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바리캉', 비누 면도... 90년 된 이발소

[큰사진] 목포 신미화이용원 박행성씨

등록 2016.08.27 13:43수정 2016.08.2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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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이발기 바리캉. 오래 전 머리카락을 빡-빡 밀 때 썼다. 스포츠형 이발도 가능했다. ⓒ 이돈삼


수동 바리캉이다. 이발사의 손때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발사의 손놀림에 따라 고정된 날과 움직이는 날이 엇갈리면서 머리카락을 잘라내던 이발 기구다.

오래 전, 머리카락을 빡빡 밀 때 썼다. 두께가 있는 날로 바꾸면 머리카락이 조금 남는, 이른바 '2부 이발'도 가능했다. 앞머리를 적당히 남겨 멋을 내는 스포츠형 '상고 이발'도 했다. 지금의 전동식 이발기계가 나오기 전의 이야기다.

세면대로 쓰이는 싱크대도 오래됐다. 시멘트 냄새 풀풀 나는 콘크리트형 물통은 아니지만,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 앞에 앉아서 머리를 숙인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는 모습도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싱크대 서랍에는 '수건함'이라고 적혀 있다.

알루미늄 조리와 면도용 비누 통.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 이돈삼


신미화이용원의 세면대. 책상 모형의 싱크대가 오랜 세월을 증거하고 있다. ⓒ 이돈삼


비누 거품 가득한 솔과 면도통도 옛 모습 그대로다. 머리를 감겨 줄 때 물통 가득 찬물을 담아 머리에 끼얹었던 조리도 수십 년 돼 보인다. 손님을 왕으로 모실 이발 의자도 생활유물전시관으로 갈 때가 됐을 만큼 묵었다.

좁은 이발관도 갖가지 장식품으로 알록달록하다. 대형 거울 앞에는 하얀 조각상과 박제된 수꿩이 우뚝 서 있다. 날이 빠진 빗도 거울 앞을 차지하고 있다. 벽에 걸린 온도계와 진분홍 헤어드라이기도 정겹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을 모델로 한 주류회사의 달력 몇 장도 여러 해 지난 것이다.

신미화이용원의 이발 도구들. 날이 빠진 빗이 눈길을 끈다. ⓒ 이돈삼


신미화이용원의 내부 풍경. 큰 거울 앞에 오래 된 이발용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 이돈삼


추억 속의 이발관이 아니다. 지금도 이발을 해주며 손님을 받는 이발관, 신미화(新美化)이용원이다. 지난 7일과 15일 두 차례 찾았다.

신미화이용원은 목포시 목원동 마인계터로의 고갯마루에 있다. 모여드는 목포부두의 하역 인부들을 대상으로 죽을 끓여 팔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설과, 대밭이 많았다는 설이 공존하는 목포의 옛 도심이다.

상호는 처음의 '조일이발관'에서 바뀌었다. 건물의 바깥벽을 단장하고 출입문과 창문도 알루미늄 섀시로 교체했다. 옛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다. 하지만 90여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발관이다. 오래 전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등장하기도 했다고.

신미화이용원 풍경. 목포의 원도심 목원동의 고갯마루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이발사 박행성 씨가 이발을 한 손님의 면도를 해주고 있다. 지난 7일 모습이다. ⓒ 이돈삼


"아버지가 하시던 것을 물려받아서 하고 있소. 일제 때 문을 열었응께, 한 90년 됐제. 아버지가 은퇴하시고, 나 혼자 한 것도 55년 정도 된 것 같응께."

'이발사 아저씨' 박행성(72)씨의 말이다. 어릴 때부터 이발관에서 아버지를 돕던 박 씨는 군대에 다녀온 기간을 빼고는 줄곧 이발관을 지켰다. 이발을 해주면서 번 돈으로 2남 1녀를 가르치고 혼인을 시켰다. 하지만 시대변화 앞에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옛날에는 잘 나갔제. 동네사람들이 다 왔응께. 날마다 열댓 명씩은 한 것 같애. 추석이나 설 명절을 앞두고는 줄을 섰어. 이발할라고. 이발소도 밤을 지새웠고. 직공을 두고도 그렇게 했어. 직공들 발이 퉁퉁 부을 정도로."

박 씨의 회상이다.

원도심 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목포시 목원동의 옛 미술학원 전경. 이 사업이 펼쳐지면서 신미화이용원도 주목을 받고 있다. ⓒ 이돈삼


이발사 박행성 씨가 머리를 감겨 준 손님의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고 있다. 지난 7일 모습이다. ⓒ 이돈삼


지금은 간간이 찾아오는 단골손님뿐이다. 하루 한 명이 올까 말까 한다. 모두 60∼70대 주민들이다. 손님의 발길이 아예 없는 날도 부지기수다. 이발 요금은 8000원, 면도까지 하면 1만 원을 받는다.

"소일 허요. 노느니, 심심풀이로. 내 집잉께 하제. 남의 집 같으믄 하겄소? 세 줌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할라고 하는디, 모르겄어. 얼마나 더 할지는. 눈도 어두워져서 오래 하기는 힘들 것 같은디."

박 씨의 말에서 속절없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90년째 한 자리에서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는 박행성 씨. 지난 15일 두 번째 찾았을 때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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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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