 많이 했을 텐데 이렇게 이들에게 애착을 갖는 이유가 있는지.
"답이 없던데…. (웃음) 답을 하려면 할수록 자꾸 억지로 말을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 근데, 이런 마음은 있는 것 같다. 내가 다 안 자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감정이입을 아이들에게 많이 하고 내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 반쯤 진심인데 아이들을 좋아한다. 초등학교가 유치원과 붙어 있었는데 그때도 유치원생들을 귀여워하고 놀고 그랬다. 정신연령이 같다고 느끼는 건지(웃음). 물론 성인이 돼서는 또래 친구들과 많이 만나긴 하는데 아이를 바라볼 때 특별히 내가 더 컸다는 생각보단 '너나 나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나? 돌아보면 내가 어릴 때보다 얼마나 컸을까. 별 차이 없는 거 같은데."

영화 <우리들>의 현장 스틸. 윤가은 감독(좌)과 배우들의 모습이 보인다. ⓒ 엣나인필름


- 진짜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들>도 아이들에게 특정 연기를 강요하지 않고 대본 또한 거의 없었던 게 화제였다. 사전 만남도 많이 가져서 그만큼 벽을 허문 감독의 노력도 컸고.
"음…. 요새 많이 드는 생각은 '그 진짜란 걸 정말 찾았을까'다.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은 거 같다. <우리들>이란 프로젝트 자체가 학교와 기업 산하 협력의 일환이었고, 내 멘토로 이창동 감독님이 함께 하셨던 건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가짜 같다, 재미없다'였다. 처음엔 화도 나고 했는데 가짜 같다는 말에 동의가 되더라. 4개월 간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쳤다. 마치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처럼 진짜는 뭐고 가짜는 뭘까 라는 물음을 파고들었다. 그러다 내 경험 꺼내 쓰기를 택한 거 같다. 어떤 사건을 추적하는 영화적 이야기는 버리고 내가 사실 이런 일을 겪었는데 여기에 뭔가를 살짝 보탰더니 의외로 재밌다는 평을 들었다. 난 밋밋하다고 생각했는데. 이후 그 '진짜'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많이 물어보고, 얘기하는 과정에서 채워나간 부분이 많았다."

- 그간 보인 영화들에 모두 관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진짜라는 것, 그리고 세상을 함께 사는 것이 윤 감독에게 화두 같다.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같이 살자!'고 외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게 느껴지는가. 다행이다. 원치 않았는데 우연하게 프랑스 니스 테러 영상을 실제로 보게 됐다. 그게 트라우마처럼 남아버렸다. 인간은 과연 아름다운 존재일까. 인간이 대체 뭘까? 이 현실에서 눈을 돌려 버린 적은 없었는데 결국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가장 아픈 거 같다. 자연재해도 비극이지만 가까운 친구와 가족 등에게 받는 상처가 발이 골절되는 것보다 아픈 것 같고. 몇날며칠을 못자면서 시간이 약이라는 조언도 받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완전히 치유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흉이 남는 거지. 그걸 잡아 뜯으면 피와 고름이 나는 건데 우린 또 앞으로 나가야 하지 않나. 결국 사람으로 위로 받는다. 아직은 사람에게 희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현실에선 잘 안 되니까 그걸 영화로 표현하는 건 아닐지."

- 유독 <우리들>에 담긴 문제의식이 돋보였다. 아이들도 서로를 경제력으로 구분하고 소외시키는 현상. 이건 그만큼 현실을 철저히 잘 관찰했다는 의미다.
"아이들끼리 소외시키고 당하는 거 우리가 어렸을 때도 비슷하게 있었는데 원인이 지금처럼 복잡하진 않았던 것 같다. 폭력의 강도는 같은데 원인은 달랐다. 요즘은 사회적 가치를 아이들이 내면화한다. 이게 참 슬픈 이유는 바꿀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집안 환경, 경제력 이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문제라면 스스로를 바꾸면 될 텐데, 이건 도저히 아이로서 바꿀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고정지어 버리는 거다. 심지어 핸드폰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영향을 주지 않는 물건임에도 생각보다 아이들은 핸드폰의 유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논술 강사를 오래했다. 어떤 아이가 거짓말하는 쟤가 싫다고 해서 물어보니 아쿠아팰리스 사는 애가 타워팰리스에 산다고 했다더라. 난 그 둘의 차이도 모르는데 충격 받았다. 방이 몇 개인지를 넘어서 사는 집 자체를 내면화하고 있는 거다. 또 내 월급을 아이들이 묻는다. 그러면서 얼마죠! 하는데 대략 맞다. 그게 무서웠다. 더 큰 걸 상상할 수 있는 나이인데…. 그럼에도 그 아이들도 잘 클 거다. 왜냐면 우리도 어렸을 때 어른들이 이상하게 봤는데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나(웃음). 희망을 가져야지!"

영화를 해야만 했던 이유

아이들의 세상을 걱정하면서도 윤가은 감독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어른들도 우리가 아이일 때 이상하게 보고 그랬지만 우리도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잖나"면서 미소를 보였다. ⓒ 이선필


윤가은 감독은 흔히 말하는 씨네필이었다. 그러니까 왕성한 창작욕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기 보단 그저 좋은 영화에 열광하고 사람들과 얘기하길 즐기는 쪽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온 중고 비디오 플레이어는 열기가 식을 새가 없었다. "하루에 세 편씩 아버지가 빌려 놓으셨는데 어느새 내가 영화 '덕후'가 돼 있더라"며 윤 감독이 웃어 보였다. "막연하게 감독이 돼야지"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 사학과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시 들어가 영화를 공부했다. 다소 출발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영화 연출 결심에 대한 고민은 없었는지.
"많았다. 흔히들 말하는 영화감독의 덕목이 내겐 없다고 생각했다.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주장이 강하거나 뭔가 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실제로 일정 기간 내에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워크숍이 있었는데 결국 완성을 못했다. 팀원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 과정을 혹독하게 겪으면서 난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 재능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다른 일도 좀 하다가 2009년에서야 첫 단편 <사루비아의 맛>을 만들게 됐다. 만든 이유? 작품을 하나도 안 만들면 후회할 거 같아서였다. 그리고 한예종에 입학하게 된 거다. 너무 기뻤다. 따져보면 오류투성이 영환데(웃음). 영화에 뼈를 묻은 게 아니라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장편 <우리들>을 만들 때도 같은 심정이었다. 장편을 하나도 안 만들면 후회할 거 같아서였다. 나름 효율적인 생각 아닌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 같다. 해보다가 아니면 말고!"

- 보면 작업 방식이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식이다. <콩나물>도 어릴 적 심부름에 대한 기억이고, <우리들> 역시 학창 시절 친구에 대한 경험이다. 이런 방식을 추구하는 이유가 있나? 스스로를 힘들게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내 모든 영화가 내 부분을 꺼내 쓴 건 맞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면 내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각색을 많이 하는 편이다. <우리들>은 내 일생에서 꼭 했어야 할 이야기였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걸 꺼내니까 다음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더라. 마치 내 비밀이 흩어져 버린 느낌도 든다. 하지만 아직은 내 속에서 길어 올리는 작업이 재밌다. 외부의 이야기에서 끌어오는 편이 아니고, 내 안에서 질문이 들면 그걸 들고 외부로 향하는 식이다. 오히려 외부 이야기였다면 더 불안해했을 거다."

연출자가 여성, 그래서?

윤가은 감독은 진짜와 날 것에 대한 집념이 있었다. 아무리 세련되게 연기해도 진짜는 속일 수 없는 법. 그의 영화들이 잔잔한 분위기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도 영화에 대한 그의 이런 태도 덕이 아닐까. ⓒ 이선필


- '여성' 감독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 자체가 좀 낯설지만 영화계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게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많다. 실제로 이번에 작업하면서 관련된 경험을 했다고 들었다.
"조심해서 말해야 할 부분인데 (어려움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확히 어떤 부분인지 콕 짚을 수는 없지만 분명 여성 스태프나 감독이 느끼는 부분이 있다. 동시에 나아지는 면도 있다. 작업할 때 스스로 '난 여성이야!'라고 생각하고 일하는 분은 없을 거다. 그런데 일하다 보면 '여성 감독은 이럴 거야' 같은 편견이 존재하더라. 여자라서 이런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그렇다고 생각 안 하신다. 개인의 특징을 성별로 통칭하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알았다.

종종 왜 여자들 이야기만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내 영화를 보고 '여자들 이야기'로 생각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심지어 <우리들> 오디션을 볼 때 한 연예기획사에서 감독을 찾는다고 해서 다녀갔더니, 나 말고 남자 PD라도 없냐 묻더라. 책임자가 아닌 남성과 얘기하고 싶었던 거다. 생각보다 부딪히는 일이 종종 있다. 한편으로 유리한 점이 있다면 여자 감독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더 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 주로 영화적 자극을 어디서 받는지.
"일단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 써놓은 시나리오도 있고. 다만 때가 중요하다. 계획이 있다 해도 때가 아니면 어긋나니까. 자극은 다방면에서 받는 편이다. 좋은 영화를 볼 때 가장 자극을 받는데 영화적 재미를 넘어서 내 감정이 움직이는 걸 느끼고, 잘 살고 싶다고 마음을 다잡을 때가 있다. 그때 나 역시 영화를 만들어 이런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어진다. 뉴스도 자주 보는데 경제나 정치보단 사회면을 많이 본다. 어린이들이 나오는 뉴스도 많이 보고(웃음)."

윤가은 감독이 제안한 연예 문화 뉴스, "시각이 담긴 단비 같은 기사!"


평소 해외토픽 등 연성 기사도 자주 본다는 윤가은 감독은 본인이 문화계 종사자인 만큼 연예 뉴스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었다. <오마이스타>는 창간 5주년을 맞아 윤 감독에게 '내가 보고 싶은 연예, 문화 뉴스'를 물었다.

"흔히들 영화 하는 사람의 적은 연예뉴스라고 말이 나올 정도예요. 자기 작품 관련 기사에 그렇게들 신경을 쏟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작품을 시작할 때면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곳으로 가기도 해요.

흔히 연예 뉴스를 현실 도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소재도 다양하고 볼 거리가 많잖아요. 산업 자체에 대한 단순 보도를 넘어선 거죠. 누군가의 연애 사실을 파헤치는 게 아니라 현상을 분석적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게 오래 됐다는 걸 요즘 연예 뉴스에서 느끼고 있어요. 다른 분야보다 문화에선 조금 더 기자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요. 오히려 더 주관적 기사를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뉴스 자체의 가치는 다른 문제라지만 현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뉴스를 보고 싶어요."


윤가은 우리들 최수인 오마이스타 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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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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