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아지는 만화 출판계... 팬들은 이 책이 반갑다

[서평] 걸작 만화 32편 엄선하여 정리한 <위대한 망가>

등록 2014.10.01 12:06수정 2014.10.0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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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네에서 유일하게 남아 명맥을 유지하던 만화책 대여점이 문을 닫았다. 지난 2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키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던 곳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곳으로의 발길이 둔해졌다. 무엇보다 매주 소화해야 할 책이 따로 있었기에 만화책은 아무래도 다소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생에서 수천 권에 육박하는 만화를 봐왔기에, 나에게 만화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무엇보다 만화는 즐거움과 재미를 주었다. 아무리 스토리가 재미없다고 느끼더라도 만화를 보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외부 세계와 닫힌, 눈으로 보이는 가상의 만화 세계. 이 밖에도 실질적인 꿈과 희망을 줬다. 반대로 지독한 현실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지식을 얻기도 했다.


어느 때부터 만화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봐야 할 건 많아졌지만, 볼 필요가 없는 것들은 그 이상으로 많아졌다. 우리가 접하는 건 주로 일본 만화이다. 만화의 역사가 오래되면서 소설처럼 만화에도 고전이 나오기 시작했다. 만화도 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자 신작에 대한 수요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보았던 명작을 다시 찾게 되고는 했다. 한 번에 완결된 만화 수십 권을 빌려서 다시 보는 그런 하루가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보는 목록이 생겼고, 급기야 지금은 대여가 아닌 구입으로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대략 읊어보면 다음과 같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 그리고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 등...

오랜만에 보는 만화에 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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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망가>(강상준 지음 / 박현진 사진 / 로그프레스 펴냄 / 2014.09 / 1만 3000원) ⓒ 로그프레스

<에이코믹스>라는 만화 전문 웹진에서 연재 중인 '강상준의 불가항력 만화방'이라는 코너가 있다. 한마디로 걸작 일본 만화를 소개하는 코너인데, 이 코너에 연재된 글이 <위대한 망가>라는 제목으로 엮어져 책으로 출간됐다. 코너의 1부 32편을 순서만 바꿔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만화에 대한 책이어서 반가웠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황인 출판계 그리고 '웹툰'이라는 거인의 출현으로 만화책 시장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리고 이전부터 형성된 만화에 대한 차별적 시각까지 작용한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이런 책이 출판됐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만화책을 보고 자란 세대로서 고마운 마음과 왠지 모를 쓸쓸한 감정이 앞선다. 나도 이제 만화책을 접하기가 요원해진 상황에서, 앞으로 이런 책을 접하기는 더욱 힘들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에 소개된 32편의 만화에 대한 리뷰를 꼼꼼히 살피며 언젠가 꼭 찾아 볼 것을 다짐했다. 쭉 보니, 32편 중 내가 접한 만화는 10편 정도에 불과했다.

그동안 수천 권의 만화책을 보았고, 나름 걸작만 엄선해 본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라니 약간은 실망했다. 한편으로는 흐뭇한 웃음이 나오고 동시에 씁쓸해지기도 하는 감정기복을 겪었다. 왜 하필 이제야 이런 책을 접했는지에 대한 씁쓸함, 앞으로 접할 만화가 이리도 많다니 하는 흐뭇함, 그동안 많은 돈을 들여 접한 만화에 대한 조금의 실망감까지... 목차를 보는 것만으로 이토록 복잡한 심정이다.

이 책은 <강철의 연금술사>부터 시작한다. 제목과 만화가 이름, 연재된 잡지와 한국에서 출간된 출판사 이름, 일본에서의 연재일까지 한 페이지에 상세한 정보를 나열한 뒤 본격적으로 리뷰를 시작한다.

좋아하는 만화가와 작품들에 대한 뒷얘기

이 강상준이라는 저자의 리뷰는 진실로 해당 만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일본 만화의 역사, 특징, 분류부터 해당 만화가와 만화의 스펙, 줄거리, 장점과 단점을 총망라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던 부분은 해당 만화가와 작품들에 대한 특징, 변천사, 에피소드 등의 얘기였다.

예를 들어 <Let's Go!! 이나중 탁구부> 등의 저자로 엽기·개그 만화의 최강자로 불리는 후루야 미노루 편을 보자. 그는 <두더지>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폭력과 사회부적응자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듦으로써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베르세르크>의 미우라 켄타로는 또 어떠한가. 그는 이 작품을 1989년부터 25년째 연재하고 있는데, 1992년부터는 오직 이 한 작품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야말로 '장인'이다.

<강철의 연금술사>의 경우, 연재 도중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영향력이 원작을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원작이 애니메이션과 상당히 다른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수천 만 권이나 팔렸음에도 상대적으로 그 파급력이 덜한 '비운'의 작품이다.

저자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애니메이션은 '졸작'이고 만화는 '걸작'이라고 평한다. 애니메이션과 만화 모두 '걸작'인 <강철의 연금술사>와는 다르다. 개인적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애니메이션과 만화 모두 접하지 못해서 의견을 낼 수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원피스>는 누계 판매량이 3억 부에 육박할 정도로, 명실 공히 일본 제1의 소년만화이다. 에누리 없이 역대 최고이다. 하지만 전 연령대에 두루 인기가 있는 일본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말 그대로 '소년'만을 위한 만화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만화에 대한 편견을 단편적으로 알려주는 사례다. 

볼거리가 넘쳐 나는 지금, 분명 만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그렇지만 '걸작'과 '명작'은 시대와 분류를 초월한다. 좋은 작품은 그 작품이 어떤 종류의 콘텐츠인지를 초월해 오래도록 남는다. 만화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이 책에 소개된 32편을 포함한 걸작들의 설 자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위대한 망가>(강상준 지음 / 박현진 사진 / 로그프레스 펴냄 / 2014.09 / 1만 3000원)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망가

강상준 지음,
로그프레스, 2014


#위대한 망가 #에이코믹스 #일본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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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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