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XXX들' 노란리본에 새긴 고등학생의 분노

[현장] 여수 이순신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합동분향소

등록 2014.04.30 14:10수정 2014.04.3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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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이순신광장에 세워진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에서 예를 다하는 시민들 ⓒ 오문수


"정부 XXX들"

지난 25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여수앞바다를 굽어 내려다보는 중앙동 이순신 광장에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가 차려졌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3도수군통제사를 지내며 조선수군을 지휘한 곳이다.

학교가 파한 밤 8시, 가방을 멘 고등학생 한 명이 엄숙한 모습으로 분향소에 절을 하고 나서 노란 리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생이 써 내려간 글은 정부를 향한 육두문자였다. 기사에 그대로 옮겨 쓸 수 없어 사진을 찍고 학생에게 이유를 물었다. 심각한 얼굴을 한 학생의 대답이다.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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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에 절을 하고 나온 고등학생이 단호한 얼굴로 쓴 노란리본. "정부 xxx들"이라고 씌어 있었지만 육두 문자라 모자이크 처리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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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기원문이 적힌 솟대받침과 노란리본이 보인다 ⓒ 오문수


"첫날 많은 학생들이 살아 있었잖아요. 그런데 우왕좌왕하다 다 죽었잖아요. 나는 정부가 XXX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썼어요."

말을 마친 학생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아니 단호함까지 배어 있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을 안내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리본을 달기 위해 멀어져가는 학생을 보고 나한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방과후 시간에 고등학생들에게 강좌를 하는 분이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 학생을 보니 오늘 수업시간에 어느 여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사고를 당한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2학년이라며 '2017년 저는 유권자가 됩니다. 세월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2017년 투표할 때 똑바로 투표하겠습니다'하고 말했어요."

무사생환을 희망하는 솟대에 쓰는 기원문

28일은 여수환경운동연합이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을 안내하는 날이다. 환경연합에서는 거북선축제(5월 3일~5월 6일)에 사용하려고 준비한 희망솟대 받침판을 가지고 와 시민들에게 글을 쓰도록 부탁했다. 거북선축제는 취소됐다. 환경연합 담당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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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일행이 분향소에서 예를 다하고 있다 ⓒ 오문수


"원래 솟대는 희망, 행운,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무사생환을 기원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돼 안타깝네요. 그래도 여러 시민과 학생들이 오셔서 분향해 주시니 위안이 됩니다. 우리가 텐트를 치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식당 주인은 우리행사 요원들을 위해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셨어요. 고맙죠."

행사 담당자 말을 듣고 식당 주인 김상문씨를 만나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얼마 안 되는데…"라며 겸연쩍어 했다.

"저도 자식 키우는데 마음 아프죠. 식당을 운영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고생하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는 겁니다. 세월호요? 뭐! 말이 필요 없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겠습니다."

밤 9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여수석천사 주지인 진옥 스님과 일행 30여 명이 분향소를 찾아 예를 올리고 리본과 솟대받침에 기원문을 쓴다.

"돌아가신 이는 왕생극락을, 구출되지 못한 분들은 빨리 구출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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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사 주지 진옥스님이 솟대받침에 기원문을 쓰고 있다 ⓒ 오문수


빗줄기가 굵어지다가 다시 가늘어지자 부부 두 쌍이 분향소에 절을 하고 기원문을 쓴다. 침통한 얼굴을 한 부인이 울고 있었다. 빗물일까? 눈물일까?

고개를 들어 로터리 중앙에 늠름하게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본다. 울고 있었다. 빗물이 볼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오늘은 눈물이다. 거북선을 선두에 세운 채 바다를 호령하던 이순신 장군은 뭐라고 하실까?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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